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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65> 김금숙 그래픽 노블 만화가의 장편만화 ‘풀’

정면으로 다룬 위안부 할머니의 아픔 … 흑과 백 만화라 더 큰 울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8-18 19:27:5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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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소설 함께 있는 장편만화
- 한국적 기법인 붓·먹·여백 활용
- 일제의 만행 극대화 하지 않고
- 할머니의 표정·심리 위주 표현
- 영어·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도

- “위안부 실태는 잔혹범죄 그 이상
- 인권 젠더 등 더 큰 문제 말해줘”

지난 14일 제1400차 정기수요집회와 제7차 세계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세계연대집회가 열렸다. 올해는 일본, 미국 등 세계 12개국 37개 도시 57곳에서 함께 진행됐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우리나라는 8월 14일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다룬 장편만화 ‘풀’을 그린 김금숙 작가. 강화도에서 만난 작가는 서서 작업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드라마, 영화, 소설, 그림책 등 여러 장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다루고 있다. 김금숙 작가의 ‘풀’은 장편만화로 할머니의 삶을 본격적으로 그린다. 2017년 8월 14일 기림의 날에 맞추어 책을 출간했다. 김 작가를 경기 강화도에서 만났다. 작가를 찾아간 날은 8월 14일이었다. 그날은 위안부 기림의 날이었고, 책이 출간된 지 꼭 2년 만이었다. 강화도 양도면 도정리에는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이 쏟아졌다. 김 작가가 이 마을에 들어온 지 2개월이 조금 지났다. 2층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김 작가는 ‘풀’의 프랑스판과 영문판을 보여주었다. 외국어로 출판된 ‘풀’을 펼쳐보는데 눈시울이 확 뜨거워졌다. ‘풀’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일어, 아랍어로도 수출됐다. “위안부 피해사실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저지른 잔혹한 범죄를 넘어선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층계급의 딸, 여성 인권과 젠더, 인간사회의 계급과 계층 등 더 큰 문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 이야기하고 싶었다

   
풀- 김금숙·보리·2017
‘풀’을 읽으면서 “이건 만화가 아니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묵직한 주제의 소설을 읽는 기분, 아니 그 이상이었다. 책은 그림과 소설이 함께 있는 그래픽 노블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너무도 참혹해서 정면으로 마주 서기가 쉽지 않다. 부끄럽게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하면서 때로는 짐짓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풀’을 읽으면서 더 아팠다. 책을 읽기만 하는데도 이렇게 아픈데, 작가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또 얼마나 아프고 외로운 삶을 살았을까.

김 작가는 그래픽 노블 만화가이다. 1971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시절, 만화의 매력에 빠져서 자신만의 만화 기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학을 할까, 그림을 그릴까 고민할 만큼 글쓰기도 좋아했던 그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난 것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접한 후 줄곧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잊히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2014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만화가들이 참여한 ‘지지 않는 꽃’ 전시가 열렸다. 김 작가는 이 전시에서 위안부 문제를 담은 단편 만화 ‘비밀’을 선보였다. 단편 작업을 한 뒤에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기획한 것이 장편만화 ‘풀’이다. ‘풀’ 외에도 그의 작품을 보면 오늘날 사회에서 소외되고 아픈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첫 작품 ‘준이 오빠’는 발달 장애 청년 이야기다. 2012년에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뒤에 2013년에 우리나라에서 나왔다. ‘지슬’은 제주 4·3 사건을 다루었고, ‘아버지의 노래’는 1970년대와 80년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소시민의 삶을 담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만화 ‘미자 언니’로 제14회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2년부터 유럽과 우리나라에서 20회가 넘는 개인전을 열었다.

프랑스에서 17년간 활동하다가 귀국한 김 작가는 나눔의 집에서 이옥선 할머니를 만났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몇 차례 이옥순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할머니께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주셨고, 어느 날 몇 시간 동안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셨지요. 할머니께 감정 이입을 했을 때가 정말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김 작가는 ‘풀’을 쓰고 그리면서 실제로 앓았다.

■흑과 백이 던지는 메시지

김 작가는 한국적인 기법인 여백을 활용해서 붓과 먹으로 작업한다. 그림을 그릴 때, 동양화 붓, 칫솔, 스펀지, 나무젓가락, 손도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풀’의 그림에서 다양한 질감의 표현을 느낄 수 있다. 어떤 그림은 목판화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글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있지만 큰 울림을 준다. “할머니의 증언을 글로 옮기면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만 전하기 위해 다른 것을 걷어내고 깎아내는 과정이 있었지요.” ‘풀’은 가해자에 대한 미움을 극대화하지 않았고, 할머니의 감정과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먹으로 그린 흑과 백의 단순함이 이토록 강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다른 색을 덧칠할 필요가 없는 생생하고 아픈 증언이다.

위안부 피해의 잔혹함은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있는 그대로의 잔혹성을 담았다면 독자도 큰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 고민 끝에 폭력적인 장면들은 조금 거리를 두고 독자들이 스스로 상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잔혹한 장면의 묘사는 검정 프레임으로 처리됐다. 대신 할머니의 표정, 손동작, 몸의 기억을 표현했다. 검정 프레임의 페이지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책이 출간됐을 때 김 작가는 이옥선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할머니는 표지만 보고도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이 머리, 아버지가 이렇게 땋아주셨지. 어머니는 귀밑머리를 따로 땋아 뒤로 모아서 더 예쁘게 땋아주셨지만, 아버지는 이 모양으로 땋아주셨지….”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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