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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55> 부경대 김문기 교수의 ‘어류박물학 오디세이’

생소한 어류박물학에 빠진 교수 … “4부작 계획 평생 써야죠”

  •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9-06-11 18:50:3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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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박물학자인 김문기 교수
- 단독 저서 ‘바다 물고기 지식’서
- 한류성 어류인 청어·대구·명태
- 조선 이름이 ‘표준’ 된 역사 정리

- 학계 최초 ‘동아시아 관점’서
- 한·중·일 수산 생물 전문서 비교
- 중국 ‘민중해착소’가 亞 최초
- 한국은 정약전 ‘자산어보’ 아닌
- 1803년 ‘우해이어보’가 최초

- 일본의 ‘율씨어보’ ‘일동어보’
- 그림 들어간 어류도감·도보로
- 무시무시한 수준의 발전 엿봐

역사학자·박물학자 부경대 김문기(사학과) 교수가 얼마 전 펴낸 저서 ‘바다 물고기 지식-근세 동아시아의 어류박물학’(한국학술정보)에서 흥미 돋는 대목을 만났다.

한류성어류인 청어(靑魚) 대구(大口) 명태(明太)는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 물고기’로 이들의 이름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붙인 것이다. 동시에 청어 대구 명태는 한국 중국 일본, 동아시아 세 나라가 공유한 중요한 물고기이기도 했다. 한·중·일에는 이들 셋을 칭하는 자국어 이름이 나름대로 각각 있었다.
   
박물학자·역사학자 부경대 김문기(사학과) 교수가 연구실에서 저서 ‘바다 물고기 지식’을 쓰면서 참조한 한·중·일의 어보와 자료를 펼쳐 보이고 있다. 김성효 전문 기자 kimsh@kookje.co.kr
그런데 대략 18세기를 앞뒤로 해서 흥미로운 현상이 생긴다. 한국식(조선식) 이름인 청어 대구 명태가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일종의 ‘표준’ 비슷한 지위를 한동안 갖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청어라는 조선식 이름이 당시 일본에서 받아들여진 과정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일본의 본초학을 자립시켰다고 평가받는 카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그는 왜 일본의 한자(일본어에서 청어를 뜻했던 鰊(연), 鯡(비))를 버리고, ‘청어(靑魚)’라는 한자를 1709년 간행된 ‘대화본초’에서 사용했을까?”(191쪽)

그에 대한 단서는 일본 학자 카즈키 규잔이 7년 뒤인 1716년 간행한 ‘권회식경’에서 찾을 수 있다. 카즈키 규잔은 여기서 ‘(조선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을 봤더니 청어(靑魚)라고 돼 있고 조선통신사가 왔을 때 물어보니 청어(靑魚)라고 답했다’는 점을 중요한 근거로 내놓는다. 김 교수가 촘촘하게 정리해 놓은 표를 보면 1709년 이후 1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일본의 서적에서는 조선식 이름 ‘청어’가 정식 명칭으로 등장한다.

■청어 대구 명태의 박물학

이와 비슷한 일이 대구(大口)한테도 일어난다. 대구를 뜻하는 일본식 명칭인 ‘타라’ ‘설어(鱈魚)’ ‘설(鱈)’이 있음에도 조선에서 대구를 표현하기 위해 만든 조선식 한자인 화(夻)를 받아들인 화어(夻魚), 대구어(大口魚) 등이 상당 기간 일본에서 공식 명칭으로 쓰였다. 명태(明太)의 경우, 지금도 중국의 민간에서는 ‘밍타이위(明太魚)’라 하고 러시아에서는 ‘민타이’라 부르며 일본어에는 명란젓을 뜻하는 ‘멘타이코(明太子)’에 조선 이름 명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사실은 김문기 교수가 청어 대구 명태에 관해, 한국만의 관점을 넘어 동아시아 관점에서 비교하고 연구하면서 처음으로 정리했다. 언뜻 보면 작은 일 같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그의 비교연구를 통해, “조선의 물고기로만 알았던 청어 대구 명태는 어느 순간 동아시아 차원의 중요한 물고기로 떠올랐음”이 확인된다. 중국식 한자 어명(魚名)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던 동아시아에서 조선 고유의 물고기 이름이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통해 또 알 수 있는 게 있다. 17세기에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는 소빙기(Little Ice Age)가 엄습하면서 동아시아 바다에 한류성 어족이 대거 출현한 점이다. 기후 변동의 경제·역사·사회적 영향을 생선 이름에서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김문기 교수의 첫 단독 저서인 ‘바다 물고기 지식’은 단지 한국만의 관점이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의 관점에서 한·중·일의 어류박물학을 비교 연구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런 시도는 그간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산어보’는 한국 최초 어보 아냐

