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끝까지’는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우즈베키스탄과 일본의 수교 25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추진된 합작 프로젝트의 메가폰을 쥐고, 제작 중단된 역사물 프로젝트 ‘1905’와 ‘세븐스 코드’(2013), ‘산책하는 침략자’(2017)를 함께 한 마에다 아츠코를 다시 기용해 해외 로케이션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 벨기에 자본으로 만든 고딕 호러 ‘은판 위의 여인’(2016)과 더불어 기요시가 일본을 떠나서 찍은 작품이며,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SF의 콘셉트를 끌어왔듯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장르로의 변신을 꾀한 한 편의 실험이다. 여행 프로그램의 리포터인 요코의 시점과 동선을 따라가며 우즈베키스탄의 이국적인 풍광을 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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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의 끝까지’ 스틸. BIFF 제공 |
얼핏 이 영화는 여행의 과정을 담담히 그리는 평범한 로드무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 기요시의 인장은 어김없이 찍혀 있다. 일행 외에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요코는 불안에 휩싸인다. 숙소의 문을 걸어 잠그고 도쿄만에서 소방관을 하는 남자친구와의 연락에 집착하는가 하면, 현지인의 호의와 환대를 뿌리치고 도망가는 등 영화는 폐쇄적으로 고립된 요코의 심리상태를 빈번히 묘사한다. 소통 부재의 상황은 주변 인물에게서도 나타난다. 프로듀서는 유원지 놀이기구에서 위험한 촬영을 강행하는 독불장군이며, 돈 이외에는 인간의 감정과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메마른 인간성의 소유자이다. ‘속죄’(2012)에서 두드러졌던, 소통의 부재와 단절을 겪는 인물에 대한 관심은 이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인 제작진과 현지인 간의 통역을 도맡는 테무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나보이 국립극장에서의 촬영을 권유하는 테무르는 극장이 세워진 배경에 2차 대전 패전 이후 타슈켄트로 끌려와 노동에 종사하던 일본군 포로들의 역사가 있었음을 환기한다. 공포물의 한 정점을 이룩한 ‘절규’(2007)에 이어 감독은 역사에 대한 망각을 조장하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된 분위기에 또 다른 방식으로 일침을 놓는 것이다. 일찍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이 분다’(2013)에서 경고한 바처럼, ‘지구의 끝까지’는 요코와 방송 제작진으로 대변되는 보통의 일본인들이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지 않으면 다시 한번 비극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란 암시를 은연중에 남긴다.
‘큐어’(1997)나 ‘도쿄 소나타’(2008)와 같은 과거의 수작에 비하면 영화는 평이한 수준에 그친다. 그러나 이 평작에서도 일본 사회와 일본인의 사회적 병리를 해부하려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문제의식은 관철된다. 혼자만의 환상 속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부르던 요코가 종국엔 탁 트인 산야에서 절창하듯, ‘지구의 끝까지’는 마음의 눈을 감고 있던 한 영혼이 그 눈을 뜨기까지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영화이다. 영화 속 요코가 그러하듯 일본 또한 정신의 쇄국(鎖國)을 풀고, 세계를 향한 소통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요시의 근심이 영화의 면면에 묻어나 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