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는 물도 아니고 뭍도 아닌 곳, 징그러운 무엇인가가 튀어나오는 곳, 그곳에 살지 않는 것들은 빠져 잠기는 곳,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메워져서 도로를 내거나 아파트를 올려야 할 곳 등으로 인식된다. 지구 표면적의 6%를 차지하고 10만 종에 달하는 생명이 사는 곳이지만 경제 논리에 의해 밀려난다. 습지는 생태보전구역으로 지정받아 개발을 면해도 도시에 포위돼 다른 생태계와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되면 가치를 잃어버린다. 부산에도 예외는 없었다.

저자는 생태학의 목소리를 꾸준히 앞장서 온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이자, 습지 등을 연구하는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이다. 사람들이 습지의 소중함을 몰라도 너무 몰라줘서일까? 저자는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습지는 생명의 서식지이자 다양한 생각과 감수성, 상상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알리려고 한다.

책은 책 속 주인공이 평범한 인물에서 이른바 ‘덕후’인 습지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은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현재는 부업으로 커피 전문점에서 일한다. 그는 도시에 살지만 도시 부적응자다.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세상으로 나와 일을 하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해프닝이랄 것 없이 하루를 마치는 도시에서의 단조로운 삶을 되풀이하며 권태를 느낀다. 부업을 해 가며 만든 영상마저도 세상에 내놓을 이유를 찾지 못한다. 주인공은 어느 날 인터넷을 헤매다 우연히 ‘반쯤 잠긴 무대’라는 팟캐스트를 듣게 되고, 비슷한 시기에 한 환경 단체로부터 영상 제작을 의뢰받는다. 두꺼비와 개구리가 이용할 생태 통로를 주제로 하는 홍보 영상이다. 주인공은 인간 세상 곳곳을 연결하는 도로가 두꺼비나 개구리에게는 차단과 죽음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저자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서 도시와 습지를 낯설게 바라보길 유도했다. 습지는 생명의 서식지이자 다양한 생각과 감수성,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설명한다. 생태학의 관점에서 습지가 지닌 독특한 위상을 탐구하는 한편, 습지가 선사하는 충만한 감각들을 도시 사람들에게 일깨워 줌으로써 생태적 관점을 체감하게 한다. 권용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