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산메디클럽

조봉권의 문화현장 <56> 기장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주다’

기장항일기념탑 곁 보완된 비석 … 더 많은 이름의 ‘빈자리’ 두었다

  • 국제신문
  •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9-06-25 19:08:23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독립운동지사·자산 풍부한 기장
- 2011년 항일운동기념탑 건립
- 인물·역사 구체적으로 알리려
- 주민들, 기장군·군의회 뜻 모아
- 2016년 운동비 보완 추진위 결성
- 올해 3·1절 100주년 맞춰 제막

- 김도엽 구수암 기장여자청년회…
- 독립유공 서훈자 명단 더 새기고
- 명정의숙가·애국의 노래도 담아

문화와 관련된 일의 가치를 높여가는 방법은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꾸 돌아보고 꾸준히 가꾸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두루뭉술하지 않게 아주 구체적으로 내용을 채우는 데까지 나아감을 뜻한다. 정성을 다해야 구체적일 수 있으며, 아름다움은 구체성에서 나올 때가 많다. 자꾸 돌아보고 꾸준히 가꾸는 것은 더욱 중요한데, 한 번 완수한 사업이라 해서 관심을 끊고 더는 돌아보지 않는 게 아니라 행여 모자란 게 없는지 잘못된 건 없는지 알아보고 보완하는 태도를 말한다. 문화란 그런 ‘과정’을 뜻한다.
   
제100주년 3·1절이었던 지난 3월 1일 제막한 기장 독립운동 비석 조형물에 관해 공태도 옹이 설명하고 있다. 이 조형물은 부산 기장군 기장읍 새마을어린이공원에 2011년 조성된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을 보완해, 바로 곁에 조성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2011년 4월 ‘기념탑’ 완공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새마을어린이공원 안에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이 서 있다. 기장 향토사학자 공태도(85) 옹의 설명을 들어보자. “기장항일운동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리고, 많은 분이 힘을 모아 노력한 끝에 2011년 4월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 탑만 세울 수 있었습니다.” 2011년 완공된 기장항일운동기념탑 형상에 관해 해설해주는 비석을 따로 조성해 둔 점이 이채롭고도 사려 깊다는 인상을 준다.

그 해설에 따르면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은 ‘다섯 개 기둥(오개지주)이 태극구(球)를 떠받친 형상’이다. 오개지주는 기장군 5개 읍·면(기장읍·장안읍·정관읍·일광면·철마면)민이 하나 되어 독립 만세를 부르는 모습을 상징한다. 태극구는 항일운동의 지향이자 결실인 조국 광복을 시각화했다. 탑신을 받치는 기단은 오각형으로, 기장의 기반을 이루는 5개 읍·면을 담았다. 기단 벽면에는 기장 사람의 독립운동 모습을 부조로 새겼다. 어린이부터 어르신, 기장 사람부터 다른 지역에서 온 방문객까지 다양한 사람이 보는 이런 공공 조형물은 이처럼 ‘친절한’ 설명을 붙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2016년 기념탑 보완 추진위 발족

   
기장 향토사학자 공태도 옹.
공태도 옹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런데 기장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가 정말 많았습니다. 항일운동도 치열했죠. 독립운동과 관련한 인물과 자산이 아주 많은 곳이 기장입니다. 막상 기장항일운동기념탑을 세우기는 했는데, 기념탑만 있다 보니 아쉬움이 내내 가시지 않는 겁니다.”

3·1절에 이곳에서 기념행사를 하고, 헌화·분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지만, 막상 기념탑 현장에 와도 그 많은 기장의 독립운동가 성함을 알 길이 없고 기장 독립운동사의 자산도 제대로 알릴 수 없어 기장의 뜻있는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2016년 기장항일운동비 보완 사업 추진위원회(위원장 이상희)가 만들어진다. 주민과 군의원, 시의원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공태도 옹과 기장의 향토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황구 씨, 허모종 씨가 자문을 맡았다.

추진위의 문제의식과 취지에 공감한 기장군은 이 보완사업에 예산 1억2000만 원을 배정했고 군의회도 함께했다.

■항일·독립운동 치열했던 기장

   
기장항일운동기념탑
“부산지역에서는 1919년 3·1 만세운동 때 동래, 구포, 기장에서 큰 시위와 운동이 있었습니다. 일제는 강력하게 탄압했죠. 이때 세 지역에서 각각 만세운동을 주도한 분들을 일제가 검거해 내린 ‘최고 징역 형량’을 보면, 동래는 1년3개월이고 구포는 1년6개월이며 기장의 경우 김도엽 선생께 2년6개월이 선고됐습니다.” 공태도 옹은 “상대적으로 작은 고장인 기장에서 민족독립운동이 치열했던 한 증표”라며 이 사례를 들려줬다.

