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성 위해 심사 항목 계량화
- 예술적 우수성 평가 애매해
- 결국 새로운 ‘맥락’에 높은 점수
- 지원 탈락에 너무 노여워 말기를
1월부터 3월까지는 예술인들의 보릿고개다. 풍요를 넘어 과잉의 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새로운 활동 시작은 한참 멀고 학교도 개학 전이라 예술인들의 주머니에는 삭풍만 드나든다. 이 시기에 부산문화재단의 지역 문화예술 특성화 지원 심사가 시작되고 결과도 발표한다. 2019년 선정 비율을 보면 장르에 따라 다른데, 대략 50% 내외다. 선정 여부가 예술인의 한 해 활동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보니 심사 기관은 탈락자가 납득할 정도의 공정성 확보에 힘을 기울인다. 공정성 확보가 심사 기관의 고민이라면, 심사 위원 입장에서 어려운 점은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을 판단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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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단 ‘레드스텝’의 야외춤 공연 모습. 박병민 사진가 제공 |
심사의 공정을 위해 기관에서는 계량화·정형화 할 수 있는 기준은 최대한 규격화해 두었다. 심사 항목은 ▷신청 주체의 전문성 ▷사업의 예술적 우수성 ▷사업계획의 충실성 및 실현 가능성 ▷지역문화발전에 기여도와 파급효과 ▷예산계획의 타당성 및 적정성이다. 이 중 ‘사업의 예술적 우수성’은 계량화가 불가능하다. 예술적 우수성은 작품이 완성된 후에 비로소 판단할 수 있는데도 이마저 서류로 판단해야 한다. 더 곤란한 점은 예술적 우수성의 세부항목이 ‘사업의 예술적 우수성은 탁월한가?’와 ‘사업의 질적 수준이 뛰어난가?’라는 것이다. 심사하는 사람은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을 두고 우수한 정도를 넘어 ‘탁월하게 우수한지’를 판단하고 ‘질적 수준’까지 예상해야 한다. 정형화한 서류로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지원자의 예술적 우수성보다 심사 위원의 예술적 안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현되지 않은 창작을 두고 가능성과 예술성을 가늠할 때 심사위원은 자신의 역량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심사 위원을 인력풀에서 무작위로 선정하는 것으로 선정의 공정성을 확보할지는 몰라도 심사위원의 안목을 검증할 방법은 없다. 심사에 참여하는 창작자, 비평가, 기획자, 교육자 모두 한계가 있고, 자신의 분야를 기준 삼아 판단한다. 이런 상황에서 심사에 탈락한 예술가가 불만을 품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얼마 전부터 전국적으로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심사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공개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심사위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과 비공개 심사에 대한 불신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부산문화재단도 일부 심사과정을 공개할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심사 공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문제가 있지만 현재로는 불가피한 창작지원 심사에서, 심사를 받고, 하는 입장이 공통으로 신경 쓰는 것이 있는데 바로 ‘새로움’이다. 예술(작품)이 반드시 새로울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은 예술이 항상 새롭기를 기대한다. 문제는 예술가가 제시하는 새로움과 심사 위원이 기대하는 새로움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예술의 새로움이란 어떤 것일까. 규정하기 쉽지 않지만 ‘맥락 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에서 새로움은 세상에 없던 것을 제시하는 것이기보다 맥락이 없던 것의 맥락을 만들고, 기존 맥락을 재 맥락 화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심사는 예술가의 계획에 어떤 ‘맥락 화’ 의도가 있는지를 읽어내고 그것의 동시대 가치를 알아채야 한다. 이런 심사가 가능하다면 공정성 논란을 비껴가면서 탈락자를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변명하자면 지원하는 예술가의 어려움만큼은 아니지만, 작품을 보지도 못한 채 맥락을 읽어야 하는 심사 위원도 힘들고 곤혹스럽다. 만약, 당신이 심사에서 탈락했다 해도 그 계획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았으면 한다. 언젠가 심사가 필요 없는 날이 올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춤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