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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33> 하멜이 본 조선, 조선이 본 하멜

난파 당해 온 이방인… 밀린 급료 받으려 13년 28일 ‘조선’을 기록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5 19:10:58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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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3년 일본 가던 네덜란드 배
- 조난 당해 하멜 등 제주도에 표류
- 나가사키 탈출 때까지 겪었던 일
- 70쪽 보고서 작성 본국에 알려

- 네덜란드, 조선과 직접 교류하려
- 군함 제작했으나 日 방해로 철회

- 조선백성, 생존선원 괴물로 묘사
- 신기한 구경거리 정도로만 취급
- 항해술 등 근대 문물엔 무관심
네덜란드 호르켐의 헨드릭 하멜 박물관에 있는 하멜 조형물(왼쪽)과 제주도에 조성된 하멜상선전시관. 배 모양 전시관은 하멜이 제주도에 표착했을 때 타고 있던 스페르베르호를 형상화했다. 헨드릭 하멜 박물관 홈페이지·국제신문 DB
■하멜이 본 조선

‘하멜 표류기’라고 알려진 70쪽 보고서의 원제는 ‘야하트 선 데 스페르베르호의 생존 선원들이 코레 왕국의 지배하에 있던 켈파르트 섬에서 1653년 8월 16일 난파당한 후 1666년 9월 14일 그중 8명이 일본의 나가사키로 탈출할 때까지 겪었던 일 및 조선 백성의 관습과 국토의 상황에 관해서’이다. 부록으로 작성한 ‘조선국기(Tiocen Cock)’에 조선 국토와 백성에 대한 기록이 있다. 국경선 해안선 어업 기후 생산 사원 군정 관제 조세 재판 종교 가옥 결혼풍습 교육 담배 무역 등도 간략히 기술했다.

1667년 12월 11일 하멜이 동인도회사 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하멜 표류기’)가 수록된 공문서.
하멜의 기록은 효종 4년부터 현종 7년까지 제주와 전주 여수 병영 등에서 13년 28일간 조선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물론, 그가 이것을 기록한 이유가 자카르타에 본부를 둔 네덜란드 동인도연합회사(VOC)에 속한 선원이었기에 그동안의 급료를 청구하기 위해서였다 해도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에 대한 기록으로서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나라에 이 책이 알려진 것은 1918년 육당 최남선이 ‘태평양’이라는 일본 잡지에 실린 것을 번역해 ‘250년 전 화란인, 헨드릭 하멜 조선 일기-36명의 14년간 체류실록’이라는 제목으로’ ‘청춘’14호(1918년 6월) 잡지에 연재하면서이다.

‘하멜 표류기’를 읽으면서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조선에서 하멜 일행이 받은 문화충격과 그들이 살기 위해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상상만 해도 힘들었을 것만 같았다. ‘13년이라는 체류 기간이면 조선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조선어에 대한 기록이 없을까?’ 하는 의문도 떨칠 수 없었다.

“1655년 6월에 청나라 사신이 다시 한양으로 왔을 때 우리 모두는 총사령관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칙사이기 때문에 벨떠프레이를 통해 제주도에 다른 배가 좌초되었는데 벨떠프레이가 그곳까지 가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구실로 우리 중 조선 말을 제일 잘 구사하는 사람 세 명이 그곳에 가 좌초된 배가 어떤 배인지 알아 와야 한다고 말하였다. 2, 3일 후 조수와 포수 그리고 선원인 조선인 병졸을 안내인으로 하여 함께 떠났다.”

여기서 ‘조선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내용을 발견했다. 하멜 일행이 심한 노역에 옷이 해어져 새 옷을 사기 위해 나무를 해서 팔거나 구걸을 허용해달라고 하는 구절도 보인다. 지방관이 일주일에 4일 농가나 사찰 등에서 구걸하는 것을 허용했는데 농민과 승려들에게 그들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금전을 얻어 겨울을 지낼 옷을 구입했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일반인과 소통하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705년 니콜라스 휘첸 (Nicolaas Witsen)의 ‘북부와 동부 타타르’(1705) 라는 책에서 하멜과 함께 탈출한 마테우스 에이보켄(탈출 당시 32세)이라는 이발사와 베데딕트 클락(탈출 당시 27세)을 휘첸이 인터뷰해 남긴 조선어에 대한 기록을 발견했다. 이 책에 당시 네덜란드어와 조선 발음을 적어둔 자료가 있는데 두 선원이 143개 조선어 어휘를 기억에 근거하여 발음하는 것을 휘첸이 기록했다. 이것이 최초로 한국어가 서양에 알려진 기록으로 17세기 조선어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는 눈, 발, 떡, 포도, 감 등의 어휘가 보인다. ‘어제 Oodsey(Overmorgen)’와 ‘모레 More(Morgen)’라는 어휘도 보이고 물고기‘Moelkoikie(alderhande soort van Vis)와 뭍고기 Moetkoikie(alderhande soort van Viees)’라는 단어의 대립도 보인다. ‘도깨비 Tootshavi(een Duivel)’, ‘각시 Kackxie(een Vrouw)’, ‘무명 Boejong( Lynwaet)’과 ‘비단 Pydaen(Zyde)’ 등 생필품 이름과 방향·계절·숫자 등에 대한 기본 어휘가 있었다. 특히 ‘머리(대갈)Taigwor, (‘tHooft)’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어떤 계층과 교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인이 본 하멜

