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지원 받고 사라지는 예술인
- 지역 문화에 안착 돕는 혜택 필요
- 시 당국·문화재단 등 행정기관
- 작품에 대한 직접 지원은 한계
- 지원 프로그램 패러다임 바꿔야
이미 여러 곳에서 많은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예술계는 다른 분야보다 특별히 더, 실적이나 경륜이 쌓이면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원받기 수월하다. 그러나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대부분의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뚜렷한 성과나 작품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 발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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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전북 전주 덕진구 팔복예술공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가 지역의 청년 예술인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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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에게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의 의의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혜택을 입은 젊은 예술가들은 재능의 크고 작음을 떠나 최선을 다해 작품을 제작했음을 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프로그램 종료 후의 예술 활동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공공의 지원을 받은 예술가들은 지역 문화 예술에 반드시 스며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젊은 예술가들을 돕는 이유의 전부다. 그런데 사라져버린다.
예부터 이르길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라 했다. 그렇지만 예술인 역시 사람이다. 꿈만 먹고 살 수는 없다. 육체는 쌀과 반찬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지니는 가치는 주로 무형의 것이기에 물질적인 돈으로 환산되기 어렵다.
신진 예술가들의 진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누가 본인의 인생을 책임질 것인가? 본인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예술을 하다가는 죽을 것 같은 거다. 이미 몇천 만원 쌓여있는 학자금 대출, 월세와 생활비 등등. 이러한 이유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이미 예술은 멀리 떠난다. 야속하게도 예술만큼 시간적 여유와 꾸준한 정진을 필요로 하는 분야도 사실 별로 없다.
청년 예술가의 성공적인 안착을 꾀하며 근 10년 넘게 진행되어온 신진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은 이제 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해온, 작품의 직접 지원 방식은 결과와 성과에 비중을 두고 있어, 육성과 생존이라는 목표에 분명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안타깝지만, 남은 작품도 별로 없고, 생존한 예술가도 드물다. 게다가 연령 제한이라는 쿼터제는 다른 계층의 불만을 연쇄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원로 예술인 지원 프로그램은 이미 생겼으니 이제 중견 예술인 지원도 새로 생길 판이다. 예술은 인생보다 길고, 언어와 인종 같은 장벽도 뛰어넘는다는데, 우리가 사는 이곳의 예술 행위는 나이로 단절되어 서로 섞여 소통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물론 이런 문제는 문화 예술 정책의 기조나 사회적 합의와 발맞추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복지정책으로 시행 중인 급여제도는 힌트가 될 수 있다. 공공극장은 현행대로 작품의 직접 지원을 유지하고, 시 당국이나 문화재단들은 젊은 예술가들이 자율적으로 설계하여 제출한 연간 활동 프로그램을 검토해 급여 형태로 지원해도 괜찮지 않을까. 수혜를 입은 신진 예술가들은 지금까지처럼 개인작품을 만들어도 좋고, 예술단체의 공연이나 연주에 참여함으로써 결과물을 대체해도 될 것이다.
작품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활동이라는 과정을 전제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예술 행정의 예술 행위를 바라보는 비전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많은 숙고와 논의, 방법적 연구 등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발생하리라 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애벌레에게 빨리 날아보라고 독촉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자연과 생명은 순리를 따른다. 애벌레에게는 식탐을 채울 양식과 그걸 소화할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 이후에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부산시립극단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