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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75> 이성배 시인의 시집 ‘이어도 주막’

바다를 동경한 산골소년, 詩의 파도 헤쳐나가는 마도로스 되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1-19 19:07:4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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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세상의 전부였던 아이
- 마산 앞바다 처음 보고난 뒤
- 수업도 빼먹고 바다 찾아다녀

- 원양어선 타려던 꿈 뒤로한 채
- 군인이 된 소년이 선택한 건
- ‘날것의 바다’ 귀동냥 하는 일

- 부산 중앙동 선술집 다니며
- 거친 뱃사람들의 이야기 경청
- 삶이 출렁이는 해양문학 그려내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 행성에 우리가 사는 건 어디서 온 인연인지 경이롭기만 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온통 바다인데, 우리는 왜 지구(地球)라고 부르고 있는가. 이 행성은 지구가 아니라 수구(水球)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언젠가 섬에 가다가 파도가 치는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때 바다의 핏줄과 힘줄을 보았다. 거칠고 단단한, 아름답고 강한 힘이었다. 그 힘이 우리가 지구라 부르는 흙덩어리가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를 동경하는 산골 소년이 시인이 되어 바다로 가득 찬 시집을 냈다. 시집 ‘이어도 주막’의 이성배 시인을 전남 여수에서 만났다.
전남 여수에서 만난 이성배 작가가 최근 출간한 시집 ‘이어도 주막’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바다를 좋아한 산골 소년

‘이어도 주막’을 읽는 독자들은 아마 이런 상상을 할 것이다. 이 시집을 쓴 시인은 분명 바닷가 출신이거나 뱃사람일 거라고. 그렇지 않다면 바다에 대해, 배와 뱃사람에 대해 이렇게 잘 알 리가 없다고. 그런데 이성배 시인은 산골 마을 출신이고 배를 탄 선원도 아니다. 심지어 육군 장교 출신으로, 현재 여수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 복무 중이다.

이성배 시인은 1961년에 옛 주소로 경남 마산 내석읍 상곡리에서 태어났다. 2005년 ‘신문예’로 등단했다. 2011년 한국해양문학상, 공무원 문예대전을 수상했다. 저서로 ‘경상도 우리 탯말’(공저)이 있고, 2019년에 첫 시집 ‘이어도 주막’을 냈다.

이 시인은 산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마을은 상곡리 중에서도 더 깊숙이 들어 앉아 있었어요. 마을 앞에 무학산이, 뒤에는 광려산 자락이 있었죠. 매일 보는 게 산이었으니, 세상에는 산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매일 보는 산, 팔촌 일가가 모두 모여 사는 집성촌이 갑갑했던 소년이 처음 만난 바다는 친척이 사는 구산면 안녕리 바닷가였다. 지금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해 있다.

“눈앞이 탁 트이는데 시원하고 편안했습니다. 바닷가 마을 아이들이 산골에서 온 저를 놀리느라고 바다로 떠밀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헤엄치고 놀았어요. 하루 만에 거룻배 노를 젓는 걸 다 배웠죠. 방학만 되면 그 바닷가에서 살았습니다. 바다를 못 보면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소년은 바다를 찾아다녔다. “중학교 때 수업 빼먹고 바다를 찾아다녔어요. 마산시외버스터미널 가서 바닷가로 가는 버스라면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올랐죠. 새로운 바닷가 마을을 계속 찾아다닌 겁니다. 어떨 때는 돌아오는 버스를 놓치고 8시간 동안 밤길을 걸어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도 집 뒷산에 초막 짓고 잘 정도로 겁이 없었으니 밤길을 혼자 걷는 건 오히려 편하고 좋았습니다. 게다가 집안에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 아이가 또 초막에 가서 자나보다 하고 큰 걱정도 하지 않았어요.”

가고 싶으면 가고, 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 그걸 못하면 병이 났다는 그의 거침없는 성격은 어쩌면 바다를 꼭 닮은 것 같다. 바다를 못 보면 갑갑증이 났고, 바다를 한번 보고 오면 한 달 정도는 견딜 만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의 바다는 점점 넓어졌다. 경남지역 바다를 넘어 슬슬 전남의 바다를 넘나들었다. 고2 때는 1년 반 동안 용돈을 모아 홍도를 가려 했으나 태풍에 발이 묶여 목포 여관에서 머물다 돌아왔다. “너무 원통하고 화가 나서 군대 다녀와서 제일 먼저 간 곳이 홍도였어요.” 끝없이 바다 이야기를 하는 장소가 여수 바닷가의 카페 ‘헤밍웨이’여서 다행이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넘실거렸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갑갑해서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뱃사람들의 삶과 바다

이어도 주막- 이성배·애지·2019
바다를 미칠 듯이 좋아했던 나머지 이성배 시인은 원양어선을 타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신 뱃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1997년부터 2012년까지 부산 사하구 괴정3동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 복무한 적이 있다. 그때 자갈치 공동어시장, 동광동과 중앙동의 선술집에서 선원들을 만나며 바다 이야기를 들었다. 치열한 삶의 바다, 목숨이 오가는 절박한 현장의 바다, 날 것의 바다는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온몸 가득 바다가 차올랐다. “이윤길 선장과 김성식 선장을 알게 되면서 대학 때 놓아버렸던 시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해양문학이 뭔지도 몰랐지만, 바다에 관해서는 쓸 게 많았지요.” 그는 ‘바다에는 메아리가 없다’ 등 40편의 시로 2011년에 한국해양문학상을 받았다.

“제가 아는 바다는 간접경험의 바다입니다. 제가 만난 뱃사람들, 정말 아프고 치열하게 사는 그들의 삶을 시에 다 담지 못했어요. 선창가 술집에서 만난 선원 중에는 개인적으로 불행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뱃사람의 호방한 기운은 숨겨지지 않았죠. 그들이 들려주는 바다는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였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니 산만한 파도 못 봤제. 바다가 벌떡 일어나 산처럼 덮치는 기라’ 그 이야기는 시 ‘하선(下船)’에 나옵니다. 언젠가 선원의 이야기를 ‘제대로’ 쓰고 싶어요.”

시집 ‘이어도 주막’을 읽고 있으면 배를 타고 세상의 바다를 떠도는 기분이 든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대상의 바다가 아니라, 온전하고 거대한 존재로서의 바다가 느껴진다. 주변이 온통 바다이고, 바다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이성배 시인의 바다에는 삶이 출렁인다.

‘이어도 주막’ 배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오자. 먼저 ‘출항’이다. “땅에서 쩔뚝이던 뼈마디 파도에 흔들려야 제 자리 맞춘다. 서른 해 늙은 어선도 밸러스트에 짠물 차야 중심 잡는다. 출렁거려야 바로 서는 선원의 관절, 흔들려야 멎는 땅의 멀미. 메인 엔진 한껏 부풀면 정박하지 못하는 가슴도 시동을 건다.(하략)” 떠난 배는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귀항’을 읽어보자. “(…) 항해일지 행간마다 죽음과 삶 늘 함께 기록되고, 희망과 좌절 뱃전에 수많은 상처로 남았는데, 오륙도 등대, 심장의 고동처럼 붉게 깜빡이고 있다. 아! 부산항.”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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