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열강 中 침략 교두보 위해
- 상하이에 경쟁적 조계 설치
- 범죄조직과 결탁해 이권 추구
- 가장 막강했던 조직은 ‘청방’
- 지금도 건재한 ‘삼합회’ 모태
- 아편굴·도박장·매춘사업 등
- 제국주의에 기생하며 부 축적
- 치외법권 인정된 각국 조계지
- 가스·전기 등 기간산업 발전
- 여성해방 등 진보사상도 유입
- 혁명가·청년에겐 희망의 땅
- 지옥 위에 세운 천당으로 불려
중국에서 1920~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른바 ‘상하이 노스탤지어 붐’이다. 장이머우 감독의 ‘상하이 트라이어드’(1995), 천카이거의 ‘풍월’(1996), 러우예(婁燁) 의 ‘자줏빛 나비’(2003)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정무문’ ‘상해탄’ ‘색계’ ‘쿵푸 허슬’ 같은 홍콩영화와 ‘암살’ ‘밀정’과 같은 한국영화도 1920~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했다.
| |  |
| 1920~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상하이 트라이어드’ 한 장면. |
혹자는 ‘상하이 노스탤지어 붐’은 사회주의 이전의 자본주의 착취에 대한 기억이 배제된 상업주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라 비판한다. 상하이를 대표하는 황푸강(黃浦江)에는 생활고 탓에 투신한 사람이 너무 많아 매일 시신을 건져 올렸다고 한다. 상하이는 동양의 파리라는 미명과 함께 그 화려함을 자랑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향락과 퇴폐에 찌든 소수 자본가를 위해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도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1920~30년대 상하이가 매력적인 도시였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매력이 ‘상하이 노스탤지어 붐’을 이끈 원동력이다. ‘매력’이라는 단어의 ‘매(魅)’는 원래 사람을 유혹하는 도깨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은 선이기보다 악일 경우가 더 많다. 매력은 선과 악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상하이 노스탤지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선과 악을 모두 아우르는 상하이의 매력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청방과 삼대 보스
| |  |
| ‘상하이 노스탤지어 붐’을 보여준 러우예 감독의 영화 ‘자줏빛 나비’ 스틸. |
선과 악을 초월하는 상하이의 매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의 충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다를 건너온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국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경쟁적으로 조계를 설치하고 확대했다. 1920~30년대 상하이는 서양과 동양의 상반되는 여러 속성이 충돌하고 용광로의 쇳물처럼 끓어 넘치는 곳이었다.
상반되는 것의 충돌에는 언제나 혼란이 뒤따른다. 이 혼란 속에서 본능적이고 저열한 것이 먼저 고개를 든다.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의 충돌 속에서 상하이 또한 두 문명의 ‘어둠의 자식들’이 먼저 성장했다. 소설가 무스잉(穆時英)의 단편소설 ‘상하이 폭스트롯’은 “상하이는 지옥 위에 세워진 천당”이라는 첫 구절과 한 남자가 총격으로 암살되는 첫 장면으로 시작한다. 1920~30년대 상하이에서는 이른바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범죄조직 보스가 대낮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 상하이 암흑가는 청방(靑幫)이라는 조직이 장악하고 있었다. 청방은 청나라 때 운하 운송 선원들의 비밀조직에서 기원하며, 중국의 유명한 범죄조직 삼합회(트라이어드)의 모태이다. 청방의 두목으로는 두웨성(杜月笙) 황진롱(黃金榮) 장쑤린(張肅林)이 유명했는데, 이들은 상하이의 삼대 보스라 불리며 상하이를 호령했다.
■1928년 기록‘아편굴 8000곳’
| |  |
| 1920년대 상하이에서 나온 청년 잡지. |
범죄조직 두목이 상하이 주요 인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도시의 실질적 통치자가 영국 프랑스 미국 같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시 각국 조계 담당자는 중국 인민을 위하는 정상적인 통치 대리인보다 범죄조직 두목을 선호했다. 범죄조직 두목이 서구 제국주의 이익을 더 확실하게 보장해줬기 때문이었다. 범죄조직은 식민 통치에 일조했고, 제국의 식민 통치는 범죄조직을 비호했다.
