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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피를 끓게 한 39편 근대 명문

한국 산문선- 서재필 외 지음 /안대회 외 옮김 /민음사 /2만2000원

  • 국제신문
  •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  |  입력 : 2020-01-30 20:00:1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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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등
- 시대의 울분 대변하는 글과
- 선각자들의 지혜 담아낸 명문
- 저명한 한문학자 6명이 엮어

19세기 말 한반도에는 프랑스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를 비롯해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큰 사건들이 잇달았다.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쇄신에 힘쓰지만 결국 을사늑약을 거쳐 국권을 피탈 당한다. 이 시기를 겪은 당대 지식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한문으로 된 우리나라 고전 명문을 총망라해 주목받았던 ‘한국 산문선’(총9권)의 특별편이 출간됐다. 안대회, 이현일, 이종묵, 장유승, 정민, 이홍식 등 국내 내로라하는 한문학자 6명이 이번에는 20세기의 명문 39편을 엮고 옮겼다. 외세 침략으로 시작된 격동의 시대에 조선 지성인들의 시대정신이 담긴 뜨거운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잘 알려진 장지연의 ‘오늘 목 놓아 통곡하노라’, 최남선의 ‘3·1 독립선언서’, 서재필의 ‘독립신문 발간사’ 등 39편의 명문을 뽑아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하게 읽히도록 우리말로 옮기고, 필자를 소개하고, 작품의 이해를 돕는 간결한 해설까지 친절하게 달았다.
1905년 11월 20일 자 ‘황성신문’에 실린 ‘시일야방성대곡’ 원문. 국제신문 DB
역자들은 100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의 글이 예상보다 치열하고, 놀랍도록 솔직했다고 평가한다. 평화와 정의를 배반한 일본 제국주의를 준엄하게 비판하면서도 조선의 구습과 폐단을 낱낱이 인식한 필적이 담겨있다.

1부 ‘근대의 격랑’에서는 일본은 물론 모든 외세에 예속되지 않으려 한 시대정신을 만날 수 있다.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선 박제순의 처벌을 주장한 이남규의 ‘역적의 토벌을 청하는 상소’와 국권 침탈을 당하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내로 보낸 유인석의 편지 ‘온 나라 동포에게’는 독자의 피를 끓게 만든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옥중에서 지은 ‘동양평화론’은 자신의 거사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것임을 차분한 논리로 설파한 것이라 더욱 의미 있다.

2부 ‘급변하는 사회’는 과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각자들이 제시한 구체적인 대처 방안을 실었다. 서재필은 1896년 최초의 한글 신문 ‘독립신문’을 발간하면서 상하와 내외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근대적 신문의 목적을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글을 창간호에 실었다. 본격적인 ‘국문’ 글쓰기의 고심을 보여준다.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은 근대적인 주식회사의 설립과 도로 정비를 통해 한양을 근대 도시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또 행적이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은 인물인 김하염은 여성 교육을 위한 여학교의 증설이 자립의 길이라 역설했다.

3부 ‘난세의 인물상’은 황현, 이건승, 민영환 등 불우한 시대에 태어난 영웅의 내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죽어도 죽지 아니하여 구천 아래에서 제군을 도울 것”이라 한 민영환의 유서, “술에 취해 산택(山澤)사이에 드러누워, 길게 끄는 소리로 한 차례 곡을 하곤 했다”고 망국의 비분강개를 에둘러 표현한 윤희구의 자전을 읽으면 어느 시대든 우국충정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책은 이런 우리 산문의 깊이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역자들은 서문에서 “한문의 쓰임새가 사라지면서 죽은 글로 변한 한문 산문에 담긴 인문 정신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며 “글마다 한 시대의 풍경과 사유가 담기는 것을 작업의 과정 내내 느꼈다”고 밝혔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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