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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63> ‘부산항 연구’ 영웅 故 김영호 선생 제대로 기리자

해양수도 씨 뿌리고 밑거름된 선생의 삶 … 부산은 오롯이 기억해야

  •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9-10-01 18:53:5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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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이 된 항만연구회·부산학

- 1975년 7월 항만연구회 설립
- 각종 논문·자료 소개하고 축적
- 30여 년간 전문잡지 무료 배포
- 방대한 부산항사연대표 정리
- 모은 유물 466점 국가에 기증

# 부산항 연구 선구자 추모 나서자

- 삶 대부분을 항만연구에 바치고
- 마지막 육신마저 의학연구 기증
- 선생 업적 걸맞은 추모 작업이
- 부산 문화력 높이는 실천될 것

부산항 연구의 선구자·개척자·권위자 김영호(金英昊) 선생이 지난 9월 15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김영호 선생(1925~2019)
선생은 1925년 8월 6일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생전 많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15대째 부산에 사는 부산 토박이 집안으로, 그 사실이 뿌듯하며 부산을 깊이 사랑한다”고 밝혔다. 영주동 부산공립보통학교(봉래초등학교 전신), 중학교 과정인 부산공립보통소학교(서대신동)를 거쳐 진해 해군공원양성소(‘진해 해군 조선부’로 기록한 자료도 있다)를 나왔다.

선생에 관한 다양한 기록에는 해군공원양성소를 마친 뒤 태평양전쟁이 터지자 일제에 강제 징집돼 “일본 사세보해군항공대 정비병이 됐다”는 설명과 “대만에 있는 일제 해군항공대에 배속돼 미군 폭격으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는 내용이 각각 나온다. 시차를 두고 두 가지 경험을 모두 한 것으로 보인다.

해방 이듬해 1946년 귀국한 스물두 살 청년 김영호는 7월부터 미군정 운수부 부산항무청 해무과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뒷날 ‘부산항 박사’ ‘부산항 연구의 선구자·개척자’ ‘항만에 미친 외곬’ ‘인생살이 전부를 항만 연구에 던져버린 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 그가 처음 부산항과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30년 뒤 1976년 5월 퇴직할 때까지, 그가 처음 입사했던 부산항무청의 이름·소속은 계속 바뀐다. 재무부 부산세관 항무과(48년), 운수부 부산항만청(49년), 상공부 부산지방해무청(55년), 교통부 부산지방해무청(61년), 교통부 부산지방해운국(62년), 부산항만관리청(74년) 등이다.(선생이 직접 남긴 직장 생활 기록에 근거함)

부산 남구 대연동 김영호 선생 자택의 서재. 여전히 많은 부산항 자료가 남아 있다. 박수현 선임기자
기관 이름은 바뀌었을지언정 그는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켰고 인생의 중대한 계기를 맞이한다. 부산항 개항 100주년(1976년 2월 26일)을 앞둔 1975년 선생은 부산시(당시 시장 박영수) 등이 주도한 ‘부산항 개항 100주년 기념사업’ 실무(자료 수집)를 맡게 된다. 부산항 100년을 담은 15분짜리 영화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선생은 자료를 찾아 백방으로 뛰었다. 항구 도시 부산이 영화와 만날 기회였다.

김영호 선생 자택에 있는 각종 언론 스크랩(왼쪽), 2011년 국토해양부장관에게서 받은 기증유물수납서. 박수현 선임 기자 parksh@kookje.co.kr
■전설이 된 한국항만연구회

그때 정부가 ‘1876년 부산항 개항은 일제가 강요한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반대하면서 영화 제작 계획은 ‘엎어진다’. 이는 동시에 매우 중요한 계기도 줬다. 부산항 자료 수집이 혼자 감당하기 벅찬 일임을 두루 체험하고 느낀 그가 앞장서 1975년 7월 19일 단체를 설립한다. 부산항 연구의 전성기를 여는 전설의 ‘한국항만연구회’다.

