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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준의 음식 사람 <7> 전남 함평 생고기비빔밥

차진 육회에 밴 은은한 육향 … 한우 고장 비빔밥의 ‘위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4-07 19:54:55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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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서 가장 오래된 함평우시장
- 한때 전국 소값 좌우할 만큼 큰 규모
- 장터에서 탄생한 생고기비빔밥
- 이 고장 대표 요리로 자리잡아

- 함평이 2008년 한우특구되면서
- 장터 주변 2, 3대 이어진 전문점들
- 당일 도축 생고기만 비빔밥에 사용

- 함께 비비는 담담한 양념은 거들 뿐
- 소뼈 밤새 우려 끓인 선짓국과 ‘짝꿍’

한때 한 집안의 재산 형편을 알아보는 기준 중 하나가 소 보유 두수였다. 소를 몇 마리 먹이느냐가 그 집안 경제 사정을 파악하는 척도였던 것. 농업이 나라의 근간을 이루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함평우시장에서 유래해 지역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은 생고기비빔밥과 맑은 선짓국.
소의 의존도가 높았던 시절이라, 소는 ‘집안의 재산 제1호’이기도 했거니와 ‘제2의 가족’으로 애지중지했던 가축이었다. 소의 노동력에 의해 한 해 농사가 좌지우지 되다 보니,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식용을 금지하는 등 정부가 직접 전국의 소를 관리하기도 했다. 그만큼 ‘소의 경제학’이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던 시대였다.

그 때문에 지역마다 장날이면 크고 작은 우시장이 열리고 큰돈이 오갔다. 우시장마다 ‘소판 돈’을 따라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는데 큰 장일수록 장의 규모나 거래금액이 클 수밖에 없었다. ‘소 판 돈’을 노리는 기생집도 성업하고, 소 흥정을 붙여서 먹고살던 소 거간꾼, 넉넉한 인심으로 막걸리 한 잔씩 들이켜던 주막집, 소부산물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던 국밥집 등 우시장 주변 또한 흥청댔다.

그 중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우시장 주변에는 소의 여러 부위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던 음식점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들 중 몇 집이 골목을 이루고, 오늘날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정착하기도 한다. 수원 왕갈비, 전주 육회비빔밥, 진주 칠보화반(七寶花盤), 나주 곰탕, 송정 떡갈비, 언양 소머리국밥 등이 그것이다.

소의 다양한 내장으로 진하게 끓여낸 곱창국밥. 걸쭉한 국물이 술국이나 해장국으로 다 좋다.
전남 함평 또한 우시장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함평우시장’은 전남에서는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1903년 개장을 했으니 118년의 역사다. 한 시절 전국의 소 값을 주도했을 정도로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불리던 이름 또한 ‘함평 큰 소장’이다. ‘전남함평군축산조합’의 통계를 보면 1923년 4~9월 매물로 나온 소가 3690마리였다. 당시 ‘함평 큰 소장이 전남 소 값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래가 활발했던 곳으로 하루 평균 소 700~ 800마리가 거래됐다고 한다.

때문에 우시장 주위로는 인근 여러 고을에서 온 장꾼과 거간꾼, 구경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중에서도 동네 아낙들이 전을 펴고 집에서 가져온 여러 음식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팔았는데 값도 싸고 먹기도 편해 인기가 좋았다. 여기에다 장날 찾은 장사꾼들이 우시장에서 나온 싱싱한 생고기를 고명으로 올리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함평 생고기비빔밥’으로 정착됐다.

전국에서 쇠고기를 고명으로 올려 만든 비빔밥 중 대표적인 것이 경남 진주 칠보화반과 전북 전주 육회비빔밥, 전남 함평 생고기비빔밥 등이다. 세 지역은 오래전부터 주변에 큰 우시장이 소재한 곳으로, 각각의 지역문화에 맞게 독특한 형식의 소고기비빔밥을 발전시켜 왔다.

