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향유 주체·방식 다양해져
- 젊은 연극인, 기성극단과 차별화
- 침체 위기감 속 극단 수는 증가
- 극단 ‘물음피’·‘프로젝트 판’
- 연극 ‘탄탈로스’ 공동 공연
- 일반인 수평적 관계 활동
- 제작비 크라우드 펀딩 충당
- 탄탄한 작품으로 흥행 질주
- ‘아로새긴’ 연출가·PD 구성
- 작품마다 객원 배우 선발
- 극단 효율성·전문성 극대화
지난 4월 부산 연극인들이 모여 부산연극제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한 부산 연극인은 “부산 연극과 연극제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는 위기의식을 털어놓았다. 부산 연극계가 침체에 빠졌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연극을 하는 극단 수는 예전보다 증가하고 있다. 현재 부산연극협회에 가입한 극단이 25개이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가입 극단까지 합치면 40개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10년 전 활동한 극단이 20~30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10개 이상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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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8일 공연된 연극 ‘탄탈로스’를 함께 제작한 극단 물음피와 청년예술창작집단 프로젝트 판 단원들. 물음피 제공 |
이런 기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연극을 ‘향유’하는 주체와 방식이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향유’는 단순히 객석에 앉아 연극을 관람하는 고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직접 연출하거나 무대에 올라 연기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형태로 변했다. 현재 부산 연극계에는 시민 극단, 교육 극단, 장애인 극단 등 다양한 종류의 극단이 활동한다. 또 기존 극단 시스템과 차별화한 젊은 연극인의 활동도 부산 연극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시민참여형 극단…연극은 ‘놀이’
지난 4일 부산 수영구에 위치한 청춘나비소극장. 연극 ‘탄탈로스’를 관람하려는 관객으로 북적였다. 평일 저녁임에도 객석이 가득 차 작품을 향한 기대가 느껴졌다. ‘탄탈로스’는 긴 러닝타임(120분)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스토리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작품을 만든 주인공은 극단 물음피(?P)와 청년예술창작집단 프로젝트 판(Project PAAN)으로 모두 일반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시민참여형 아마추어 극단이지만 활동력과 성과는 프로 극단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먼저 물음피는 2012년 창단 이후 20개 이상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지난해에만 4번의 공연을 치렀다. 평균 객석 점유율도 80%에 이르며 최근에는 올리는 작품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 부산에서 ‘핫한 극단’ 중 하나로 주목받는다. 프로젝트 판은 출범한 지 1년 정도 됐지만 연극 ‘프시케’를 비롯해 여러 편의 단막극을 무대에 올렸다. 프로젝트 판 소속 장한미루 씨는 “단원 대부분 직업이 있고, 취업준비생이라고 해도 연극계에 진출할 마음은 없다”며 “연극이 진정한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참여형 극단은 운영 방식도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물음피 단원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참여 여부를 결정하고 작품마다 스태프나 배우 등 다른 역할을 맡는다. 덕분에 부담 없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고 대표나 연출가 등이 고정돼 있지 않다. 이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밑바탕이자 좋은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연극 작업이 즐겁고 친구들과 ‘놀이’를 하는 느낌이라고 단원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작비는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하지만 극단 성격상 지원금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판은 금정구에 위치한 문화공간 ‘스페이스 판’ 운영 수익을 활용하고, 물음피는 작품에 참여할 때 약간의 회비를 낸다. 티켓 수익을 분배해 경제적인 부담은 거의 없다. ‘탄탈로스’의 경우 제작비 마련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했다.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짧은 시간에 목표액의 3배가 넘는 후원금이 모였다. 물음피 소속 김가나 씨는 “프로젝트 판에서 과거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적이 있다고 해 함께 도전했다”며 “생각보다 많은 사랑을 받아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제작진만 있는 극단…역할 분담·전문성 강화
기성 극단과 차별화된 방식을 시도하려는 젊은 연극인들이 늘고 있는 것도 극단 수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2014년 프로젝트 팀으로 시작해 지금은 정식 극단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로새긴’은 자신만의 방식을 선보이는 대표적인 젊은 극단이다. 이 극단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작진만 있다는 점이다. 연출가 PD 작가로 구성돼 있으며 작품마다 객원 형태로 배우를 선발한다. 이런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제작진과 출연진의 역할분담을 확실하게 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제작진은 기다리는 배우가 없으니 부담 없이 오랫동안 공들여 작품을 준비하고, 배우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상태에서 연기를 한다. 아로새긴의 박소영 PD는 “제작진과 출연진이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효율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나눠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아로새긴의 방식은 성공적으로 통했다. 첫 작품 ‘점과 점을, 잇는 선. 으로 이루어진, 육면체.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몇 개나 되는, 서로 다른, 세계. 그리고, 빛에 대해’는 원작자와 접촉이 쉽지 않은 해외 소설이었지만 충분한 여유를 갖고 희곡화했다. 좋은 희곡을 잘 다듬어 무대에 올려 인정도 받았다. 2016년 초연 당시 일주일 만에 매진을 기록한 데 이어 제35회 부산연극제 자유참가 부문 연출상을 받았고 제17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 초청됐다. 최근에는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 사업에 선정돼 내년 1월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