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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61> 대만여행에서 생각한 것

국립대만박물관서 생각했다 ‘아, 이게 일본이 원한 모범답안이구나’

  •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9-09-10 19:36:0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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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옛 화가의 글·그림을
- 생활 속에서 소유·향유하는
- 대만인의 문화사랑을 느껴

- 국립대만박물관선 이질적 체험
- 日식민지 시대 일본이 주도한
- 개척성과·발전상 전시 압도적
- 일본이 원할 만한 역사적 관점

- 역사학은 결국 ‘해석학’이어서
- ‘해석의 투쟁’이 무엇보다 중함을
- 다시 한 번 절감한 대만 여행

지난 8월 말과 9월 초에 걸친 여름 여행의 행선지를 20년 만에 대만으로 정했던 건 물론 ‘노 재팬’ 운동의 영향 때문이었다. 근데 실은, 지난 10여 년 동안 1년에 서너 번씩은 일본 여행을 다니던 내게 “일본에 쏠린 눈길과 발길을 딴 데로도 돌려보라. 더 큰 것을 발견하고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라고 꾸준히 권해온 인문학자가 있었다. 오랜 기간 그 권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구나 ‘국경 도시’ 부산에서는 배만 타면 쉽게 규슈 쪽이나 대마도에 다녀올 수 있었으니, 나는 점점 ‘니혼 다이스키’(일본, 정말 좋아요)가 되어갔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얼얼바(2·28) 평화기념공원 옆 국립대만박물관의 고풍스럽고 웅장한 모습.
자주 일본에 가다 보니, 점점 더 편하고 익숙하고 친근해져 거듭 열도 쪽을 쳐다보게 됐다. 일본에 ‘묶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걸어온 ‘경제 전쟁’ 덕분에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려볼 계기를 얻었다. 지금 나는 그런 계기를 마련해준 아베 신조 총리가 고맙다. 일찍이 열도에 꽂힌 눈을 더 넓게 떠보라고 권해준 인문학자께도 고마움을 표한다.

■ 타이베이에서 만난 동아시아

   
국립대만박물관의 전시물 일부이다. 대만의 일제통치시기 일본의 학자, 연구자, 관료 등이 대만의 학술과 문화 발전에 기여한 점을 소개한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까지 가는 데 비행기로 2시간쯤 걸렸다. 가까웠다. 김해국제공항에서 출발해 타오위안국제공항에 내리니 자정이 다 됐다. MRT(도시철도) 공항선은 끊긴 시각이었다. 하지만 공항버스가 24시간 다녔다. 편했다. 숙소는 도심에 있는 국립대만박물관과 얼얼바(2·28) 평화기념공원 바로 곁이었다. 얼얼바 평화기념공원은 1947년 대만에서 일어난, 차별 반대·평등·민주를 위한 민중봉기인 2·28 사건을 기념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장소이자 시민 쉼터이다.

이번이 약 20년 만에 두 번째 대만 방문이었다. 처음 왔을 때는 얼얼바 평화기념공원이 중화민국 총통부, 타이베이역, 중정기념당, 국가도서관과 여러 MRT역에 빙 둘러싸인 요지에 자리 잡은 줄 몰랐다. 2·28 사건에서 우리의 제주 4·3 항쟁이나 광주민주화투쟁을 떠올리며 ‘대만과 한국의 동질성’에 관해 생각해보게 될 줄도 몰랐다. 이번엔 좀 달랐다.

여행 첫날, 큰비가 내린 바람에 비를 피할 겸 국립대만박물관 근처에 사이좋게 늘어선 작고 오래된 서점 몇 군데에 들어섰던 건 행운이었다. 서너 군데 서점은 모두 중국 고전·고서와 미술·서예 관련 책을 팔았다. 그중 중국 예술사를 빛낸 옛 화가들의 그림과 글씨를 솜씨 좋게 인쇄해 한 묶음으로 모아놓은 화집은 마치 선물세트 같았다. 팔대산인, 심주, 석도, 오창석, 왕희지, 동기창 등의 그림과 글씨 묶음을 이렇게 합리적인 값에 손쉽게 잔뜩 살 수 있다니. 대만 사람의 문화예술 사랑이 느껴졌다.