진주는 비빔밥에 올라간 색색의 고명들이 마치 꽃처럼 아름다워 ‘꽃밥’이라 불리는데, 진주냉면과 더불어 진주교방청의 대표 음식이었다. 국으로 얼큰한 선짓국이 나온다. 전주는 사골육수에 밥을 짓고 아삭한 서리태 콩나물이 다양한 고명과 함께 밥에 오른다. 전주콩나물국밥처럼 시원하게 끓인 콩나물국이 나온다.

함평한우. 함평군 제공
이에 비해 함평 생고기 비빔밥은 푸릇푸릇한 싱싱한 푸성귀와 함께 당일 도축한 소고기 생고기가 넉넉하게 고명으로 올라간다. 기호에 따라 채를 썬 돼지비계와 함께 비벼 먹기도 한다. 국으로는 맑은 선짓국이 오른다. 한때 재래방식의 ‘함평비빔밥’은 선지와 소뼈를 넣어 푹 고아낸 국물에 삶은 콩나물을 살짝 데쳐 밥에 비벼 먹었는데, 풍성하게 오른 육회와 아삭한 식감의 콩나물, 맑고 시원한 선짓국 등을 상에 올리기에 ‘선짓국비빔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함평이 2008년 ‘한우산업특구’로 지정되고 ‘함평천지한우’란 브랜드로 1등급 이상의 소고기를 출하하면서부터, 당일 도축한 생고기만 비빔밥에 올려진다. 비빔밥 이름도 ‘함평 생고기비빔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함평장터 주위로 2, 3대에 걸쳐 함평 전통의 생고기비빔밥을 내는 음식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중 한곳에 들러 생고기비빔밥을 시킨다. 한우 생고기와 함께 상추·시금치·콩나물·애호박나물·김 가루 등이 수북하게 고명으로 올라왔다. 소고기 고명은 당일 아침에 잡은 암소의 우둔살을 얇게 저민 다음, 결을 일일이 끊고 가늘게 채를 썰어 사용한다. 한 젓가락 집어 먹어보니 육질이 차지고 육향이 은은하게 뱄다. 함평에서 나는 싱그러운 푸성귀가 넉넉하게 들어가 있어, 비벼놓으니 울긋불긋 색감 또한 조화롭다.

상차림에 채를 썬 돼지비계가 눈에 들어온다. 돼지목살 비계를 삶아 기름을 빼고 채 썰어 접시에 담아냈다.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 소고기 육회 대신 또는 육회와 함께 돼지비계를 넣고 비벼 먹던 것이 유래가 되어 그 전통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취향에 따라 함께 비벼 먹으면 적당한 식감과 고소한 맛을 더할 수가 있다.

이와 함께 함평 생고기비빔밥의 특징 중 하나가 비빔밥에 곁들여 나오는 맑은 선짓국이다. 비빔밥 못지않게 공을 들이는 음식으로, 소뼈를 밤새 우려낸 육수에 싱싱한 선지를 넣고 센 불에 끓여내면 맑고 깔끔한 선짓국이 만들어진다. 선지는 순두부처럼 부드럽고 국물은 시원하면서 개운하다.

비빔밥 맛이 담담하다 싶어서 보니, 고추장을 비빔장으로 쓰는 대신 다진 양념을 사용하는 것에 그 영향이 있는 듯하다. 주인장은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새우젓 등을 섞어 숙성시킨 양념으로, 함평 전통의 생고기비빔밥 맛을 좌우하는 화룡정점”이라고 설명한다.

함께 한 지인은 소의 다양한 내장으로 진하게 끓여낸 곱창국밥을 시켰는데, 뚝배기의 반이 내장수육이다. 국물은 오래 끓여 걸쭉할 정도로 진하고, 수육마다 식감이 달라 씹는 맛 또한 절묘하게 조화롭다. 술국으로나 해장국으로나 모두 다 어울리겠다.

집에서 만들어온 반찬에다 밥을 비벼 장터 손님들에게 제공하던 집밥 같은 함평비빔밥. 다른 지역 비빔밥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머니께서 직접 만들어주시던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의 기억이 새록새록 남아있는 음식이다. 수더분하게 올려주는 생고기 고명 또한 나그네에게는 기꺼운 덤으로 기억되겠다.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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