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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이 사라지자, 노동의 시간이 왔다

24시간 시대의 탄생- 김학선 지음 /창비 /1만8000원

  •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  |   입력 : 2020-03-12 19:57:56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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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의 야간 통행금지 철폐 후
- 공장은 24시간 쉼없이 돌아가고
- 자율이라는 이름 하에 성공 압박
- 국민의 시간 통제해 국가자원화

서울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1981년 야간 통행 금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광복 이후 치안을 이유로 수십 년간 시행한 통행 금지를 이제는 완전히 폐지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신군부는 이듬해 1월 5일 자정부로 통행 금지를 해제했다.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그간 잃어버린 4시간을 되찾으면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심야 시간을 활용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을까.
광복 이후 치안 유지와 에너지 절약 등의 이유로 시작된 야간 통행 금지는 1982년 1월 5일 해제됐다. 사진은 전국 야간 통행 금지 해제가 보도된 신문 기사. 국제신문 DB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1980년대 사회적 시간의 개발과 재구성에 관한 논문을 제출해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24시간 시대의 탄생’에서 “통행 금지 해제 이후 심야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 아닌 ‘노동의 시간’이 됐다”고 주장한다.

책은 신군부가 시행한 야간 통행 금지제도 철폐 등의 개방정책이 인간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로 몰았다고 주장한다. ‘자율’이라는 이름하에 성공이 최고 가치 척도로 떠오르면서 개인은 모든 시간을 자기계발에 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통계를 인용해 직업이 있는 사람의 평균 근무 시간이 1981년에는 7.02시간에서 1987년 7.40시간으로 오히려 늘어났고, 자유시간은 1981년 3.33시간에서 3.25시간으로 줄었다고 설명한다. 늘어나는 수출 물량을 맞추려고 공장은 24시간 3교대 방식으로 운영했고, 학교는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을 명목으로 학습 시간을 늘렸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신군부 정권이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통금을 철폐하기 전에는 심야 시간이 미개척지와 같았다”며 “통금 해제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심야 시간을 새로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자원으로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해 분투했다”고 분석한다.

신군부 정권은 표면적으로 ‘자율’을 새로운 사회규범으로 내세우고 시민에게 24시간의 자유를 돌려줄 것을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시민의 일상 시간을 지배하는 데 공을 들였다. 통금 제도 폐지 외에도 정부는 언론 통폐합으로 장악한 TV를 통해 시민의 시간을 통제하고자 했다. 한국방송공사(KBS)는 1981년부터 격년으로 4차례 ‘국민생활시간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일상시간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관리·조직돼야 하는 하나의 자원으로 개념화됐고, 방송프로그램 편성에 따라 전 국민의 생활리듬이 동시화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올림픽과 맞물려 시행된 서머타임제도 군부의 시간 통제의 일환이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신군부 정권은 에너지 절약과 국민 여가 욕구 충족을 위해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미국의 서울올림픽 중계 시간과 이에 따른 중계권료 협상과 더욱 연관돼 있다고 반박한다. 결국 서머타임제는 자유시간의 증가보다는 노동시간이 연장되는 등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했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1980년대의 정권은 억압과 통제 일색의 통치성을 일상시간의 기획을 통해서 개방과 자율로 포장함으로써 국민들을 동원했다. 그 결과 당시 극심한 사회 갈등과 변동에도 민주화를 이뤄내면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치러낼 수 있었다”고 결론 내린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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