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중에 커서 뭐하지?”는 어릴 땐 아무 생각 없는, 어쩌면 다가오지 않을 먼 미래의 이야기였기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이 입속에 머금고 내뱉지 못하는 숙명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누구 하나 빠져나가기 힘든 우리의 이야기일 것이다.
‘IMF 사태’라는 짧은 단어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부도, 구조조정, 퇴직, 살인적 이자, 자살 같은 모두 부정적인 단어만 나열되는 이야기. 한 단어마다 바퀴벌레알을 낳듯 또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있다. 저자는 그런 암울한 시기쯤에 직장을 가졌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것과 오래도록 일하는 것과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젊은 우리는 그것보단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이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옳은 것이었고, 그렇게 살아야 또 내일이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마흔을 훌쩍 넘기고 직장은 해운 사업의 어려움에 또 그렇게 그는 오늘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됐다.
저자인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100여 명의 공장 근로자 중 여성은 극소수였다. 단순히 그냥 힘들었다고 하기엔 회사는 비정규직엔 너무 먼 위치에 있었다. 소위 빽으로 들어온 정규직은 기본 업무 프로그램을 할 줄 몰라 비정규직인 내가 가르쳤지만, 정작 업무 회의에서 나는 소외됐다. 또 다른 회사에서도, 남성 중심의 회사에서 여성으로서 평범하지 않은 해양플랜트 구조설계 엔지니어로, 한 사람의 아내로, 엄마로, 딸과 며느리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왜 나는 자존감을 잃었을까. 저자가 살아온 이야기는 한 개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3만 원짜리 셔츠 한 장 사면서 고민이 많았다. 삶의 현장을 떠나와 이제는 취준생이 된 마흔 중반의 경단녀. 저자는 마음으로 읊어 보았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만약 이 질문을 어렸을 때부터 해보았다면 분명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어릴 적 “나중에 뭐하지?”를 그때 깨달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 지금과 달라졌을 거라고.
여자라는 이유, 고졸에 비정규직, 임금 차별과 기혼이라는 것까지. 숱한 차별에서 저자는 버티고 살아야 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만약 저자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직장에서도 성공했다면 이 책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사회는 끝없이 모순 속에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일하는 아내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책을 읽는 내내 무겁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삶을 지켜오고 버텨온,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갈 것이라는 저자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당신의 잘못은 없었다고.
문우당서점·도서출판 스토리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