이뿐 아니다. ‘구수암 의사 장례식’(2015년 10월 14일 자 국제신문 13면 ‘박창희 대기자의 말하는 두레박’ 참조)은 3·1운동 전체 역사에서도 거듭 그리고 새롭게 조명하고 기릴 만한, 눈물겹게 멋진 장면이다. 기장 청년 구수암(1901~1920)은 기장 3·1 만세운동을 주동했다. 일제는 그를 붙들어 1년6개월 형을 선고하고 대구형무소에 가뒀다. 감옥에서 극심한 고문을 당해 극도로 쇠약해진 구수암을 일제는 형기 만료 6개월을 앞두고 가석방했다. 구수암은 가석방 사흘 만에 타계하고 만다.

■구수암 의사 장례 모신 기장 여성들

이때 기장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기장 명정의숙 출신의 기장여자청년회(당시 대표 박자선) 소속 젊은 여성(16~20세) 18명이 시집갈 때 쓰려고 모아둔 돈(봉창돈)을 조금씩 떼어 조위금으로 내고 상여 앞에 들고 갈 만장을 1장씩 모두 18장 만들어 장례식 때 직접 들었습니다. 게다가 구수암의 장례를 면민장으로 하기 위해 노력해 관철시켰죠.”(공태도 옹)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기장의 젊은 여성 청년들이 해낸 이 일은 지금 상상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을 준다.

이와 함께 1916년 당시 기장광복회 총무를 맡고, 여성 교육기관 명정의숙 교장으로 활약했으며, ‘기장군자금사건’을 주도하다 희생된 박세현,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두봉 선생을 비롯해 한 집안에서 독립운동가를 무려 9명이나 배출한 기장의 명문가, 명정의숙 학생들이 불렀던 ‘애국의 노래’….(공태도 옹은 1914년 지은 이 노래가 1936년 만들어진 안익태 작곡 ‘애국가’보다 앞서지만, 현재 곡은 남아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처 언급하지 못한 독립지사도 많다.

■새 비석에 ‘빈자리’ 따로 둔 사연

‘기장이란 고장은 대체 어떤 곳이기에’라는 궁금증이 생길 만큼 풍성한 독립운동의 역사와 문화 자산을 더 많이 담아낸, ‘보완된’ 기장항일운동비는 올해 3월 1일 제100주년 3·1절 기념일에 드디어 제막식을 열었다. 이날 기장군 새마을어린이공원에서 열린 제막식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 있다. 이 동영상을 보면 항일운동비를 보완하는 일이 만만찮은 과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상희 추진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경과보고를 통해 “기장항일운동비 보완을 위해 새로운 비석에 넣을 내용을 확정하고 비석 형태를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토론과 감수, 자료 확인, 다른 지역 답사와 검토를 거쳤다”고 밝혔다.

새로운 비석에 이름을 새길 기장의 독립운동가는 국가에서 독립유공서훈을 받은 분을 우선 선정했다. 그리고 ‘기장군지’ 등을 통해 거듭 검토했다. “독립운동에 공헌했음에도 이념 문제 등으로 이견이 있어 빠진 분은 앞으로 사회적 합의와 더욱 객관적 논의를 거치겠다”고 이상희 추진위원장은 설명했다.

공태도 옹은 “앞으로 정부에서 발표되는 기장군 출신 서훈자가 더 있을 수 있으니 비석에 따로 공백인 자리를 만들어 두었다”고 말했다.

