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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70> 정우련 작가 소설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소설인가 싶다가도 … 읽다보면 어느덧 내 이야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10 19:36:4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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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
- 예술가 부부의 지친 사랑
- 고교 동창의 과거와 현재 등
- 소설마다 달라지는 화자의 시선
- 등장인물에 독자들을 투영시켜

- “타인의 고통을 지나치지 못해
- 본인 희생해 글을 쓰는 소설가”
- 세상·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는
- 나오지 못했을 이야기 7편 담아

우리는 지금 삶의 어느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인생을 사계절이나 24시간에 비유해서 가을이다, 또는 오후 3시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을이 오기 전에 봄과 여름을 겪었고, 새벽과 아침을 지나서 오후로 가는 사람들. 지나온 시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현재의 시간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문득 지나간 시간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만히 파문을 일으킬 때가 있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살고 있었다, 지금 관통 중인 시간대와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구나 새삼 느낀다. 빛나고 찬란했던 순간, 아프고 쓸쓸했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이 삶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 소설 같은 사연을 마음에 품고 있다. 정우련 소설가의 소설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누군가의 인생 실마리 하나를 잡아 조심스럽게 풀어내는 것 같다는,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삶의 주인공이 술술 풀어내는 것이 보인다. 정우련 소설가를 광안리 바닷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우련 소설가가 단골이자 작업실인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의 한 카페에서 소설집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움과 외로움이 가득했던 소녀

정우련 소설가는 199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자수정 목걸이’로 2000년 부산소설문학상, 첫 소설집 ‘빈집’으로 2004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 산문집 ‘구텐탁, 동백아가씨’를 펴냈다. 2019년 올해 가을에 낸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16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소설집이다.

정우련 소설가를 만나기로 한 카페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는데, 그가 뒤에서 다가와 손을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손길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맞다. 그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 카페에 자주 와서 글을 씁니다. 바다로 난 큰 창가도 좋지만, 제가 좋아하는 자리는 저 안쪽입니다.” 안쪽 좌석은 탁자 앞에 칸막이가 있고 두 사람이 나란히 앉는 좌석 형태이다. 탁자 위의 노트북이 켜져 있었다. “이 건물에 호텔이 있어서 카페가 종일 영업을 하거든요. 글이 막 쏟아지려 하면 새벽이라도 여기 와서 커피 마시면서 글을 쓰곤 해요.” 작가 옆에 앉아 있으니, 그 분위기를 알 것 같다. 거슬리지 않는 적당한 소리, 커피 향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정우련 소설가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너덧 살 무렵에 경북 성주의 외갓집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부산으로 돌아왔다. 외가는 대농이었다. 지붕 높은 대갓집에, 넓은 마당에서는 가을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타작할 정도였다. 풍성하고 넉넉했던 외가에서 살다가 부산 영도 대평동의 집으로 왔을 때 그는 낯선 환경 때문에 힘들었다. 몸과 영혼이 쉬는 ‘집’과, 그저 머물러 있는 ‘거처’가 다름을 깨달았고 외갓집을 그리워했다. 집에 대한 그의 마음은 첫 소설집 ‘빈집’을 비롯해 그의 소설마다 스며들어있다.

그리움과 쓸쓸함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걸 느꼈던 어린 소녀는 외롭고 조숙했다. 그 감성은 글쓰기로 이어졌다. 학교에선 글 잘 쓰는 아이로 통했다. 초등학교 학교신문에 시가 실렸던 날, 친구가 “련아, 네 시가 학교신문에 실렸다”고 외치며 달려왔을 때 그는 부끄러워서 창문가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글공부는 학창 시절 내내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들이 좋았습니다. 1학년 때 학교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는데, 국어교사인 문영나 선생님이 ‘너는 사물을 너무 아름답게만 본다. 하지만 사물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좋은 글을 쓴다’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국어 선생님들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학 문창과 시절 ‘소설창작 실기론’ 합평회 때, 그의 작품을 놓고 동기들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합평회는 살벌했죠. 다들 글 쓰겠다고 모인 친구들이었으니까요. 격렬한 시간이 끝나면 막걸리를 마시면서 질투와 부러운 마음을 풀곤 했죠.”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통증

팔팔 끓고 나서 4분간- 정우련·산지니·2019
‘팔팔 끓고 나서 4분간’은 ‘빈집’ 이후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 중에서 7편을 골라 다시 퇴고하고 수록했다. 16년 만에 나온 소설집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단숨에 읽었다. 소설마다 달라지는 화자의 시선은 그동안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 소설가의 문체로 빛났다.

‘통증’은 예술가 부부의 지친 사랑과 소모적 언쟁을 보여준다. 중년여성이 느끼는 삶의 통증이 담담한 진술이라서 더 아프게 다가왔다. ‘말례 언니’는 어린아이가 지켜본 동네 식모 언니의 애달픈 삶이다. 대평동에서 자란 작가의 유년 시절 풍경이 작품의 바탕이 됐다.

‘우리들’에서는 고등학교 동창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모두 가난했지만 풋풋한 감성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각기 세상의 풍파를 거치고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는 과정이다. 이 작품에서 고등학생 정우련을 찾으려 하다가, 필자의 고교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정우련의 소설은 이렇게 독자를 자신의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역시, 소설은 소설이다. 작가를 떠올리려 해도 곧 이야기로 빠져들게 되고,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영시켜보게 한다. 긴 인생길 어디쯤 걸어왔는지 여기가 어딘지 잠시 생각하는 것, 정우련 소설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소설가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통증을 좀 더 예민하게 느끼는 ‘선천성 통증과대 감각증’(이런 병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환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마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제 삶과 건강을 통째로 갈아서 글을 쓰는 작자들 말이다. 그것은 사랑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과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볼수록 소설가는 몹시 아프겠다. 그것이 그의 운명일 터. 새벽에 노트북을 껴안고 바닷가 카페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소설로 가는 길이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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