   
‘바다 물고기 지식’의 저자 김문기 교수.
김문기 교수는 이 책에서 정약전(1758~1816)의 ‘자산어보’에 관해 깊은 애정과 존중을 표하며 높게 평가한다. 특히, 흑산도로 유배가서 조선에 새로운 박물학의 기미를 전해준 ‘자산어보’를 쓰고도 끝내 해배(解配·유배에서 풀려남) 소식을 듣지 못하고 스러져 간 정약전에 관한 연민과 사랑은 진하게 느껴진다. 그런 마음은 학자로서 더 엄밀하고 새롭게 ‘자산어보’에 접근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2013년 국립수산과학원이 ‘자산어보’ 출간 20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자산어보와 21세기’를 펴냈는데 거기서 ‘자산어보’의 의의를 ‘아시아 최초의 수산 생물 전문서’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국 학계에서 중국과 일본의 현황을 잘 몰랐기에 빚어진 오해라는 것이다. 김문기 교수는 ‘바다 물고기 지식’에서 ‘자산어보’를 비롯해 한·중·일 동아시아 세 나라 어보(魚譜·수산 생물 전문서)의 역사를 비교 연구했다. 이런 시도 또한 학계에서 처음이다.

그는 그렇게 동아시아 최초의 어보인 중국의 ‘민중해착소’(도본준 저술·1596년), 일본 최초의 어보 ‘일동어보’(간다 겐센 저술·1719년), 한국 최초의 어보 ‘우해이어보’(김려 저술·1803년)를 정리한다. 단순히 순서만 따지면, 중국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어보가 출간된 지 123년 만에 일본에서 첫 어보가 나왔고, 다시 84년이 흐른 뒤에야 한국에서 어보가 최초로 등장한다. ‘자산어보’는 1814년 완성된다.

■그림, 어떻게 볼 것인가

동아시아 어보의 역사를 비교 연구하다가 김문기 교수는 뒷날 세 나라의 행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세 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 가서 새로운 시대의 서광이 조선에도 비추기 시작했음을 알리려는 듯 전통적인 성리학 저서가 아닌, 실질의 세계를 담은 ‘자산어보’를 썼다. 그는 해배되지 못한 채 유배된 상태에서 타계했다. ‘자산어보’는 한동안 잊혔다. 정약전보다 한 살 많은 중국 청나라 학자 학의행은 ‘기해착’이라는 탁월한 어보를 남긴다. 그는 건륭제 시대의 이름 높은 학자이자 관료로서 업적을 남기고 ‘훈고학’의 대가가 된다. 학의행보다 한 살 많은 일본의 구리모토 탄슈는 ‘율씨어보’ 등 정밀한 그림이 들어간 걸작 수준의 어보를 만든다. 그는 최고위급 의사이자 본초학자로서 줄곧 학술 연구와 저술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힘을 보탠다. 해배되지 못함(정약전), 훈고학(학의행), 의사이자 박물학자(구리모토 탄슈)라는 세 사람의 처지는 세상의 새로운 국면 앞에서 어딘지 상징적이다.

김 교수는 더욱 ‘무서운’ 발견도 했다. 일본의 경우, 최초의 어보인 간다 겐센의 ‘일동어보’(1719년)부터가 그림이 들어간 어류도감이며 도보(圖譜)다. 일본의 어보는 그 뒤로 줄곧 그림을 극히 중시한다. 그림 수준은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발전한다. 중국과도 달리, 조선은 어떤 어보에도 그림이 없다. 글로 설명한다.

■어류박물학 연구 위해 장기 계획

   
김문기 교수는 “어떤 분은 그림 없이 글로 설명하는 쪽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더 낫지 않겠냐고 질문합니다. 꼭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은 그림대로 더 큰 상상력을 불러옵니다. 일본이 일찍부터 ‘새로운 감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인터뷰는 4시간 반에 걸쳐 이뤄졌다. 들은 내용이 너무 많아 기사에 다 담을 수가 없다. 그의 마지막 답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는“평생 걸쳐 써야 할 것 같다”며 계획 중인 어류박물학 4부작 목록을 보여줬다. ‘어류의 탄생’ ‘어보와 어도’ ‘해산과 제국’ ‘남획과 공생’. 그러니까 이번에 낸 책 ‘바다 물고기 지식’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었다.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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