■거듭 살피고 가꾸다

   
이렇게 해서 공태도 옹이 새로 쓴 비문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다 간 기장사람들’, ‘명정의숙가’와 ‘애국의 노래’, ‘구수암 만가’, ‘기장군 독립유공 서훈자 명단’(19명), ‘3·1운동 읍면별 주동 인물 명단’(26명), ‘기장광복회원(1916년) 명단’(16명)을 새긴 ‘보완된’ 비석이 기장항일운동기념탑 곁에 탄생했다. 이름을 불러드린 것이다.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20일부터 부산서도 해외직구 통관
  2. 2문정인 “가장 나쁜 볼턴, 더 추한 아베”
  3. 3개점휴업 크루즈시설 활용도 높인다
  4. 4KPGA 코리안투어 개막전…홍순상 10언더 코스 레코드
  5. 5중앙·지역서 보폭 넓히는 김기현
  6. 6[아침숲길] 7월의 아침 편지를 보내며 /정일근
  7. 7[뉴스와 현장] 후반기 시의회 스스로 위상 강화를 /이병욱
  8. 8[도청도설] 2+1 책임제
  9. 9동아대 패션디자인과 1학기 혜암장학금 전달
  10. 10부산과기대 이동현 씨, 한국형 포뮬러 KF1600 연속 우승
  1. 1文 “투기성 주택 보유자 부담 강화…주택 물량도 늘려야"
  2. 2문정인 “가장 나쁜 볼턴, 더 추한 아베”
  3. 3통합당 “3차 추경 처리 불참, 내주 초 국회 복귀”
  4. 4중앙·지역서 보폭 넓히는 김기현
  5. 5정세균 총리, 포스트 코로나 ·경제 광폭 행보…‘대망론’ 솔솔
  6. 6“부산시의회 갑질 의원에 행문위 왜 맡기나” 여론 비등
  7. 7“금융중심지 위상 세울 부산 금융특구청 짓자”
  8. 8이낙연·김부겸 당권 경쟁 돌입…내주 전대 공식 출마 선언키로
  9. 9문 대통령 “미국 대선 전 트럼프·김정은 회담 추진”
  10. 10이선호 울주군수 "코로나19 지원금 추가 지급 하겠다"
  1. 1한국해양정책연합 ‘1기 해양리더 아카데미’ 입학식
  2. 220일부터 부산서도 해외직구 통관
  3. 3수과원-시수자원연, 낙동김 개발 위해 맞손
  4. 4개점휴업 크루즈시설 활용도 높인다
  5. 5연금복권 720 제 9회
  6. 6주가지수- 2020년 7월 2일
  7. 7금융·증시 동향
  8. 8부산시 시니어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공모
  9. 9부울경 노동수요 10년새 감소
  10. 10한국주택금융공사, “재밌지예~온라인 주택금융강좌”
  1. 1부산 어린이집 집단 장염 증세 … 보건당국 "신고 늦어"
  2. 2번영로 역주행 음주 운전자 택시와 정면 충돌
  3. 3부산 가야홈플러스 앞 도로 상수도관 파열
  4. 4부산서 방문판매 업체 잇단 적발 … 경찰 “이용 자제” 당부
  5. 5한밤 중 통영 동호항 정박 중인 어선에서 화재
  6. 6등록금 환불 요구에 2학기 수업방식 고민하는 부산 대학가
  7. 7경찰 “이춘재 14명 살해, 추가 성폭행도 9건” … 수사종료
  8. 8경주시체육회, ‘가혹행위’ 경주시 트라이애슬론 감독 직무 배제
  9. 9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공유한 대학생 불구속 입건
  10. 10경남도, 어린이집·유치원 급식시설 식중독 불안 없앤다
  1. 1‘황소’ 황희찬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2. 2부산, 3년7개월 만의 강원전…승격 패 설욕·시즌 2승 노린다
  3. 3NBA 시즌 재개에 1800억 원 투입
  4. 4KPGA 코리안투어 개막전…홍순상 10언더 코스 레코드
  5. 5‘들쭉날쭉’ 샘슨…“너의 진짜 실력 보여줘”
  6. 6미국 프로야구 마이너리그, 2020 시즌 전면 취소
  7. 7캐나다 정부, 격리특혜 난색…류현진, 토론토 입성 빨간불
  8. 8미셸 위, 출산 열흘 만에 유모차 끌고 필드로
  9. 9‘득점기계’ 메시 통산 700호 골 금자탑
  10. 10필승조 구승민·박진형 흔들…롯데 7월 ‘어쩌나’
정상도의 '논어와 음악'-세상을 밝히는 따뜻한 울림
제13곡 - 부귀빈천
이동순의 부산 가요 이야기
'조선팔경가'에 나오는 해운대
김석화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청각장애인의 ‘목소리’ 수어 엿보기
목격자 되기
박선미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사람다움에 대해
그 많은 학원 다녀도 못 푸는 문제…참된 삶이란 무엇일까
새 책 [전체보기]
친구에게(이해인 글·이규태 그림) 外
데미안을 찾아서(남민우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한과 눈물의 섬 독도에 바친 시
굴곡진 세상 묵묵히 살아낸 힘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Unsent letter’ - 손일 作
‘UPOJBC080110’ - 정봉채 作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붉은 저녁 /전연희
달맞이꽃 /권갑하
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전체보기]
영화 '소리꾼'의 이봉근
메가폰 잡은 정진영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영화 ‘#살아있다’ 100만 관객이 주는 의미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당연한 ’시간을 위해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시네마 리터러시를 향하여
극장 엘레지
조준형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북코칭 전문가의 책 잘 읽는 이야기
숱한 차별을 버텨온 당신에게 박수를
최예송의 내가 읽은 책 [전체보기]
봄의 시작점에서
함께 살아가고 부딪치는 사람, 그리고 공동체를 향해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20년 7월 2일
묘수풀이 - 2020년 7월 1일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0년 7월 2일(음력 5월 12일)
오늘의 운세- 2020년 7월 1일(음력 5월 11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제27회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1차전
제27회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1차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大器曼成
大方亡隅
  • 2020 어린이 극지해양 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