항만연구회의 빛나는 업적과 선생의 눈물겨운 헌신을 회고하기 전에, 먼저 만나보아야 할 분들이 있었다. 유족이다. 1남 2녀(숙경 덕경 홍식) 가운데 장녀 김숙경 전 부산시교육청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을 만났다. 김 전 교육장은 선친이 타계한 뒤 며칠이 지나 ‘뒤늦게’ 기자에게 그 소식을 알려온 분이다. 부고가 왜 이리 늦게 전해졌는지, 왜 그 소식을 들은 이가 아무도 없는지 기자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항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옛 자료.
“저희로서도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아버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 전 교육장은 “아버님은 2007년 ‘내가 죽은 뒤 (장기 일부가 아니라) 시신 전체를 의학 연구를 위해 인제대 백병원에 기증하겠다’고 서약하셨다”고 했다. 아울러 “시신을 기증했으니 내가 죽으면 지체 없이 내 몸을 병원으로 옮기고, 장례는 따로 치르지 마라.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마라. 올 사람도 없고, 오는 사람도 힘들다”는 당부를 전했다고 한다.

기자는 “장례다운 장례는 치르지 못했다는 뜻인가”라고 물었고, 김 전 교육장은 “그렇다”고 조용히 답했다. 선생은 지난달 15일 밤 10시30분 부산 남구 그랜드자연요양병원에서 영면했다. 김 전 교육장은 “손자가 의학 공부를 했던 곳이자 당신께서 노년 건강관리를 맡긴 곳이 인제대 백병원이란 인연도 있지만, 학문 연구와 발전을 위해 작은 ‘자료’조차 얼마나 소중한지 평생 체득하셨기에 이렇게 결정하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산학 연구’ 선구자이기도

부산항 역사를 정리한 책자.
김 전 교육장의 회고다. “아버님은 청렴·과묵하셨다. 언젠가 한 교육기관이 국비를 받아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다. 이 교육기관의 국비 지출이 엄정하지 않고 좀 마구잡이였던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나는 공적인 돈을 이렇게 사적으로 못 쓴다’며 곧 그만두셨다. 만년에 저희가 용돈을 드리면 몽땅 항만 연구 자료 복사에 쓰시더라. 누군가 자료를 얻으러 오거나 부산항에 관심을 보이면 그렇게 기뻐하셨다. 그때 흐뭇하게 웃음 짓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선생의 부산항 연구는 항만연구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항만연구회는 전문 잡지 ‘항만연구’를 1975년 7월부터 2008년 종간 때까지 246호를 펴내 무상으로 배포했다. 항만 연구에 관한 관념 자체가 없던 시절부터 귀중한 논문과 국내외 자료를 소개하며 학술 연구와 부산항 자료 축적에 크게 이바지했다. ‘부산항의 모든 것’을 담은 중요한 슬라이드 6000매를 제작·축적해, 어디든 달려가 부산항과 부산 해양문화를 강의했다. 많은 포럼과 부산항 개항 기념행사도 주최했다.

김영호 선생 고희기념문집.
부산항만의 노동·기술·운영·정보·역사·개발·물류 등을 포괄하는 논문집·자료집·사진집·책자·교재를 펴내 부산항 연구 기반을 뒷받침했다. ‘부산항사연대표 1407~1945’는 혀를 내두를 만큼 정성스러운 데다 사건을 부산의 시선으로 정리한 ‘부산학’ 연구의 중요한 성과다. 1970년대부터 부산항 관련 방송 출연, 기고, 인터뷰 등을 무수히 해 부산항 발전 방안을 제언했고, 1980년대부터 부산에 해양박물관을 세우자고 주창했다. 2011년 ‘유물(해양 관련 슬라이드 필름 등 383건 466점)’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용득 부산세관박물관장은 한 기고문에서 “항만에 관심 있는 사람 치고 이 어른(김영호 선생)의 자료 하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라고 썼다.

■부산이 기려야 할 사람

이에 관한 자료는 자녀들이 1994년 9월 선생의 고희를 기념해 펴낸 ‘고희기념-아버지의 발자취’나 2001년 선생이 손수 정리한 ‘제2회 부산문화대상 해양수산 부분 공적증빙서류’ 모음 등에 상세히 나온다. 그런데 선생의 부고를 듣고 찾아간 자택에는 여전히 많은 부산항 관련 자료가 쌓여 있었다. 그간 부산항 자료를 숱하게 기증하고 나눠줬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선생은 이들 자료는 남겨뒀다. 어떤 자료가 있는지는 살필 필요가 있다.

김 전 교육장은 “유족으로서 이 자료를 필요로 하는 곳에 기증해 부산항 연구에 도움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다. 국제신문 인문연구소(051-500-5070)와 협의해 기증처를 찾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해양수도 부산’의 씨를 뿌리고 스스로 밑거름이 된 선생의 삶을 제대로 기리는 사업과 추모 행사도 꼭 필요하다. 그런 일 자체가 해양도시 부산의 문화력을 높이는 실천이다. 뜻 있는 이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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