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물에 잡혀 바싹 말려진 멸치가
- 바다로 돌아가는 꿈을 꾸는 내용
- 작가의 일상 속 경험에 빗대어
- 현대인의 자화상 그린 어른동화

바다에서 온 멸치가 다시 바다로 돌아갈 꿈을 꾸는 이야기. 그림책이지만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어른 동화다.
주인공은 한때 몸통이 있었던 헤엄 잘 치기로 소문난 멸치였다. 바다에서 신나게 놀다 달빛이라고 생각해 몰려갔지만 고깃배의 등불. 그물에 잡혀 소금물에 팔팔 삶기고, 햇볕에 쪼글쪼글 말려진 후, 키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상자에 담긴다. 상자 속 멸치들은 바다를 그리며 서로 마른 몸을 끌어안고 밤을 보낸다. 어느 날 사람들은 ‘똥’이라고 부르며 멸치의 몸에서 거무스름한 무엇을 빼 버린다. 그것은 어엿한 멸치의 내장이었다. 내장에 이어 몸통과 등뼈는 사라지고 말라버린 머리만 남았다.

끝났다고 생각한 멸치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 존재감이 없던 멸치가 마음속 깊이 담아 두었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멸치들은 ‘우리 모두 모였으니 헤엄쳐 가 볼까?’라며 바다로 향한다. 고깃배 등불에 속지도 않고, 뱃사람 그물에 걸리지도 않고, 햇볕에 마르지도 않는, 바다가 되자고 다짐한다. 그러려면 아마 싱크대 수챗구멍을 통과해 하수구를 거쳐 강을 지나야 하겠다.

권진국 씨의 삶도 멸치와 다르지 않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쫓았던 꿈은 파국을 향하는 지름길. 일련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일정한 등급을 받아 상자같이 생긴 건물에 진종일 앉아 일한다. 신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똥’이라고 불리며 폐기처분당하고, 빳빳했던 자존심은 잘려 나가 어디에서인가 허우적거리다 취중에만 간혹 나타난다. 밥상에 자주 올라오는 멸치볶음처럼 늘 한데 뭉쳐져 있듯, 직장 선후배부터 시작해 거래처 사람까지 만나는 사람은 많지만 내 존재 자체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권 씨도 아직 삶이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챗구멍과 같이 지저분하고 험난한 시간을 보내면 원래 꿈꾸던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으리라 꿈 꾼다. 비록 몸통은 구부러지거나 사라지고, 얼굴은 물론 뇌까지 말라비틀어진 그때라도.

작가는 입이 쩍 벌어지고, 구멍이 숭숭 뚫리고, 몸이 뒤틀린 마른 멸치를 보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졌다. 냉장고 속에서 꺼내 들고 한 마리씩 그렸다. “그림을 그리면서 ‘멸치는 마르고 나서야 자신의 몸무게를 느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무게감 때문에 멸치의 목소리가 더 힘차게 들렸다. 작고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그들의 삶이 전해 주는 지혜가 들렸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