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3일은 다석 류영모 선생 귀천 39주기다. 다석 선생은 나이를 햇수로 세지 않고 날수로 계산했다. 1890년 3월 13일 태어나 1981년 2월 3일까지 3만3200일을 살았다. 2011년 다석 귀천 30주기를 맞아 나온 추모집 ‘하루를 일생처럼’이 그 뜻을 담았다. “하루를 산다는 말은 통째로 산단 말이요, 하늘을 산다는 말이다.” 다석은 하루 한끼만 먹고, 하루를 일생으로 여기며 ‘일일일인’(一日一仁)을 실천했다.
다석의 애제자인 박영호는 “오늘을 잃으면 일생을 잃게 되고 오늘을 잡으면 일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박영호는 ‘다석 전기-류영모와 그의 시대’에서 말한다. “다석 류영모는 동서 사상과 천문지리에 능통한 대석학이었고, 우리 말과 글로 철학을 한 최초의 사상가였으며, 평생 동안 진리를 좇아 큰 깨달음에 이른 대자유인이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라 원주를 생태·생명운동의 보금자리로 만든 이가 있다. 1970년대엔 무위당(无爲堂), 1980년대엔 일속자(一粟子·좁쌀 한 알)라고 스스로 칭한 장일순(1928~1994년) 선생이다. 그의 10주기이던 2004년 나온 ‘좁쌀 한 알’에서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유홍준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김민기가 아버지로 여기며, 판화가 이철수가 진정한 뜻에서 이 시대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 한 사람이다. 무위당 선생 삶의 스펙트럼이 넓고도 깊다. 20대에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합정부로 만드는 ‘원 월드 운동’에 참여했으며, 정치범으로 3년 간 옥고를 치렀고, 지학순 주교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다석은 사상가로, 무위당은 실천가로 온고이지신을 실천한 스승이다. 다석은 세계 철학계가 인정하는 사상가로 우뚝 섰으며, 무위당은 한살림 운동으로 생태운동의 싹을 우리나라에 틔웠다. 다석은 오산학교 교장으로, 무위당은 대성학원을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다. ‘다석학회’와 ‘무위당사람들’ 등 스승의 뜻을 이으려는 움직임은 또다른 온고이지신, 줄탁동시의 좋은 예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