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옥 교수, 한문본 완역 발간
- 총 2000쪽 290편 이야기 담아
- 신분과 계급의 붕괴·빈부격차
- 당시 사회 분위기 실감나게 그려

“야담(野談)은 입으로 구연되는 이야기, 책으로 전승되던 서사적 단편 그리고 조선 후기 현실에서 생성된 일화들을 기록하고 승화시킨 것이다. 야담은 전설이나 일화보다 길지만 소설보다 짧다. 야담에는 일회적인 것도 있고 소설적인 것도 있지만 ‘야담적인 것’이 더 많다. 야담은 매우 다채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 우리 민족의 인간상과 생활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박물관 같다.”(‘해설’ 중, 하권 971쪽)

야담은 한마디로 이야기판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런 야담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이강옥 영남대 교수가 한글로 옮겨 발간한 미국 버클리대 소장 한문본 ‘청구야담’이다. 이는 아주 간단한 소개인데 풀이하면 조금 길고 복잡하다.

우선 ‘청구야담’은 ‘계서야담’ ‘동야휘집’과 함께 3대 야담집으로 꼽힐 만큼 유명한다. 특히 서사적으로 정돈되고 발전된 작품이 많아 야담집 중 인기가 높았다. 덕분에 한글과 한문본 ‘이본(異本)’이 10여 종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이중 버클리대 소장 한문본은 ‘이본’ 중 가장 많은 290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동안 완역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교수의 이번 작업이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한국 야담 연구의 권위자로 지난해 ‘한국야담의 서사세계’를 냈다.

이 교수가 번역한 ‘청구야담’은 상·하권, 총 2000쪽에 290편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각 이야기에 한글 번역본과 한문을 함께 실어 한문을 직접 읽고 싶은 독자를 배려했다. 여기서는 290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대신 대략적인 작품의 성향만 살펴보겠다.

청구야담의 이본 중 가장 빨리 편찬된 한문본은 1833~1864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신분과 계급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빈부 차이가 벌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야담에 반영됐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의식주, 결혼, 자식 교육, 건강, 돈과 명예, 사랑과 애욕 등 다양한 욕망을 지니고 실현한다. 심지어 욕망을 성취해가는 과정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말한다. 예를 들어 ‘부부가 재산을 일구려고 각방을 쓰다’에 등장하는 부부는 가난하기에 자식을 보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십 년 동안 매일 죽 한 그릇만 먹고 각방을 쓰며 동침하지 않는다. 십 년이 지나 부부는 갑부가 되지만 늦은 나이에 출산이 어려워져 양자를 들인다. 이처럼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또 조선 시대의 신분제 변화 조짐을 읽어내고 애욕을 추구하는 모습도 과감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여성이 자기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이야기도 꽤 있어 여성의 위상 변화도 느낄 수 있다.

두 권을 합치면 분량이 2000쪽이지만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각 이야기는 길어도 10쪽을 넘지 않기 때문에 읽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서 보면 된다. 조선 후기 생활사와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이 적당할 듯하다. 김희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