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왕>(우민호, 2018)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누군가는 갱스터 영화로 고전 명작 중에서 손꼽히는 영화 <스카페이스>(브라이언 드 팔마, 1984)가 소위 ‘한국 현지화’에 실패한 작품이 <마약왕>이라 그랬다. 또 배우 송강호나 배두나, 조정석 등 충무로의 보석같은 배우들을 데리고도 이야기를 제대로 꿰어내지 못했다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자주 인용했다. 복수 매체에서 <마약왕> 손익분기점을 4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했지만 마지막 스크린에서 영화가 끝날 때 최종 누적 관객은 186만 명이었다. 이 시기 예의 그 ‘한국영화 위기설’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전작으로 꽤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이름을 알린 감독들이 (김병우, 2018), <스윙키즈>(강형철, 2018)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면서 기대감을 높였지만, 하나같이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마약왕>도 그중 하나였다. 우민호 감독은 전작이었던 <내부자들>(2015)에서 관객들로부터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후속작이었던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2015)을 합치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영화 중에선 이례적으로 천만에 가까운 관객을 기록했다. 하지만 <마약왕>은 차갑게 외면받았다. 이미 한차례 평가를 받고 난 뒤에 편견을 갖고 영화를 봐서인지, 극 초반 전개가 그닥 탐탁치 않았던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있는 장면들일 것’이라며 꽤 허우적거리다 보니 그도 그럴만한 사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두삼 = 박정희’ 등식을 발견한 것이다.

	영화 <마약왕> 스틸컷

■ 맞다고 치고!

‘이두삼 = 박정희’. 맞는 등식이라고 가정한 뒤 하나씩 의문을 해소해보자. 그럼 왜 많은 관객이 이 재미있는 등식을 놓치게끔 영화를 만들었을까. 송강호에게 이 질문은 어쩌면 뼈가 시린 이야기다. 1부에서 언급한 바대로 그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차례 연기한 바 있다. 이후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니, 제작진으로서나 배우 본인으로서나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기하기에 앞서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본다. 송강호가 특정 정치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관객들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가 박 전 대통령을 외견상 많이 닮지 않은 점도 유효했다. 송강호는 박 전 대통령 목소리나 걸음 등을 따라 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 시대 불법 마약상의 모습을 통해 시대상을 비추고, 동시에 ‘사실은 우리가 산업화라는 ’뽕‘에 취했던 게 아니냐’는 메시지를 던지려 했다. 이 메시지는 근거 없는 자의적 해석이 아니다. 영화는 결말 즈음 TV를 보고 있는 이두삼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피살됐다는 뉴스를 보여준다. 뉴스는 귀로 들리는 소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굳이 보여주는 뉴스 영상 속에서 국민 하나가 오열하고 있을 때, 감독의 의도와 메시지는 분명해졌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죽으면서, ‘마약왕’ 이두삼도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권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스카페이스> 스틸컷

많은 이들이 <마약왕>을 <스카페이스>에 자주 비교한다. 여러 장면이 닮아있고 오마주로 볼 만한 장면들도 있다. 특히 대저택에서의 마지막 총격전이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실제 박정희가 피살당하던 현장을 고려했을 때, 이를 꼭 오마주라거나 모방이라고만 하기는 힘들다. 꼭 <스카페이스> 마지막 장면이 아니더라도, 1979년 10월 27일 박정희가 피살당하던 현장을 묘사한 것으로 봐도 좋다는 뜻이다.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2005)처럼 말이다. 또 약간은 오히려 <스카페이스>처럼 보이게 하여, ‘이두삼 = 박정희’ 등식을 흐리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두고 보면, 굳이 <마약왕> 중 김인구(조정석) 검사가 저택으로 돌진해 일대일 대치 구도를 만든 뒤 스스로 머리에 총구를 겨눈 이두삼을 제압하고 체포하는 장면이 달리 보인다. 당시 책임이 있는 누구도 스스로 죽을 수 없으며, 다음 시대로부터 혹독하고 엄격한 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는 우민호 감독의 철저한 계산이 깔린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영화 곳곳에 숨은 장치

그러면 어떻게 계산해나가야 이두삼이 박정희로 보일까. 감독은 ‘이두삼 = 박정희’ 등식을 성립하기 위한 장치들을 영화 곳곳에 숨겨두었다. 우선 그의 주된 거래처가 일본이다. 그럼 그냥 부산 사람이어도 되는데, 느닷없이 밝힌 출신지가 만주라는 점은 만주 군관학교 출신 박 전 대통령을 연상하게 한다. 또 그의 당찬 포부 한마디 안 들어볼 수 없다. “육영수 여사처럼 살게 해주겠다”. 이두삼이 본격적으로 마약 거래에 뛰어들기 전 본처에게 전화를 걸어서 했던 말이다. 이는 뭐 숨겨놨다고 보기보다 대놓고 자신과 박 전 대통령을 동일화한 대사다. 이두삼 사촌동생 이름 이‘두환’이다. 뜻밖에 장발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침내 이두삼은 김신조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도 한다. 그가 수출 금자탑을 쌓자며 일본에 파는 마약에 붙는 ‘Made in Korea’도 그렇다. 그러니 <마약왕>은 단순히 이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마약왕 그 자체를 누군가와 동일시하는 작품이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은, 병사들에게 히로뽕을 투여하여 졸음과 두려움을 잊게 했다. 뽕을 맞은 일본군은 카미카제를 실행하기에 이르렀지만, 종전 후 히로뽕은 일본인들을 괴롭히고 사회는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영화는 앞부분을 할애해 히로뽕을 이렇게 설명이다. 그러니 ‘히로뽕 = 산업화’라는 등식을 이루고 나서 이 영화를 보면, 시사점이 새로 보인다. 산업화 이후 우리가 겪고 있는 후유증? 말도 말자. 빈약한 캐릭터 설정과 서사 전개는 아쉽지만, <마약왕>은 꽤 용기 있고 소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 정도는 받는 게 옳다.

■ <나랏말싸미>와 <마약왕>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송강호는 자신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됐던 영화 <변호인> 이후 시대물을 마다하지도, 왕 역할을 주저하지도 않고 있다. 또 <마약왕>은 송강호가 <나랏말싸미> 직전에 연기한 국가 지도자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학적 의미가 선명한 필모그래피 궤도 속에 있는 작품이다. 갑자기 <마약왕>을 갖다가 <나랏말싸미>랑 붙여놓으니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도 들지만, 억지가 아니다. 송강호는 <나랏말싸미>에서 어떤 왕을 보여줄까, 관객은 송강호의 세종대왕을 통해서 어느 왕을 만나게 될까. 때마침 정치권이 반목을 일삼는 이때 말이다.

신동욱 /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