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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짊어진 그들, 삶·혁명·예술을 논하다

골짜기에 잠든 자 - 정찬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 국제신문
  •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  입력 : 2019-08-08 18:39:4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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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 게바라, 카네티, 존 레넌 
- 함께 식사한다는 상상력 눈길 
- 각자를 짓누르는 힘든 현실 
- 예술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 

정찬의 새 장편소설 ‘골짜기에 잠든 자’의 133쪽부터 149쪽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장면이 등장한다. 혁명가 체 게바라, 비틀스의 존 레넌 그리고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가 만나 저녁 식사를 한다. 이름이 조금 낯선 카네티는 198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세 사람을 통해 계속 언급되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시인 랭보다.

   
4년 만에 장편소설 ‘골짜기에 잠든 자’를 낸 소설가 정찬. ⓒ김광해·문학동네 제공
당대 그리고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것만으로도 소설 그리고 소설가의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이들은 각자의 삶과 혁명 그리고 ‘예술’을 이야기한다. 세 사람의 대화를 읽으면서 문득 작가는 왜 이들을 한자리에 불렀을까 라는 궁금증이 든다.

“세 인물의 ‘그림자 영혼’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 것은 존재의 그림자가 품고 있는 영혼의 깊이가 인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공간의 깊이와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깊이가 ‘골짜기에 잠든 자’를 쓰면서 제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었습니다.”(245쪽·작가 말 중)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럴 땐 소설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소설에 나오는 세 명, 랭보까지 더하면 네 명은 영혼의 깊은 곳까지 성찰한다.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뛰어난 인물이라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운명처럼 상처와 고통을 짊어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면서 비로소 작가가 말하는 깊은 곳에 다다른다. 가령 레넌에게는 어릴 때 뉴질랜드로 떠난 아버지와 자신을 이모 집에 맡긴 어머니의 빈 자리가 영혼의 상처였다. 랭보 역시 여섯 살 때 아버지가 그의 곁은 영영 떠났다. 체 게바라는 천식이란 괴물 때문에 두 살 때부터 발작을 일으켜 평생 죽음과 싸웠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서평을 위해 몇 줄로 압축하기는 쉽지 않다. 1960년대가 주요 무대지만 랭보가 아프리카 하라르에서 활동하던 1880년대 그리고 카네티가 세상을 떠나기 전인 1990년대까지 소설은 시간과 장소를 널뛰기한다. 하지만 작가는 ‘어떤 무명인의 비망록’이란 책과 랭보의 시를 통해 세 명을 연결한다.

삶, 혁명, 상처, 고통, 죽음이 뒤엉켰지만 이들의 영혼 깊은 곳에 침잠된 것은 예술이었다.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 원동력도 예술이다. 작가는 연결 고리가 없는 세 명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도 끝내 예술의 힘, 언어의 힘을 강조한다.

특히 작가는 카네티에게 많은 부분을 투영한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한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유대인 카네티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지만 글을 쓸 때는 독일어(소설 속에 이유가 나온다)만 사용한다. 조국을 잃어버린 그는 모국어(어릴 때 가족과 쓴 것은 스페인어)도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언어발작까지 일으킨다. 언어가 인간의 삶 그리고 예술에 얼마나 큰 공간을 차지하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입혀 소설을 완성했다. 지은이가 누군지 모른 채 읽는다면 아마도 유럽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인물과 상황, 시대적 분위기, 공간적 느낌이 생생하다.

   
작가 정찬은 올해로 등단 36년을 맞았다. 이번 소설은 열일곱 번째 작품이자 아홉 번째 장편이다. 작가는 동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를 지내다 정년퇴직했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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