제주 목사 이원진은 하멜 일행에게서 쌍안경을 받았으며 배에 싣고 온 포도주를 은 술잔으로 마셨다고 했다. 목사는 이들에게 미음을 주어 허기를 면하게 했는데 언어소통은 되지 않았지만, 술과 음식으로 그들은 어느 정도 마음이 통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이들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효종 4년 8월 6일(무진) 제주 목사 이원진(李元鎭)의 치계(馳啓)내용이다.

“배 한 척이 고을 남쪽에서 깨져 해안에 닿았기에 대정 현감(大靜縣監) 권극중(權克中)과 판관(判官) 노정(盧錠)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보게 하였더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배가 바다 가운데에서 뒤집혀 살아남은 자는 38인이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자도 다릅니다. 배 안에는 약재(藥材) 녹비(鹿皮) 따위 물건을 많이 실었는데 …왜어(倭語)를 아는 자를 시켜 묻기를 ‘너희는 서양의 크리스챤[吉利是段]인가?’ 하니, 다들 ‘야야(耶耶)’ 하였고, 우리나라를 가리켜 물으니 고려(高麗)라 하고, …중원(中原)을 가리켜 물으니 혹 대명(大明)이라고도 하고 대방(大邦)이라고도 하였으며,…정동(正東)을 가리켜 물으니 일본(日本)이라고도 하고 낭가삭기(郞可朔其)라고도 하였는데, 이어서 가려는 곳을 물으니 낭가삭기라 하였습니다.…그들 중에는 코로 퉁소를 부는 자도 있었고 발을 흔들며 춤추는 자도 있었다.”

하멜 일행이 한양에 왔을 때 구경꾼이 몰려와 길을 다닐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멜은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매일 많은 고관들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며 그 이유는 그들과 부인들 그리고 아이들이 매우 신기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또 제주도 사람들이 우리 생김새가 사람보다는 괴물처럼 생겼다는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마실 때는 코를 귀 뒤에 돌린다는 말까지 있었다.”

지난해 해양수산기록 전공 학생들과 하멜의 흔적을 찾아 네덜란드로 갔다. 호르켐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작은 마을의 길바닥에 친절하게 한글 표지판도 있었고, 한글로 ‘헨드릭 하멜 박물관’이라고 적어둔 곳에 도착해서는 이 먼 곳에서 조선까지 온 하멜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곳을 지키던 무심한 안내원은 이곳이 실제 하멜의 집이라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 도자기 몇 점과 하멜이 조선에서는 4, 5세 어린아이와 여자도 많이 피운다고 기록한 담배를 피우기 위한 담뱃대, 콩과 마른 명태와 한복을 전시해 두고 있었다. 마당은 한국식 정원처럼 꾸미기는 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하멜이 제주에 표착하는 영상을 보여주었고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지만, 암스테르담에서 한나절을 걸려 찾아간 곳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17세기 당시 네덜란드는 일본과 중국에서 교역권을 인정받아 동양에서 무역을 하고 있었으며, 조선을 다만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미지의 섬(조선을 섬으로 생각했다)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멜의 보고서로 인해 조선에 관심을 갖게 된다. 네덜란드는 독자적으로 조선 정복을 기획하고 군함을 동원해 교역권을 얻기 위해 ‘코리아호’라는 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고 1968년에야 한국과 네덜란드는 수교했다. 하멜 일행이 왔을 때 관측 기술과 선박건조기술, 항해술에 대한 관심을 가졌더라면 우리 역사의 큰 변곡점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되었다.

채영희 부경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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