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립미술관서 ‘영혼의 떨림’展
- 280㎞ 길이 실 거미줄처럼 엮어
- 존재의 불확실성 등 표현해
- 작품 110점 내년 4월까지 전시
앙상한 뼈대만 있는 배 여섯 척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배에서 피가 하늘로 솟구치듯 붉은 실이 하늘로 솟아 이리저리 엉키면서 서서히 면을 이루고 어느덧 천정과 벽면 등 공간을 가득 채운다. 전시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우면서 이어져 있다. 불안해 보이는 배들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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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시오타 치하루의 설치작품 ‘불확실한 여정’ 앞에 작가가 서 있다. 작품에 사용된 붉은 실의 길이만 280㎞에 달하는 대작이다. |
부산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에 지난 16일부터 전시되고 있는 설치미술 작가 시오타 치하루 전시 ‘영혼의 떨림’에 전시된 ‘불확실한 여정’이다. 작품에 사용된 실의 길이만도 280㎞가 넘는 대작으로, 전시의 백미로 꼽힌다. “붉은 실은 혈관을 상징한다. 얽힌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뜻한다. 배는 바다에 나가면 전복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존재지만 모든 실은 엮여 있다. 배는 연결돼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최근에 자주 만든다.”
작가는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지난 6월부터 4개월 동안 66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국내 비엔날레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는 했지만, 대규모 개인 기획전이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는 1990년대 작품에서부터 최근작까지 110점을 선보인다.
작품 ‘침묵 속에서’는 검은 실을 사용했다. 화재로 탄 피아노와 의자를 소재로 삼았다. “아홉 살 때 옆집에 불이 났다. 불에 그을린 피아노가 마당에 나왔다. 고장이 나 소리가 날 리 없는데 환청을 경험했다. 없는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실로 드러내려 했다.”
공간 전체에 빨간색 혹은 검은색 실을 엮어 거미줄처럼 펼친 설치작품은 작가의 대표적인 연작이다. “2차원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게 답답했다. 캔버스가 아닌 공간에 선을 그어보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다. 실을 사용하면 텅 빈 3차원 공간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엉키거나 엮이고, 끊어지거나 묶이고 당겨진다. 실은 마음도 끌어당기며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 좋은 작품 소재다.” 작가는 또 “처음에는 모두 혼자 작업했다. 작품이라는 것은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3300㎡가 넘는 공간에 전시하려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팀으로 하고 있다. ‘불확실한 여정’은 10명이 도와줘서 10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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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실을 사용한 작품 ‘침묵 속에서’.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
‘내 몸 밖’(Out of My Body)에는 작가가 암투병의 기억을 담아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제안받은 2017년, 난소암 재발 판정을 받았다. 실처럼 가늘게 잘린 붉은 소가죽은 피를 흘리며 찢긴 신체를 보는 듯했다. 그 아래에는 잘린 손·발·다리·팔 조형물이 나뒹굴고 있었다. “12년 전 독일 전시 전 난소암 판정을 처음 받았다. 치료 과정에 ‘영혼이란 무엇이고, 나의 몸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 수술은 항암제를 맞고 부위를 적출하는 수술이었다. 치료 과정이 너무 기계적이라 내가 컨베이어벨트에 누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을 흩어진 신체로 작품에 표현했다.”
회고전의 성격인 이번 전시에서는 대형 설치작품을 비롯해 그림, 사진, 행위예술 기록 영상 등 작가의 25년 작업을 볼 수 있다. 영상 ‘Try and Go Home’은 1996년 독일로 떠나 세계적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게서 수업을 받으며 남긴 작품이다. “마리나 선생이 학생들을 프랑스의 어느 성에 데리고 가 사흘간 단식을 시켰고 다음 날 새벽에 깨우더니 ‘지금 떠오르는 단어를 적으라’고 했다. 내가 쓴 단어는 ‘일본’이었다. 그 단어로 작품을 만들라고 했다. 나는 맨몸으로 야산을 기어오르고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일본에 대한 내 감정이 그랬다. 떨어지면 가고 싶고, 일본에 가면 떨어지고 싶은…”
오사카 출생인 그는 부산 출신 배우자와 함께 현재 독일 베를린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는 내년 4월 14일까지. (051)744-2602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