여기서 산 팔대산인의 화집을 길가에 앉아 쉬면서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수더분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더니 말을 걸어왔다. “팔대산인의 그림이군요.” 그래서 간단한 영어로 “네, 중국 옛 그림을 가까이 두고 보고 싶어 저 서점에서 샀어요”라고 했더니 돌아온 답이 인상 깊었다. 그의 대답은 “땡큐!”였다. 예술문화 자산에 관한 아주머니의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발걸음은 당연하게도(!) 타이베이시 스린구의 국립고궁박물원으로 이어졌다. 세계 최고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곳에서 받은 감흥은 압도적이었다.

■ 국립대만박물관에서 본 풍경

번화가 시먼딩에서 놀다가 근처 국립대만박물관에도 가보기로 했다. 자연사, 고고학, 대만 원주민 문화 등에 집중한 박물관이었다. 3층 큰 전시실에 들어가 살펴보다가 ‘한국인 눈에는 특이하다’ 싶은 광경을 잇달아 만났다. 전시물 구성의 상당한 비중이 ‘일본(인)이 주도한 개척·발전·성과’라는 관점에서 정리돼 있다는 느낌을 뚜렷이 받았다. 예컨대 입구의 전시 개관 설명문 영문 제목은 ‘Japanese Colonial Development in Taiwan’(일제 식민지 시기 대만 개발)이었다. 내용도 일제총독부 관련 활동 중심이다.

그 뒤로 19세기 이후 대만의 자연과 문화 연구에 업적을 남긴 인물에 관한 전시와 설명을 배치했는데 준 미즈노, 스케노리 카바야마, 요네타로 키쿠치, 우시노스케 모리, 타키야 카와카미, 겐타로 코다마, 야스이치 호리카와, 이치로 하야사카 등 학자의 이름과 업적을 볼 수 있었다. 다른 학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솔직히 처음엔, ‘국립대만박물관’에 들어왔는데 온통 일제의 대만총독부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학자들 업적만 만나는 점이 낯설었다. 그렇다고 국립대만박물관의 이 같은 전시 구성이나 관점에 ‘불만’이나 비판의식이 있는 건 전혀 아니었다. 국립대만박물관의 관점과 방식과 권한을 온전히 존중한다. 실제로 1895~1945년 50년에 걸친 일제통치시기에 이뤄진 대만의 근대적 발전에 일본(인)이 크게 기여했다고 판단했으므로 이렇게 일본 중심으로 해두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박물관을 나올 때쯤 문득 ‘한국인으로서’ 또는 ‘한국인이기에’ 받은 선명한 느낌이 있었다. 이건 대만과는 전혀 상관없다. 이런 거였다. ‘아하! 일본 극우·보수가 한국에서도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고대사와 근대사에 관한 한 한국의 국립박물관에도 일본이 한국의 발전을 주도했다고 전시하고 싶겠구나. 그래서 그렇게 줄기차게 고대사와 근대사 왜곡에 매달리는구나.’ 대만을 그들만의 ‘모범사례’로 염두에 두고.

■ 다시 떠올린 단재 신채호 선생

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오니, 유튜브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에 관한 논의와 비판이 가라앉지 않았다. 비판자들은 ‘반일 종족주의’가 일본 극우·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거의 같은 내용과 관점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본 극우·보수의 주장은 이런 것으로 이해된다. ‘역사적 문제에 관해 답은 한 가지뿐이며 우리가 내놓은 답이 바로 그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 30만 명이 희생된 난징대학살은 조작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에 혜택과 은혜를 베풀었고 그래서 조선은 발전했다. 고대에 일본의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쪽을 지배했고 중국이 북쪽을 지배했으므로 조선은 운명적 식민지이다. 조선인(한국인)은 거짓말을 일삼고 추하다.

여기에 대해 ‘답이 한가지뿐’이라는 저들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본질을 따지자고 들면, 저들은 짜증을 낸다. 그리고 관련 역사 자체를 조작한 사례가 계속 나온다. 실상 저들은 ‘혐한 짜증주의’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게 된 것은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 덕분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단재 선생이 말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명제를 비로소 이해한 것이다. 고전학자 정천구 박사는 “사료 자체가 역사인 것이 아니다. 그 사료를 어떤 관점·방식·기준에서 보느냐가 중요하다. 역사학은 해석이며 해석학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의 답은 (자신들이 제시한) ‘하나’가 아니다. 단재 선생의 말대로, 더 엄정하게, 우리의 관점을 살려,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투쟁’을 포함한다.

   
일본 극우·보수 혐한 짜증주의자들이 생각한 ‘모범사례’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단재 신채호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왜 제기됐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그리고 대만의 매력을 재발견한 것. 이번 대만 여행의 수확이었다.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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