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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83> 제주 로컬푸드 요리 연구가 양용진의 ‘제주식탁’

“제주의 곤궁한 삶이 만든 향토음식, 그 기록 모았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6-07 19:10:2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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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서 나고 자란 양용진 씨
- 괴기반·고등어죽·모멀조배기…
- 이름도 생소한 제주음식 64개
- 유래·이야기 엮어 책으로 펴내

- “쌀과 식재료가 귀했던 섬에서
- 도민들이 즐겼던 소울푸드들
- 그 자체로 제주의 역사가 돼
-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우리가 보는 대중매체에서 의식주 가운데 음식만큼 오래도록 다루어지는 주제도 없을 것이다. 책은 물론이고 진지하고 깊이 있는 프로그램부터, 맛집 순례와 하루 종일 먹거리 재료를 구하고 조리해 먹는 예능프로그램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도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간다. 이왕이면 단순히 소문난 맛집이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이 인정하는 곳을 찾는다. 그것은 맛을 찾는 게 아니라, 여기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본능적으로 궁금해서가 아닐까.
제주음식 연구가인 양용진 씨가 영도 흰여울마을 아래 절영로산책로에 위치한 그늘막에서 제주 해녀가 물질해 온 소라와 고둥 등을 맛보고 있다.
제주도는 국내 최고의 여행지다. 아름다운 제주를 즐기는 동안 가끔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제주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다. 자연환경이 다른 그 곳에는 어떤 음식들이 전해져 왔을까. ‘제주식탁’의 저자 양용진 씨는 “제주음식은 모두를 위한 서민의 음식”이며 “민초의 곤궁한 살림이 만들어 낸 생활의 작은 조각”이라고 말한다. 제주 로컬푸드 요리 연구가 양용진 씨를 부산 영도에서 만났다.

■제주이기에 가능한 음식들

책 표지의 부제 ‘그 섬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았나’를 보았을 때 무엇 때문인지 가슴이 뭉클했다. ‘코시롱한 제주 사람들의 일상식 제주인의 소울푸드 64’를 보았을 때는 호기심이 생겼다. 책 제목 정하느라 고심한 흔적이 두 개의 부제에서도 읽힌다. 괴기반, 마농지, 모멀조배기, 고등어죽…. 목차를 읽으면서 제주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양용진 씨가 부산에 온다는 정보를 접했다. 지난해 ‘국밥(제주에서 서울까지, 삶을 말아낸 국 한 그릇)’을 펴낸 한국음식문화포럼 모임이 부산에서 있다는 소식이었다. 서울, 부산, 대구, 제주 등지에서 활동하는 식문화 전문가들이 지역을 번갈아 가며 만나는데, 이번 부산모임은 갑자기 이루어진 번개모임이란다. 그 모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양용진 씨를 먼저 만났다.

제주 해녀들은 제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국의 바닷가로 출향해 물질을 했는데, 부산의 영도에도 제주해녀촌이 있다. 양용진 씨와 함께 찾아간 곳은 영도 흰여울마을 아래 절영로산책로였다. 제주 해녀가 물질해온 소라와 고둥을 맛볼 수 있는 그늘막이 있었다. 양용진 씨와 주인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제주말로 대화를 했다. “어디우꽈?” “저, 한림마심. 어디시꽈?” “저, 월정마심.” “물질 어디까지 나강 허셨수과?” 양용진 씨는 해녀 아주머니에게 “삼춘도 월정마심?”하고 물었다. 한동안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를 듣는 동안 그곳은 잠시 제주의 바닷가였다. “제주삼춘을 보니 반갑네요. 육지에 처음 왔을 때 먹고 살기가 힘들지는 않았을까, 이제 자리 잡고 사시는구나, 여러 생각이 듭니다.” 그늘막 아래 앉은 양용진 씨는 바다를 찬찬히 바라보았고, 소라와 고동을 천천히 음미했다. “이 바다는 제주 바다보다 잔잔하네요. 제주 바다는 좀 더 치열하달까요. 더 거칠죠. 바다 생물도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식감도 다르지요. 여긴 더 부드러운 맛이네요.”

양용진 씨는 1965년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제주토박이다. 어머니인 제주향토음식 명인 1호 김지순 여사의 뒤를 이어 제주의 음식문화를 계속 연구하고 기록 중이다. 50여 년 전부터 대학교에서 요리를 가르친 김지순 명인은 고령의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잊힌 옛 제주음식을 조사, 재현, 기록했다. 그 기록들에 외할머니의 밥상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음식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마음이 보태져 ‘제주식탁’이 나왔다. 제주에서 특정음식이 탄생한 이유, 그것이 최선의 음식이었던 근거를 말해주는 책이다. 제주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시각이고, 제주에 가서 제주 식재료로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요리책이기도 하다. 제주이기에 가능한 음식들이다.

■소중한 식재료로 차려내는 밥상

제주식탁- 양용진·2020·콘텐츠그룹 재주상회
64가지 제주음식을 소개한 목차에서 ‘고등어죽’를 보았을 때 필자는 충격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많은 양념으로 요리해 얼큰한 맛으로 기억되는 ‘어죽’은 먹어봤어도, 고등어로 죽을 끓이다니 상상도 안 해 본 음식이다. “비리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제주에는 비린 생선이 없어요. 바다에서 해산물을 잡아 식탁에 오르기까지 반나절도 안 걸리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 제주에서는 생선이 비릴 틈도 없다. 책에서 ‘고등어죽’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자. “끓는 물에 고등어를 넣고 삶은 후 살을 발라내고 그 육수와 살을 맑게 끓여낸다.(중략) 제주에서는 갯바위 낚시만으로도 30cm 정도의 고등어를 잡아 올리곤 했다. 그렇게 한 마리씩 잡아 올린 고등어는 비늘이 상하지 않아 반나절 정도는 신선도가 충분히 유지된다. 그렇게 신선한 고등어로 제주 사람들은 죽을 끓여 먹었다. 제주 사람들은 비린 음식을 먹지 않는다. 비리지 않고 맛있기 때문에 먹는다. 잘 쑨 고등어죽은 기름진 생선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만큼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고등어, 각재기(전갱이), 갈치로 끓인 국까지 신선도가 담보되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음식들은 제주이기에 가능하다.

제주는 전체 경지 면적의 1% 정도가 논이었기에 쌀이 귀했고,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잡곡밥을 먹었다. 톳, 모자반 등 해초를 섞은 밥도 지어 먹었다. 따뜻한 기후 덕에 사시사철 푸른 쌈채소를 먹었다. 하지만 그 따뜻한 기온 때문에 겨울김장문화가 없었고, 생김치 위주로 장만했다. 제주음식에는 자연과, 척박한 농업환경도 함께 담겨있다.

음식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와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감동적이다. 한 지역의 음식은 특별한 미각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지역의 특성을 자랑하려고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해서 만들어지는 삶의 증명이다. 제주 서민들이 먹었던 음식들에서, 지난 시절 이 땅 방방곡곡의 백성들이 먹었던 음식들도 떠올려 본다. 산과 들에서, 바다에서 난 소중한 식재료로 한 끼 밥상을 차렸던 그 긴 시간들이 우리 삶의 역사이다. 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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