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 구황작물인 ‘고구마’
- 쓰시마 방언 ‘고코이모’가 변형
- 우리말에 일본어 어원 많지만
- 한국말 日 건너간 사례도 많아
- 결혼 전 남자를 뜻하는 ‘총각’
- 다이쇼 시대에 ‘총가’로 사용
- 명태가 음차된 ‘멘타이’ 요리
- 하카타 지역 특산물 돼 인기
- 김치·갈비·비빔밥·나물·부침 등
- 일상생활 속 뿌리 내린 말 늘어
- K-POP 등 한류 인기 증가 속
- 세계서 통용되는 우리말 늘 듯
글로벌 시대, 우리는 정보의 바다를 유영(遊泳)하고 있다. 외국 문물의 유입과 정착 그리고 그것과 함께 들어온 말의 생명력을 매일매일 체감하며 살고 있다. 한껏 사용되다가 사라진 말, 유행하다가 정착된 말 이렇듯 다양한 말이 우리에게 있다. 외래어라는 말은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로 들어온 말’인데 마린(Marine), 비치(Beach), 스시(すし), 마라샹궈(麻辣香鍋) 등과 같이 요즘에는 다양한 국적의 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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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규슈의 명물 ‘멘타이코’(왼쪽 사진). 한국의 ‘명란젓’이 원형으로 그 이름에도 한국말 ‘명태’가 기원인 ‘멘타이’가 들어있다. 오른쪽은 전형적인 ‘마마챠리’이다. 일본의 방언에서 바구니가 달려 있고 엄마들이 주로 타는 자전거를 ’마마챠리’라 한다. ‘챠리(챠린코)’는 우리말 ‘자전거’에서 비롯됐다. 양민호 제공 |
이러한 말 중에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일본말이 간혹 섞여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도래 작물 ‘고구마’가 그중 하나다. 고구마는 원래 우리에게 감저(甘藷)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쓰시마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온 조선통신사 조엄이 쓰시마 방언으로 기근에 매우 도움이 되는 효행 깊은 구황작물이라는 뜻의 고코이모(孝行芋)를 일본식 발음으로 ‘해사일기’에 기록하였다. 이 음이 변해 고구마가 된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고구마는 사쓰마(薩摩) 번의 이름을 따 ‘사쓰마이모(薩摩芋)’라고 부르지만, 지역 방언 특히 한국과 매우 가까운 쓰시마 방언이 바다를 건너 한국으로 들어와 사용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어 속에 알아채지 못하는 일본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 경우는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한국어가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한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우리말에 대해 살펴보자.
■외래어 말고 외행어?
여러분은 외행어(外行語)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외래어가 ‘바다를 건너 우리말 속에 들어온 것’이라면 외행어와 같은 반대 개념도 있다. ‘바다를 건너 외국으로 간 우리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외행어는 ‘우리의 말이 세계를 누비며 뻗어 나간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외행어 개념은 1977년 일본의 미와(三輪)가 ‘서양 언어 속 일본어 유래의 차용어’라 정의하였고, 1997년 다니엘 롱은 ‘일본어 기원의 영어’라고 했으며 나중에 이노우에(井上)가 ‘영어 또는 인근 국가의 말속에 파고든 일본어’라고 정리했다.
