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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24> 테너 오동주

“나는 예술기획계 원칙주의자… 소신 지키려 매년 독창회 열죠”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2-29 19:09:0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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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세부터 고3 때까지 신문 배달
- 성악 전공에 가족 반대 심했지만
- 아버지 극진한 지원 덕에 꿈 이뤄
- 대학졸업 후 6년간 이탈리아 유학

- 부산시립합창단 기획자도 겸해
- 시민아카데미 프로그램 만들어
- 변하는 예술단 원칙 지키려 노력
- 관객·작품 이어주는데 한계 느껴

1978년, 하루에 버스가 6대 드나들던 강서구 녹산 벽촌에도 신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6살 꼬마가 새벽 5시에 일어나 할머니가 아랫목에 묻어둔 옷을 입고 신문 배달에 나섰다. 새벽공기를 가르는 배달일은 고교 3학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 16부로 시작해 257부로 늘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아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아이가 바로 테너 오동주(46)다. 성악가, ‘남성성악앙상블 4+1’ 멤버, 부산시공무원합창단 지휘자, 부산시립예술단 행정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성실한 어린 시절

테너 오동주가 기획자로서의 소신과 예술가로서의 경험을 밝히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 노래가 늘 익숙했어요. 좋은 노래를 하면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성악을 전공하겠다 하니 집안의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 실기고사장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가 ‘낙방이 곧 효도’라 했을 정도였다. “군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세 살 때 부친을 여의고 누나 셋에 외아들로 자란 분이라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남다르십니다. 음악이 낯선 분야다 보니 당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걱정이 크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들의 뒷바라지만큼은 누구보다 극진했다. 경성대학교 성악과 졸업 후 6년간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뻬스카라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그의 남다른 성실성과 아버지의 각별한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8월 은사 마리아 루이자 까르보니 선생님을 뵙고 왔습니다. 어찌나 반가워하시던지, 자주 찾아뵙지 못해 송구스러웠지요. 제게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아흔 가까운 연세에도 음악적 열정이 여전해 좋은 음악을 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오동주 하면 노래보다 의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떠나온 지 오래된 스승을 찾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생활이 어려운 지인의 집에 쌀가마니를 놓고 가더라는 이야기도 흔한 일은 아니다. 사람의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었던지 유명인과 우연한 만남도 잦았다.

“서면 지하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부산시장 선거에 낙선하고 돌아가는 길이라 하셨는데 두 시간이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하철이 끊기는 바람에 택시비 2만 원을 주고 가셨죠. 국제신문 ‘한낮의 유콘서트’를 보고 나오는 길에는 변호사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고, 이탈리아의 집 앞 카페에서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학생은 꿈이 뭡니까?”라며 이야기를 건넸다. 청년은 꿈을 가져야 하되 막연하거나 흩어지는 꿈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는 러시아와 유럽음악에 관한 정담을 나누었다. 서글서글한 말씨에 유려한 입담,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우연한 만남조차도 의미 있게 만든 것이다.

■서글서글한 말씨·유려한 입담 자산

이런 기질은 2002년 귀국 후 성악가로 활동하다 2008년부터 부산시립합창단 기획자로 일하면서 잘 발휘되었다. “예술의 범주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요? 저는 기획이 예술 행위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결정하고, 출연진 구성부터 예산 마련, 공연을 갈무리하는 일까지 모두 예술의 영역에 듭니다. 그래서 시립합창단 기획자라는 자리가 정말 중요하고 또 그만큼 자랑스러웠죠.”

2014년 예술단이 통합 사무국 체제로 바뀌면서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 “시민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성악가들에게는 저마다 오페라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오페라보다 더 재미있죠. 부산 성악가들이 오페라 배역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무대가 아닌 강의실에서 성악가들을 가까이 만나니 수강자들이 오페라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되더군요.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어떤 자리든 최선을 다해 왔지만 요즘 한계를 느끼는 일이 잦다. 변화된 운영 체제 안에서는 원칙을 고집하는 특유의 소신을 지키기 힘이 든다.

“예술행정가나 기획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교량’이라 생각합니다. 예술가와 무대, 관객과 작품 사이를 이어주려면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각 분야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데, 현재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어 답답합니다.”

■기획자·예술가 소신 놓칠 수 없어

그에게 무대는 기획자로서의 소신과 예술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담아내는 돌파구다. 그래서 매년 독창회를 빠짐없이 연다. 돌파구라 하면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다 생각하겠지만, 그의 무대는 오히려 원칙을 철저하게 따른다.

“발성과 창법에도 올바른 원칙이 있습니다. 지키려면 어렵고 힘들지요. 하지만 자기만족이 아니라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노래라면 더더욱 그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악보와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선곡만큼은 달콤하다. 통속적인 이탈리아 민요를 예술가곡으로 승화시킨 토스티의 곡은 빼놓지 않는 레퍼토리다. 아름다운 시어에다 서정적이고 기품 있는 멜로디는 오래전부터 그가 꿈꾸던 ‘노래하는 삶의 풍경’과 다르지 않아 특별히 좋아한다.

살다 보면 누구든 뜻하지 않은 곳에 덩그러니 놓일 때가 있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호도되는 참담한 일을 실제로 겪기도 한다. 그것이 세상이고 또 삶이다. 격랑의 시대를 살았던 쇼팽은 템포 루바토(tempo rubato)로 생을 달랬다.

정해진 시간 안에 연주자가 임의로 느리거나 빠르게 박자를 바꿀 수 있는 템포 루바토. 테너 오동주에게 필요한 삶의 지침이 아닐까. 쇼팽의 그것이 특유의 서정성을 빚어내었듯이, 템포 루바토가 그의 노래를, 그의 삶을 새로운 곳으로 안내할지도 모른다. 곧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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