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스 만 역작 ‘1491’의 후속편
- 가축·식물·미생물 대륙 간 이동
- 인류 삶 동질화 ‘호모제노센’ 다뤄
- ‘생태 제국주의’의 위력 설명
기자 출신 르포 작가인 찰스 만은 전작 ‘1491’(한국어판 ‘인디언:이야기로 읽는 인디언의 역사’)을 통해 미국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책에서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한 해 전인 1491년까지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과 역사를 풀어냈다.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 신대륙은 원시적인 황무지가 아니었다. 인디언은 아메리카 대지에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서구의 무지와 야만을 폭로한 전작에 이어 그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한 해 뒤인 ‘1493년’을 제목으로 삼은 후속작을 선보였다. 콜럼버스에서 비롯된 ‘세계화’의 현장, 즉 모든 대륙이 하나의 교역망으로 연결되는 현장을 생생하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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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와 인종이 뒤죽박죽 섞인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 거리는 예술활동에 자주 반영됐다. 17세기 무명작가가 그린 이 그림은 기독교 문화와 안데스 전통이 결합한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황소자리 제공 |
부제인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에서 호모제노센(Homogenocene)은 ‘균질화·동질화된 인류의 삶’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저자는 유럽 식민 개척자들이 아메리카 땅을 디딘 이후 광범위하고 전복적인 양상으로 전개된 인류의 경제·생태적 변화와 그 결과 탄생한 호모제노센의 기원에 대해 다룬다.
1492년 10월 12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현 도미니카공화국)에 첫발을 디딘다. 콜럼버스가 이곳에 최초로 건설했던 기지 ‘라 이사벨라’는 거의 잊혔고 그는 역사 속에서 종종 잔혹하고 기만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가 인류를 포함한 생태계 전반에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 인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와 함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넌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소, 양, 말 등 가축은 물론이고 사탕수수, 밀, 커피, 담배 같은 작물도 있었다. 오랜 시간 격리돼 있던 생태 시스템이 대륙을 건너 새로운 것과 갑작스럽게 만나 뒤섞이게 된 것이다. 이 교환은 옥수수를 아프리카에, 고구마를 아시아에, 말과 사과를 아메리카 대륙에 가져다 놓았다. 벌레와 풀,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도 대륙 간 이동을 통해 자리바꿈했다.
유라시아의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은 아메리카 대륙을 휩쓸며 4분의 3이 넘는 원주민의 목숨을 빼앗았다. 얼음 왕국이 된 미국 북서부 지역은 가축과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 개체 수를 늘린 것이 말라리아 모기였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지역이 말라리아 모기로 초토화되면서 담배농장은 노동자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일꾼을 사 오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말라리아가 거들어준 덕에 노예시장이 번성했다.
이처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부분 지역과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생태를 유럽식 생태계 버전으로 변신시켰다. 이런 생태 제국주의야말로 스페인과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주의 확장 가도에서 지속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비밀병기였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1492년 시작된 이야기는 18세기 대항해 시대와 19세기 산업혁명을 넘어 21세기 세계 농업 현장을 비추면서 끝난다. 지금 우리의 모든 일상은 온 세상의 에코시스템을 뒤섞고 충돌시킨 ‘콜럼버스적 대전환’의 결과물이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