범죄조직은 마약, 도박, 매춘과 관련된 사업을 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상하이를 그들의 왕국으로 만들었다. 상하이의 삼대 보스인 두·황·장이 조계 통치자와 군벌들을 회유하여 공동으로 설립한 삼흠공사는 마약 판매회사였다. 마약 퇴치를 위해 간행됐던 한 잡지의 1928년 기록에 따르면 상하이에는 8000여 곳의 아편굴이 있었다. 아편굴이 식당보다 많았으며 10만 명이 넘는 아편 중독자가 거리에 넘쳐나고 있었다 한다.
삼대 보스 두·황·장은 지금의 옌안중루(延安中路)에 대규모 도박장도 공동 경영했다. 도박장은 1, 2층에 각종 도박시설이 설치돼 있었고 3층에 커피, 술, 아편 등이 무료로 제공되는 휴게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상하이에는 수많은 중소 도박장도 있었다. 도박으로 파산해 가족을 팔고 범죄에 가담하거나 목숨을 던지는 자가 속출했다.
범죄조직이 마약, 도박과 함께 깊숙이 관여한 또 다른 사업은 매춘사업이다. 상하이 삼대 보스는 직접 매춘사업을 벌이지 않았지만, 그 수하의 수많은 중간 보스가 직접 매음굴을 운영했다. 당시 상하이의 대표적 신문 ‘신보(申報)’의 1934년 통계에 따르면, ‘런던 960:1, 베를린 580:1, 파리 481:1, 도쿄 250:1, 상하이 130:1의 비율’로 매춘부가 있었다. 이는 공식 기록에 의거한 것일 뿐 실제로는 매춘만이 유일한 생존수단이던 여성이 10만 명을 훨씬 웃돌았다고 한다. 1920~30년대 상하이는 지옥 위에 세워진 천당이었다.
■충돌 속에 ‘좋은 것’도 꽃피다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의 충돌과 혼란 속에서 악의 세력만이 창궐한 것은 아니었다. 혼란 속에서 기존의 억압과 통제가 느슨해져 새로운 것이 창출됐다. 우선, 상하이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피처였다. 조계에는 서양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치외법권이 인정됐다. 태평천국의 봉기, 군벌 간 내전, 소도회의 난을 피해 수많은 사람이 상하이에 몰려왔다. 각국 정치범이나 혁명가도 상하이에 숨어들어 왔다. 우리나라 독립군이 상하이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상하이의 조계가 안전지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근대화된 도시였다. 1865년 가스회사가 설립돼 난징로(南京路)에 가스등이 켜졌다. 1876년 철로가 놓였으며, 1880년 전기회사와 전보회사가 설립돼 전기가 공급되고 전화 업무가 개시됐다. 1881년부터 수도시설이 보급됐다. 세계와 발맞춰 발전하는 국제도시 상하이는 근대문명을 선물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일자리도 제공했다.
그리고 상하이는 모던과 낭만을 추구하는 지식 청년들에게 꿈의 도시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조계의 통치자들은 이익을 가장 중시했고, 자신의 이익에 저해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허락했다. 물질문명과 함께 서구의 진보적 사상 또한 자유롭게 수입됐다. 천두슈(陳獨秀)는 ‘청년잡지’를 통해 중국에 서구의 덕 선생(德先生: Democracy)과 새 선생(賽先生: Science)을 소개했다. 상하이의 수많은 잡지는 서구의 ‘모던’한 생활을 소개하면서 개성 해방과 여성 해방의 기치를 높이 흔들었다.
프랑스의 미학가 가스똥 바슐라르는 “영혼 전체를 이끌기 위해서는, 이중의 참여 - 욕망과 공포의 참여, 선과 악의 참여, 백과 흑의 조용한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상하이의 매력은 해양문명과 대륙문명의 충돌 속에서 지옥과 천당처럼 상반되는 속성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 낸 것이었다. ‘상하이 노스탤지어 붐’은 화려하였던 과거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추억팔이만은 아니었다. 지옥과도 같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용기, 자유, 낭만 그리고 희망에 대한 향수였다. 가진 것 없는 자는 주먹 하나로 계층 이동이 가능하고, 젊은이는 새로운 사상으로써 세상 변혁을 꿈꿀 수 있는 도시, 그것이 바로 1920~30년대 상하이였다.
안승웅 부경대 HK 연구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