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 시, 긍정적인 삶 도와준 치유제
- 글쓰던 공간의 세상 이야기 담아
“수상 소식을 듣고 난 후 최계락 시인의 동요 ‘꼬까신’을 불러 보았습니다. 어릴 때는 누가 쓴 곡인지도 모르고 부른 그 노래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저에게 최초로 세계와 우주의 통찰력을 가르쳐주신 최계락 선생님을 기리는 큰 상을 받게 돼 정말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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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회 최계락문학상 공동수상자 최정란 시인.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
제19회 최계락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최정란(58) 시인은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시 창작 활동에 나서게 됐다. 전업 시인으로 2007년 첫 시집 ‘여우 장갑’ 이후 3권의 시집을 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하던 중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교직을 떠나게 됐습니다. 이후 회사를 다니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1995년 어머니가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우울증을 겪었는데 그때 시를 쓰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어요. 시를 쓰기 전에는 나 혼자 슬픈 줄 알았는데 쓰고 보니 세상 사람 모두가 슬프고 외롭더군요.”
최 시인은 “최계락 시인의 시 ‘꽃씨’를 보면 작은 꽃씨 하나에 빨간 꽃, 파란 하늘, 노란 나비 등 온 우주가 들어있다. 시를 쓰다 보면 실재와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시를 쓰면서 시간적 상상력과 통찰력을 배운다”고 말했다.
“집 근처 이디야커피숍 두실역점에서 이번 시집 ‘장미키스’를 썼어요.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는 시를 쓸 때의 배경이 드러나는 작품이 있어요. 일례로 ‘꽃 지는 일, 쉽다고 누가 말하나’는 커피숍을 찾은 젊은 취업준비생과 주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결혼을 자아실현의 대척점에 두는 요즘 세태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또 ‘인형뽑기’는 인형들이 갇혀있는 공간이 어쩌면 우리 젊은이들의 잃어버린 세계,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올해 최계락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그가 쓴 ‘수상소감’에서도 시와 삶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시를 몰랐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상상하면 끔찍합니다.… 시를 쓰면서 세상의 모든 실패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슬픔을 알게 됐고, 그 자체로서의 존재와 삶을 긍정하게 됐습니다.…” 최 시인은 ‘시와 사상’ 편집운영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부산작가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
※최정란 시인 자선(自選)시
<백만 년에 하루쯤>
넘쳐 오르는 기쁨을 자제하기 위해
골치 아픈 책을 읽거나 무겁고 진지한 문제에 골몰하는
이상한 날이 있다 백만 년에 하루쯤
오늘 하루만 기뻐하는 것을 용서하면 안 되겠니
백만 년에 하루, 이 드물고 드문 기적 앞에서
왜 머뭇거리는가
환호성 지르며 기뻐하지 못하는가
심지어 가책을 느끼는가
슬픔의 지층 켜켜이 얼어붙은 얼음의
희디흰 동토에
기쁨 한 방울 웃음 한 점 떨어뜨릴까 겁내는가
슬픔의 순수가 훼손될까 두려워하는가
백만 년 만에 온 단 하루를 기뻐하지 못하고
기쁨 위에 검은 천을 씌우고
부풀어 올라 날아오르려는 기쁨을 누르는
소심한 짐승
이 작은 기쁨이
세상의 뿌리 깊은 슬픔을 담보로 한 것이 아니기를
암울한 시간을 그토록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쯤 환한 나를 나는 기어코
용서하지 못하는가
<약력>
1961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남. 계명대 영어영문학과,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여우장갑’ ‘입술거울’ ‘사슴목발애인’ ‘장미키스’. 제7회 시산맥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