이를 우리말에 대입해보면 ‘전 세계 사람이 알고 있는 우리말’, 예를 들어 불고기 같은 말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말들은 자랑스럽게 우리가 전 세계에 수출한 것이다. 이렇게 자국을 떠나 전파된 말 그것을 외행어라 칭할 수 있다. 방향성의 문제지만, 수용하는 쪽에서는 외래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외행어의 진출은 그 나라 문화의 우수성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 이웃으로 건너간 우리말에 관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일본에서 못 알아채는 한국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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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규슈의 이키 지역에서 만들어 파는 ‘친구’ 소주. 한국어 ‘친구’가 일본 소주의 이름으로 쓰인다. |
지리적 근접 효과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규슈(九州) 지역에 상륙한 우리말이 상당수 엿보인다.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 중 명란젓을 ‘다라코(たらこ)’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규슈 또는 긴키(近畿) 지방에서는 줄여서 ‘멘타이(メンタイ)’ 또는 ‘민타이(ミンタイ)’라고 부른다. 여기서 멘타이는 우리말 명태가 음차되어 전래된 것이다. 특히 하카타(博多) 지방에서 만들어진 멘타이코(メンタイコ)는 어느새 이 지역 특산물이 됐고, 지역을 넘어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퇴각한 일본 사람들이 그 시절 한국에서 먹었던 명란젓의 맛을 그리워하며 하카타에서 그 맛을 재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멘타이코 제조를 시작한 가게들이 이 지역에 많아지면서 역과 공항 등에서 팔리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일본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일본 속에서 한국의 맛, 한국어가 전래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규슈 지역 특히 고토 열도(五島列島)와 야마구치(山口) 방언 중에는 한국에서 건너간 ‘チング(친구)’라는 말이 있다. 쓰시마와 규슈 사이에 있는 나가사키(長崎)현 이키(壹岐)의 방언에도 어릴 때부터 친했던 친구, 또는 사이 좋은 친구를 ‘チング’(친구)라 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ちんぐ(친구)’라고 이름 붙인 소주도 판매되고 있어 깊숙하게 지역에 뿌리내린 증거로 볼 수 있다. 또한 쓰시마에서도 매년 8월 ‘チング音樂祭(친구음악제)’를 개최한다. 이는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자랑스러운 우리말이다.
또 우리 말 중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어른 남자라는 의미의 ‘총각(總角)’이라는 말이 있다. 이 총각이 일본으로 건너간 외행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일본 발음으로 ‘총가(チョンガ一)’라고 하는 이 말은 ‘결혼하지 않은 독신 남자’를 의미하는데 한국에서 예전부터 머리를 땋아 묶고 다닌 데에서 기인한 한자 어휘를 음차하여 쓰고 있다. 총각이라는 말이 한자어였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 말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서 다이쇼(大正) 시대 초기에 활발히 사용됐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일본 국민이 매일 같이 사용하지만, 한국어인 줄 모르고 사용되는 말 중 ‘챠린코(チャリンコ)’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 ‘자전거’의 발음이 전래되어 일본의 지역 방언으로 쓰이고 있다. 현재는 ‘챠리(チャリ)’라고도 줄여 부르고, 활용형으로 ‘마마챠리(ママチャリ)’와 같이 두 단어를 덧붙여 ‘엄마들이 주로 타는 자전거’ 특히 앞에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부를 때 사용한다. 원래 ‘지텐샤(自轉車)’라는 표준어가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는 ‘챠리’가 훨씬 더 많이 쓰인다. ‘챠린코’의 어원은 자전거의 벨소리 ‘챠링(따르릉)’과 우리나라 말 ‘자전거(チャジョンゴ)’에서 왔다는 두 가지 설이 공존하지만, 한국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챠리’ ‘챠리키(チャリ機)’는 효고(兵庫), 이바라기(茨木) 지역 방언에서도 사용되며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 일반인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이다. 그렇지만 그 말이 현해탄을 건너간 우리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많은 ‘문화’를 발신하자
현재 이렇게 일본인이 알아채지 못하고 사용하는 우리말뿐만 아니라 김치(キムチ), 갈비(カルビ), 국밥(クッパ), 비빔밥(ビビンバ), 나물(ナムル), 부침(チヂミ·찌지미)과 같이 공공연하게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은 말도 많다.
얼마 전 한국의 매력을 선보인 BTS(방탄소년단)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그들이 발신하는 문화(Soft-power)는 이제 전 세계의 문화로 성장하게 되었고, 멤버들이 언급하고 팬클럽이 따라 하는 단어들인 Maknae(막내), Aegyo(애교), Sunbae(선배), Hoobae(후배), 형(Hyung), Noona(누나), Oppa(오빠), Unnie(언니)와 같은 한국말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게 되었다. 그들이 표현하는 행동 ‘손가락 하트(Korean Finger Heart)’ 역시 그대로 받아들여져 쓰이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대한민국의 더 많은 외행어가, 바다를 건너 일본, 아니 전 세계로 유영해 나가길 희망해 본다.
양민호 부경대 HK 연구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