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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성범죄 해법 피해자 관점서 찾아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 지음 /민음사 /1만8000원

  • 국제신문
  •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  |  입력 : 2020-04-23 19:23:48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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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의 추억’ 등 영화 16편 분석
- 법 체계 문제·잘못된 인식 고발
- 사회적 약자의 연대·행동 촉구

미성년자 등 여성의 성 착취물을 제작해 유포한 ‘n번방’ 사건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지난달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한다’는 국민청원이 게재된 지 5일만에 서명 숫자가 360만 명을 넘을 만큼 분노는 컸지만 과연 후속조처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간 매일같이 성희롱, 성 추행, 불법 촬영, 리벤지 포르노 등 다양한 형태의 성 범죄가 발생했지만 결국 고통 속에 남는 이는 피해자인 여성이었다. 한국에서 폭행을 당한 끝에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고의가 있었다는 전제 하에 살인죄가 적용되고, 남편이 폭행 끝에 아내를 죽이면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판단해 폭행 치사 선고를 받는 것이다. 법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는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국내 최고의 범죄 심리학자인 이수정 박사와 이다혜 영화전문 기자가 범죄영화 16편을 테마로 피해자의 입장에서 영화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우리 사회의 약자 문제와 해결법을 제시한다. 지난해 4월부터 두 저자가 동명의 팟캐스트에서 진행한 방송 내용을 정리해 출간했다.

1부는 영화 ‘가스등’ ‘적과의 동침’ ‘돌로레스 클레이번’을 통해 보는 가정 폭력 3부작이다. 널리 쓰이는 용어인 가스라이팅이 무엇이고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가부장제 속의 남편이 어떻게 아내에게 자기 주도권을 빼앗고 장기간 폭력을 행사하며, 한국의 법은 가정 폭력을 어떻게 다루는지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한다. 책은 영화 바깥의 현실로 2018년 서울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가정 폭력을 일삼던 전 남편의 아내 살해 사건을 다룬다. 영미권에서는 수십년 간 가정 폭력을 당한 아내의 살해 동기가 분노가 아닌 공포임을 헤아려 정당방위의 토양을 갖춘 반면 우리는 반의사 불벌죄로 인해 가해자인 남편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 이 박사는 경찰에서 가정 폭력 사건을 입력할 때 부부라는 항목 없이 두루뭉술하게 하는 것 자체가 아내를 남편의 부속물, 소유물로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꿈의 제인’ ‘팔려 가는 소녀들’ 등을 분석하며 이 박사는 아이들의 성 착취가 만연화돼 불법 동영상으로 이어지는 배후에 랜덤 채팅 앱이 있음을 알린다.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논의 사안은 의제 강간 연령이라는 것. 결혼의 의무는 18세부터인데 섹스의 권리는 13세부터라는 현재 법 제도의 모순은 강간으로 성 매수의 세계에 빠져들었는 데도 결국 가해자로 낙인찍혀 버리는 청소년들을 지켜 주지 못한다고 전한다. 또 ‘미저리’ ‘걸캅스’ ‘살인의 추억’을 통해 본 스토킹 방지법과 온라인 성범죄 단속을 위한 제한적 함정 수사의 필요성, ‘기생충’ ‘조커’ 등을 통해 본 빈곤 계층과 적대주의의 문제 등 피해자의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더 세심하게 보듬어야 할 사안들이 있다고 말한다.

책은 범죄 영화를 분석하고 끝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범죄 영화에서 피해자로 소비되고 말았던 여성과 아이들, 그리고 이들의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닌 내 문제로 환원해 연대하고 행동할 때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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