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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61> 아동청소년문학가 이금이의 동화 ‘내 이름을 불렀어’

머릿속에 샘 솟는 재밌는 상상, 그렇게 이야기가 되죠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23 19:19:0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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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 얘기에 
- 밤새 상상에 빠지던 꼬마 소녀
- 동화 읽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
- 자연스럽게 글 짓는 작가 길로

- “걸을 때마다 그려지는 이야기들
- 마음속에서 오래 생각하며 구상
- 문장으로 옮길때 고통 느끼지만
- 글 쓰는 희열도 동시에 안겨줘”

중년 이상 세대는 어떤 책을 읽으며 자랐을까. 어린이 도서를 읽다가 곧 성인용 세계명작을 만나는 게 보통이었다. 청소년이 읽기에 적당한 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을 통과해야 하는 아이들의 심성을 어루만져주는 책은 그 어떤 학습으로도 대체할 수가 없다. 이금이 작가는 2004년 ‘유진과 유진’을 내놓으면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독자에게 선물했다. 아동청소년문학가인 그는 이 시대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서 이금이 작가를 만났다.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서 만난 이금이 작가. 동화 ‘내 이름을 불렀어’를 걸으면서 구상했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 세계

이금이 작가는 1962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났다. ‘하룻밤’ ‘너도 하늘말나리야’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 ‘밤티마을’ 시리즈 등의 동화,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청춘기담’ ‘유진과 유진’ ‘소희의 방’ 등의 청소년소설을 냈다. 동화 ‘내 이름을 불렀어’로 올해 제9회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아동문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에 2020년 한국 후보로 선정됐다.

이 작가를 만난 날 오후에 잠깐 비가 내렸다. 빗물을 머금은 장충단공원은 더 싱싱하고 푸르렀다. 집 근처의 공원이라 작가가 자주 걷는 곳이다. 공원 안에 들어서니 도심의 소음이 일시에 사라지는 듯했다. 비에 젖은 짙푸른 녹음 사이로 한적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편한 길, 걷기 좋은 길을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합니다. ‘한양도성 내부 순성길’도 자주 걸어요. 최근에 나온 동화 ‘내 이름을 불렀어’도 그 길을 걸으면서 구상했던 작품이에요. 동네 풍경을 보면서 작품 속 동네와 한 소년을 상상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한 아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아이의 마음’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 작가. 그가 걷는 발걸음마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쏟아지겠구나 싶었다.

첫째로 태어나 온 집안의 귀염둥이로 자랐던 이 작가에게 최고의 이야기선생님이 있었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논밭이며 빨래터를 졸졸 따라다니는 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재미있고 가슴 두근거리는 즐거운 세계였다. 그리고 또 한 분, 이웃집 할머니가 있었다. 그분은 밤마다 장화홍련전, 흥부전 같은 책을 읽어주었다. 밤마다 문을 여는 드라마극장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드는 그 방에 어린 이금이도 갔다. “내일 밤에 계속”이라는 말로 책 읽어주기가 끝나면 아쉬워 애가 탔다. 할머니 등에 업혀 집에 돌아오면 뒷이야기를 혼자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이 작가에게는 할머니들께 이야기를 들었던 어린 시절이 온통 문학 수업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서울 아이들은 미리 공부를 하고 입학했는데 전 그런 준비도 없었고, 사투리를 쓰고 있었죠. 키도 제일 작아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아이들이 놀리면 울고, 넘어져서 울고…. 놀이도 잘 못 했어요. 혼자 놀이 연습을 해도 소용이 없고, 못하니까 끼워주지도 않더군요. 학교 가기 싫었죠. 그래서인지 혼자 상상에 빠질 때가 많았어요. 길을 걷다가 긴 골목길을 만나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죠.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이 그랬어요. ‘네가 봤어? 그건 다 네 생각이야’ 하고요.”

그런 이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책이었다. “세계명작 동화 중에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가장 좋아했어요. 두고두고 좋아했죠. 프랑크푸르트의 클라라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몽유병에 걸려 집안을 돌아다니는 하이디는 서울의 학교가 낯선 풍경 같았던 저와 동일시 됐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그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죠. 2007년에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했을 때 어디가 클라라 집일까 상상하면서 그 도시의 거리를 걸었어요. 마치 나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즐겁다

   
내 이름을 불렀어- 이금이·2019·해와나무
세계명작 동화를 읽으면서 이 작가는 “동화는 이렇게 쓰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 만들기가 제일 재미있는 놀이였던 그는 작가의 꿈을 꾸었다. “내가 어렸을 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 이야기를 만들고, 동화를 읽는 시간이었어요. 동화 쓰는 작가가 가장 멋진 사람이었고, 동경했지요. 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아이가 나오고… 나중에는 내가 만든 이야기를 아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글을 쓰기 전에 마음속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즐겁다고 말했다. “오래 생각하고 구상합니다. 이야기가 제 마음속에서 익어가는 거죠. 그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기는 과정은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그 말을 들으니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 있다. 이 작가의 작품들은 정말,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작가의 마음속에서 익을 만큼 익은 이야기이니 독자가 읽을 때는 그야말로 마음속으로 이야기가 쑥 밀려들어 오고, 마침내 흠뻑 적셔놓은 것이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는 청소년을 위해 쓴 소설이지만 성인 독자도 좋아하는 역사 장편소설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에 이르는 혼돈과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 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열린아동문학상을 수상한 ‘내 이름을 불렀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아이 동준이의 이야기다. 외로움으로 헛헛하고 서늘한 마음을 가진 동준이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옥탑방 아저씨가 독자의 마음도 따뜻하게 감싸준다.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를 잘 살려주는 최명숙 화가의 석판화 그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동화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현관 등이 커졌다. 마음까지 환해졌다.” 그 대목을 읽는데, 동준이가 이제는 외롭지 않겠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필자의 마음에도 환하게 등불이 켜졌다. 이 작가가 밝혀준 등불이다. 넘어져 울기 잘하던 소녀 이금이, 작가 이금이는 이제 아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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