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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13> 아마추어 연주자 모녀

80대·60대 모녀의 늦게 만개한 음악열정… “하고 싶은 일 하세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7-14 18:40:5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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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트 김주희 씨

- 피아노에 빠져 서울대 음대 진학
- 6·25전쟁으로 학업 중단 아쉬움
- 운동 ·악기·합창 ·어학 두루 배워
- “다른 사람보다 10배 노력하면 돼”

# 바이올린 박은미 씨

- 중2까지 레슨받다 공부 선택
- 30년 만에 다시 잡은 악기 친숙
- 딸 피아니스트의 길 뒷바라지
- “아름다운 하모니 선사에 보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유코 아카데미 오케스트라(UKO Academy Orchestra)’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김주희 씨와 바이올린 연주자 박은미 씨는 모녀 사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마는 굳이 밝히자면 김주희 씨는 88세, 박은미 씨는 64세다. 전문 연주자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 가사와 육아에 전념했기에 음악적 열정만큼은 누구보다도 뜨겁다.
   
오랫동안 미뤘던 음악을 향한 열정을 펼치는 김주희(오른쪽) 박은미 모녀.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어머니, 6·25로 미뤘던 음악의 꿈 펼치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벌써 4년째다. “어머니가 먼저 시작하셨어요. 단지 어머니를 연습실에 모셔다드렸는데, 갑자기 바이올린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저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어 함께 해도 될지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크게 환영하며 반겨주셨습니다. 예전에 무심코 사두었던 바이올린을 며느리에게 주었거든요. 이참에 곧바로 악기를 돌려받았지요.”(박은미)

   
공연 후 무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모녀.
딸 박 씨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바이올린을 배웠다. 첫 선생님은 온천장에 살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부친이었는데, 그분은 바이올린을 독학했고 그림을 잘 그렸다. 부산시향 악장 김진문 선생에게 배우기도 했다. 지휘자 오태균 선생에게는 전차를 타고 토성동까지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당시 박 씨가 살던 곳은 양정이었다. 6·25 전쟁 당시 피란 온 개성 사람들이 모여 살던 개성촌이 지금의 동의의료원 근처에 있었다. 어머니 김 씨는 개성 사람이다.

“호수돈여고에 다녔어요. 1층과 2층은 교실이고, 3층 전체가 피아노실이었는데 16번 방까지 있었습니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피아노 선생님이 계셔서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시간표를 짜서 배울 수 있었어요. 자기가 좋아서 한다면 밤에도 새벽에도 피아노를 칠 수 있었습니다.”(김주희) 피아노를 전공하고자 했던 그는 주말이면 기차를 타고 서울로 레슨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뜻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해 늘 후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출가하고 난 다음부터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운동 악기 서예 한국무용 도자기 합창 어학 등 여러 가지를 했습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1시간 한다면 10시간 노력하면 되지요.”(김주희)

피아노, 오카리나, 가야금, 하모니카, 플루트,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두루 배웠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KBS 어머니 합창단 활동이다. KBS방송국의 대청동 청사 시절, 라디오에서 모집 광고를 듣고 지원했는데 40년을 함께했다. 일본과 대만 연주 여행, 알래스카 어머니 합창단과의 교류 공연은 지금도 여전한 이야깃거리다.

■딸, 뒤늦게 바이올리니스트 꿈 펼치다

“어머니는 정말 노력형입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품이죠. 어려운 곡이더라도 열심히 연습해서 반드시 되도록 만듭니다.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듣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박은미)

박 씨는 학업 때문에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그의 딸은 피아니스트다. 공부를 곧잘 했기에 남편의 반대가 컸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생각해 남편 몰래 생활비를 아껴가며 뒷바라지했다. 젊은 시절 지녔던 음악적 열정과 미처 이루지 못한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악기를 손에 잡은 것은 30년 만이었다. 활을 긋는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는데 몸에 배어 있었던지 의외로 괜찮더란다. 하루 몇 시간씩 매일 연습해도 힘든 줄 몰랐다. 경쾌한 곡은 그 자체로 즐겁고, 어려운 곡은 새로운 성취감을 주었다.

그즈음 다녀왔던 몽골 연주 여행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오케스트라 무대에 서는 오랜 꿈이 실현된 것 같아 그 어떤 여행보다 값진 추억으로 남았다.

“유코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탄생과 존재가 너무나 고맙습니다. 지휘자도 아마추어 단원을 배려하면서 잘 이끌어 주십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악기 하나를 꼭 배우면 좋겠습니다. 그 자체가 즐겁지요. 그런데 함께 연주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면 즐거움이 배가되고, 그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일은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일이랍니다.”

각별히 마음에 남는 만남이었다. 늦게 물든 음악에 대한 열정만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눈부신 기품과 진지함 때문이다. 그 근원이 무엇일까 자못 궁금해 김 씨의 아버지를 찾아보았다. 1930년대 개성에서 발간된 신문 ‘고려시보’의 창간 동인이자 개성부윤(시장)을 지냈던 김학형(金鶴炯) 씨였다.

   
이 신문은 이념을 초월해 당대 많은 문인의 글을 담았던 그릇이었다. 생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더욱이 생의 의무를 다하고 비로소 마주하게 된 자신만의 시간을 또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아버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예술을 담는 그릇을 빚었고, 딸들은 예술로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채우며 살고 있다. 100년이 잠깐이다.

공연기획자·부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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