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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74> 정희선 작가의 그림책 ‘막두’

피란길에 잃은 오마니 아바이… 씩씩했던 ‘자갈치 아지매’ 삶 그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1-05 19:16:0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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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서 태어나 산업디자인 전공
- 갖은 아르바이트로 학비 벌어
- 4년간 일본서 어학·그림 공부해
- 서울서 작가공동체 ‘힐스’ 활동

- 귀향 후 자갈치의 특별함에 매료
- 3년간 상인들의 여러 사연 모아
- 억척스러운 ‘막두’로 탄생시켜

자갈치시장을 모르는 부산 사람은 없다. 수산물 시장을 중심으로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아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시장에 들어서면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상인들과 손님들이 주고받는 말과 오가는 발길에 휩싸여 걷다 보면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다. 열띤 흥정이 벌어지는 가게를 지날 때면 뭔가 사야 할 것 같은 초초한 마음까지 드는 곳이다.

자갈치아지매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 ‘막두’의 정희선 작가를 자갈치시장에서 만났다. “살아있다”는 말은 얼마나 생생하고 뜨거운가. 자갈치시장은 한겨울 추위 따위는 아랑곳없이 ‘살아있다.’ 자갈치아지매들의 부산 사투리가 추위를 날려버렸다. 어디선가 그림책 주인공 ‘막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자갈치아지매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 ‘막두’의 정희선 작가가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자갈치시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그림책을 내고 싶다는 꿈

정희선 작가는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작가공동체 ‘힐스’에서 그림책을 공부했다. ‘막두’는 그의 첫 작품이다. “그림을 좋아하면서 자랐지만, 잘 그린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편집디자인 일을 했는데 조금의 오차나 실수도 허용 안 되는 작업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답니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어요. 일본에 어학연수를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모았어요. 2년간 연수가 끝나고 동양미술학교에 편입해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어요. 잘 그리는 테크닉을 배우러 갔는데, 그곳에선 그런 걸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주제를 던져주고 마음대로 작품을 해보라고 하는데, 그런 방식이 제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자유롭게 마음속의 응어리들을 풀어냈고, 표현했습니다.” 미술학교에서 보낸 2년까지 그는 일본에 4년간 머물렀다. “일본에 공부를 하러 갔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4년 동안 오로지 제 힘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지요. 그래서 그 4년이 좋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로 갔다. 작가공동체 ‘힐스’에서 그림책 공부를 시작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나는 언제 그림책을 낼 수 있나, 주눅도 들고 울적하기도 했죠.” 그런 그를 단단하게 일으켜 세운 것이 아르바이트였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경험들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림책 내는 일이 뜻대로 안 돼 서울생활에 지쳐갈 무렵 시각장애인 도우미를 했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 속에서 살아온 장애인인데 ‘희미한 한 줄기 빛만 있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가진 게 참 많구나 하고요. 무엇보다 그림책을 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요.”

10년간의 서울생활을 마치고 부산에 돌아왔을 때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이 자갈치시장이었다. “부산 사람이어서 그런지, 부산에 있을 땐 자갈치시장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적은 없어요. 늘 곁에 있는 사람처럼 익숙해서 그랬겠죠. 그런데 서울에 사는 동안 부산을 보았을 때 자갈치시장은 아주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당당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막두’

막두- 정희선·이야기꽃·2019
자갈치시장에서 그가 처음 본 것은 고되고 힘들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씩씩하고 열정적인 삶이 보였다. “3년간 틈나는 대로 시장에 들렀습니다. 사진 찍는 걸 상인들이 싫어하시는 것 같아 작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지요. 자갈치 관련 사진자료는 엄청나게 많지만, 제가 느끼는 감정과 장면이 중요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말도 못 건넸어요. 상인들이 바쁠 땐 바빠서, 손님이 없을 땐 없어서…. 가만히 한 쪽에 앉아 그림 그리면서 낯을 익혔지요. 얼굴을 그려 드리기도 하고요, 그러는 동안 이런 저런 사연을 들려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피란 온 후 헤어진 어머니를 60년 내내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 자식에게 생선 비린내가 전해질까 가까이하지 못하는 아주머니…. 정 작가는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가슴에 품고도 힘차게 살아가는 자갈치아지매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 많은 이야기들이 그림책의 밑거름이 되었다.

주인공 ‘막두’는 피란길에 부모님을 잃었다. “막두야, 잘 들어라이. 우리는 부산으로 간다. 혹시라도 헤어지게 되면 영도다리로 와야 한다. 알갔지?” 어린 막두는 혼자 걷고 걸어서 영도다리로 왔다. 다리 위에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영도다리에서 “오마니~! 아바이~!”를 외치던 어린 막두는 다리가 보이는 자갈치시장에서 삶을 견뎌냈다. 아니, 어리고 혼자였지만 씩씩하게 살았다. 막두는 ‘삶’ 앞에서 좌절도 포기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았다.

정 작가의 그림은 강렬하게 다가온다. 거친 것 같으면서도 따뜻하다. 무뚝뚝한 말투지만 사실은 품이 넉넉한 자갈치아지매 같다. “막두라는 이름은 억척스러움, 치고 나간다는 의미에요. 제가 자갈치시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힘든 시절을 살아오면서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선 많은 막두들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그러는 동안 저도 제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독자들이 그것을 고스란히 느낀다고 해요. ‘막두’를 그리는 동안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리는가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거에요. 막두를 그리려고 고민했던 제 진심을 함께 느끼는 독자들이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새 건물로 옮겨간 공판장이 있던 자리에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공판장 새벽의 차가운 공기, 바쁘고 활기차게 움직이던 사람들, 그 모든 것에서 생동감을 느꼈습니다.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었지요. 열심히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열심히 생각했습니다.”

정 작가의 책을 자갈치아지매 ‘막두’가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림 그린다고 욕봤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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