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작 ‘접합’·10여 점 신작 공개
- 적색·청색·다홍색 새롭게 도입
여든을 넘긴 원로 화가의 활짝 웃는 모습이 여전히 천진한 아이 같았다. 씩씩한 목소리, 손짓도 활달하다. “경남 산청이 고향이라 그런지 부산에 오니 고향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다. 이번 작품들 정말 좋지 않나? 죽을힘을 다해서 만들었다.” 작가의 선언에는 자신감이 가득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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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종현 화백이 부산에서 처음 갖는 개인전 감회와 작품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
196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봐 온 산증인이자, 국내 화단의 대표적 추상화가로 꼽히는 하종현(84) 화백. 홍익대 미대에서 공부한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작품 세계를 일궜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 국내의 가장 전위적 미술인 집단이었던 아방가르드 협회를 이끌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박서보, 이우환, 김창렬 등과 더불어 한국 추상미술의 간판으로 나란히 섰다. 그의 삶은 예술적 도전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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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종현 화백의 ‘Conjunction 18-52’.
국제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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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하 화백의 개인전 ‘Ha Chong-Hyun’이 열리고 있다. 최근 LA, 파리, 런던, 뉴욕 등 해외 활동에 주력해 온 그에게 국내에선 4년 만에, 부산에서는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선 지난 수십 년 동안 천착해온 대표 연작 ‘접합’(Conjunction)의 최근작 1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가 새롭게 도입한 적색과 청색, 다홍색의 대형 크기 ‘접합’ 연작을 국내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회화에 대한 고정 관념을 뒤엎은 자신만의 단색화로 현대 추상화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 화백은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을 통해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구축했다. 앞면으로 배어나온 물감 알갱이들은 나이프나 붓과 같은 도구를 사용한 작가의 개입으로 다시 자유롭게 변주된다. 특히 캔버스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방식의 파격적인 방법론에는 작가가 추구해 온 기성 형식에 대한 저항적 태도가 담겨 있다.
“제 작품의 흐름을 보면 경향의 변화가 많습니다. 과거의 일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 성격 때문이죠. 저는 도전하고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할 수가 없어요.”
요즘도 하 화백은 매일 물성과 에너지가 넘치는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작가가 여전히 새로운 구성을 탐구하면서 회화의 가능성을 탐색 중임을 증명한다. 특히 올해는 국내외의 주목 속에 어느 때보다 바쁜 행보를 보인다. 오는 21일부터 미국 미시간주 크랜브룩 현대미술관에서 박서보·권영우 작가 등과 함께 그룹전을, 오는 9월에는 밀라노 카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내년 2월에는 런던 알민레쉬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반세기 넘게 그림을 그려온 백발의 화가에게 예술 작업이란 무엇일까. “작품 활동은 고통도 낙으로 삼고 가야 합니다. 작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아픔을 견딜 준비가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야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시는 다음 달 28일까지.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