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 환동해 지역 유일 개항장
- 1860년 열기로 예정됐지만
- 긴 해안선 등 항만기능 취약
- 8년간 정부 지원 받아 공사
- 철도·발전소 등 시설 구축 후
- 만주국에서 자원·식량 실어날라
- 인구 몰리면서 상·공업 등 발전
- 60년대 국제무역항으로 성장
- 인프라 공사 동원 조선인 학살
- 지진 피해 등 아픈 역사도 존재
- 올핸 개항 150주년 기념행사로
- 시내에 볼거리·즐길거리 가득
바닷길을 통하면 동북아는 하나다.
동북아해역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지도를 벽에 붙여두고 한참을 쳐다보는 일을 반복한다. 부산에 발을 딛고 있지만, 바닷길을 따라 거칠 것 없이 항해하는 상상을 펼친다. 환동해권에는 한국,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이 있다. 그리고 숱한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항구가 있다. 모두 가볼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우선 지역에 대한 정보라도 착착 봐두리라.
| |  |
| 일본 니가타항 부두에서 굽어본 환동해권 바다. 수평선 너머 한반도가 있다. 최근 방문한 니가타는 개항 150주년을 맞아 여러 기념행사로 활기찬 분위기였다. |
그러던 중 일본 니가타(新潟)를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됐다. 부산에서는 니가타로 직행하는 배나 비행기가 없다. 일주일에 3회 인천과 니가타를 오가는 항공편이 있다.
니가타는 쌀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바로 ‘고시히카리’(越光·コシヒカリ)의 산지다. 쌀이 맛있어 담근 술도 그 맛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 없다. 바다향 가득 담은 해산물 요리는 신선함과 풍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긴 해안선을 따라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수량이 풍부한 하천이 바다로 흐른다. 소설 ‘설국’의 배경으로도 알려진 만큼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오겠지.
■개항 150주년, 재도약 시작
| |  |
| 개항을 앞두고 있던 1859년 니가타항을 그린 그림. 출처=‘니가타 개항 150주년사’ |
니가타는 2019년을 개항 150주년으로 기념하고 있다. 1869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한 것이다. 시내 곳곳에서 이를 알리는 광고물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온다. 2017년 3월 28일 조직된 ‘니가타 개항 150주년 기념사업실행위원회’를 중심으로 여러 사업이 진행되는데, 홈페이지(nii-port.com)에서 모든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니가타일보(新瀉日報)’에는 2018년 4월부터 개항 150주년을 주제로 매주 기사가 연재되고 있다.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에서도 특별전시가 한창이다. 니가타는 일본 개항장 중 유일하게 옛 세관청사 건물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국보에 해당하는 국가중요문화재로 관리된다. 이 건물은 동남아시아 분위기가 묻어나는 이색적인 외관을 지녔다.
올해 니가타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한가득이다.
■일본 환동해 유일의 개항장
| |  |
| 일본 국가중요문화재인 옛 니가타 세관 청사. |
니가타는 에도 시대 중반부터 일본 해안을 따라 교역한 북전선(北前船)의 항구였다. 교역품은 대부분 쌀이었다. 개항 이후에도 평균 40만~45만 석의 쌀이 니가타항에 집산되고, 대부분 도쿄와 홋카이도 방면으로 이출되었다. 연어와 송어를 잡으러 북태평양으로 향하던 어선의 출항지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배경에서 니가타를 개항장으로 먼저 제안했다. 일본은 1858년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고 하코다테,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니가타 5곳을 개항했다.
니가타항은 1860년 1월 1일 개항이 예정되었지만, 8년이 지나서야 개항장의 역할을 시작했다. 항만 기능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니가타항으로 흐르는 시나노강은 해마다 범람해 홍수 피해가 극심했고, 항으로 토사가 쌓이면서 수심이 계속 바뀌었다. 게다가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 긴 해안선은 거센 북서풍의 바람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니가타현은 시나노강 제방 공사를 시작했고,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26년 항만 시설을 갖추었다. 1931년에는 니가타항과 도쿄를 잇는 철도도 전면 개통되었다. 발전소 건설이 완료되면서 풍부한 전력이 공급되자 대규모 공장이 들어섰다.
■대륙 향한 일본의 욕망과 니가타
기반시설을 구축한 니가타항은 1935년 일본 정부의 니가타-청진·나진·웅기 명령항로로 지정되었다. 이 항로는 일본 도쿄와 만주 신경(新京·지금의 창춘)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였다. 1932년 만주국을 세운 일본은 만주의 자원과 식량을 일본으로 이송하고, 일본의 사람과 생산가공품을 만주로 운송하려고 했다. 니가타항에 물자가 모이면서 인구가 급증했고, 상업과 공업이 성장했다. 1930~40년대 니가타항은 번영의 시기였다.
1941년 12월 일본이 하와이를 침공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태평양 방면의 공장을 니가타로 옮겼다. 특히 군수공장을 긴급히 이전했다. 태평양 쪽 모든 일본 항이 미군의 폭격과 기뢰 봉쇄로 기능을 잃었다. 일본과 대륙 간 수송은 환동해 항로만 남았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만주와 조선에 살고 있던 많은 일본인이 니가타항으로 귀환했다.
■영광 뒤의 그림자
니가타는 한국인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니가타현을 가로지르는 시나노강은 367km로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이라고 한다. 시나노강 발전소의 전력은 니가타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까지 공급할 정도다. 발전소 건설이 한창이던 1922년 7월 건설 노동자로 있던 한국인들이 탈출을 시도하다 수십 명이 학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에는 니가타항의 항만노동자, 항만부대의 군인으로 징용·징병된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이 니가타항에서 북한으로 가는 북송선을 탔다. 이 배를 탔던 10만여 명은 대부분 북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지난 18일 니가타에서 지진이 났다. 쓰나미의 위험까지 예견됐지만, 다행히 최악의 피해는 없었다.
니가타는 1964년 큰 재앙을 겪고 다시 일어난 곳이다. 인근 바다에서 진도 7.5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도시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1961년에는 지반 침하로 바닷물이 유입되어 니가타 연안이 잠기는 피해도 입었다. 니가타 지하의 천연가스 채굴을 일시에 너무 많이 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처럼 큰 재해를 입은 니가타는 1967년 다시 일어서는 계기를 맞았다. 일본 정부가 국제해상수송망의 거점 역할을 하는 특정 중요항만으로 지정한 것이다. 1969년 신항만이 건설되면서 니가타는 국제무역항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환동해권에 있는 국가와 지방정부는 공동의 바다에서 함께 번영하기를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사안이 있다. 한국과 일본은 독도로, 러시아와 일본은 쿠릴열도로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도 평온하지만은 않다. 분단된 남·북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배타적경제수역 범위 규정 문제는 또 어떠한가. 희망찬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갈등의 바다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시점이다.
김윤미 부경대 HK 연구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