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간 한 우물만 팠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냥 ‘피아노 고쳐 주는 사람’에 불과할 테지만, 스스로는 그 작업(조율)을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조율에 입문한 뒤 ‘이왕 하는 일, 우리나라 최고의 조율사가 되겠다’며 노력했고, 64년 동안 갈고 닦다 보니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예브게니 키신, 라두 루푸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주인공은 서울 예술의전당 전속 조율사로 재직 중인 대한민국 조율 명장 1호 이종열이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공연장들의 피아노를 4만1000여 회 조율하면서 피아니스트들의 손에서 백여 가지의 소리로 살아나게 도왔다. 이 책은 64년 경력의 조율사가 무대 뒤 피아노 조율에 평생을 바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아니스트마다 원하는 소리가 다른데, 각 연주자가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도록 피아노를 조율하는 것이 콘서트 조율사의 일이다. 저자는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조율을 잘하지 못하면 거칠고 둔한 소리를 내기에 “조율은 예술이다”고 단언한다. 조율이 잘 되어 피아노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 조율사와 연주자가 감동하며, 끝으로 청중이 감동한다.

세계 최정상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일화는 저자의 저력을 실감하게 한다. 한때 미켈란젤리의 조율사를 꿈꿨다는 지메르만은 피아노에 박식한 만큼 까다로워서 자신의 피아노를 싣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 내한한 2003년, 연주회를 마쳤을 때 객석에서 떠나갈 듯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커튼콜에 나온 지메르만은 이렇게 말했다. “완벽한 조율로 최상의 피아노를 만들어 준 미스터 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조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저자에게는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힘 있는 피아노 음색은 처음”이라고 기뻐한 라두 루푸, 자신이 처음으로 직접 주문한 사항을 5초 만에 해결하자 저자 앞에서 크게 웃은 예브게니 키신, 피아노를 쳐 보고 벌떡 일어나 감탄사를 연발한 조지 윈스턴 등. 때로는 연주자의 몰이해에 힘들고, 과로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완벽한 피아노를 만들어 연주를 돕는다는 사명감에 손과 귀를 연결하는 감각을 64년간 벼려 왔다는 주인공이다.

책 표지는 장인의 손길이 피아노 해머에 닿아 있는 모습이다. 목재에 양모가 감긴 해머를 미세하게 손질하면서 기계 장치인 피아노를 영혼이 담긴 소리를 내는 악기로 바꾸는 순간이다. 임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