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19> 동북아해역과 근대 지식의 수용·유통(상)

한자로 번역된 서양책… 조선 실학·일본 양학 토대 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16 19:10:54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 죽을 때까지 베이징 머물며
- 유럽의 신지식 천문·역법 등
- 교리서와 함께 번역·출간

- 한문으로 표기된 서양 학문서
- 임진왜란 이후 18세기까지
- 조공사절단 통해 조선 유입
- 실학 태동에 큰 영향 끼쳐

- 에도 시대 의사 스기타 겐파쿠
- 네덜란드 의학서 직접 번역
- 中서 들어온 서학서 등과 함께
- 근대화·개방 촉매제 역할

중국에 서양의 지식이 본격적으로 전래된 것은 16세기 후반 예수회 선교사들의 입국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연재(제12회·지난 3월 29일 자 국제신문 17면)에서 전도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군인정신으로 달려들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동아시아 선교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또 이들은 자기 종교의 원칙과 규율을 강조하기보다 선교의 현지화 전략을 추구하여 대상이나 지역의 문화를 먼저 이해하고자 노력했다는 점도 말했다.
중국에 서양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한 마테오 리치(1552~1610)와 그가 중국어(한문)로 옮긴 ‘유클리드의 기하원본’.
■중국, 서학을 한자로 번역하다

이러한 예수회의 선교 전략은 기독교 전도의 측면과 서양 지식 보급이라는 측면에서 특징을 드러냈다. 전자는 성경을 직접 번역하기보다는 교리서를 번역해 피선교인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후자는 서양의 신지식 특히 천문이나 역법과 같은 학문을 소개해 지식인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어’로 위의 책들을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1601년 예수회 선교사로서 최초로 베이징 거주를 허락받은 마테오 리치의 경우, 원래 1578년 포르투갈 리스본을 출항하여 해외 선교에 나섰는데, 처음에 인도의 고아와 코친에서 주로 머물다가 1582년 예수회로부터 중국에서 전교하라는 지시를 받고 마카오에 도착하여 중국어와 한문을 배웠다.

그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은 문서선교 즉, 문서로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됐는데, 죽을 때까지 베이징에 머물면서 ‘10가지 역설’ ‘유클리드의 기하원본’ ‘천주실의’ 등 다수의 책을 발표했다. 이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와 같은 세계지도를 간행해 당시 중국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마테오 리치는 중국어로 서학서를 써냄으로써 이후 동북아해역에서 근대 지식의 수용과 유통에도 큰 역할을 했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어를 배운 목적은 일차적으로 중국 선교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이를 토대로 보급한 서양의 지식은 중국만이 아니라 당시 조선이나 일본에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근대 지식의 수용은 당시 조공 시스템에 의해 유통이 원활했고, 동아시아 지역의 중세어에 해당하는 한자로 표기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이른바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가 16세기 이후 동북아해역에서 새로운 지식을 태동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조선에서 ‘실학’이 태동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조공사절단을 통해 들어온 한역서학서가 18세기까지 서교(천주교)와 함께 전래돼 영향을 준 것이다. 물론 천주교 탄압 그리고 서교를 서학으로 대치해버린 오류로 19세기 초부터 후반까지 약 70년간 서학 수용은 단절을 겪었고, 그래서 개항과 함께 뒤늦게 근대 지식을 수용하는 길로 나아갔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서학 전래에서 한역서학서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일본 난학의 선구자 스기타 겐파쿠(1733~1817)와 그가 동료들과 함께 네덜란드 원문을 일본어로 번역한 ‘해체신서’.
■일본, 네덜란드인을 만나다
한편 일본은 일찍이 포르투갈과 직접적인 접촉으로 서구의 그리스도교와 과학지식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17세기 중반부터 쇄국정책을 시행하면서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만 해외교역을 허락했는데, 이 교역에 참가한 유일한 서양 국가가 바로 네덜란드였다. 일본 역시 조선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간행된 한역서학서를 통해 서양 지식을 수용하고 있었는데, 데지마의 교역을 계기로 네덜란드 상관과 통역사를 통해 직접 서양 의학과 과학기술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에도 시대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유럽의 학문, 기술, 문화 등을 통칭해 ‘난학(蘭學)’이라 한다. 난학 발달에 한 획을 그은 것은 1774년 의학자 스기타 겐파쿠가 번역한 ‘해체신서(解體新書)’이다. 1771년 초 봄 에도(지금의 도쿄)의 한 형장에서 스기타 겐파쿠는 에도에서 근무하던 각 번의 의사인 마에노 료타구, 나카가와 준안 등과 함께 인체 해부를 난생처음 참관했다. 스기타 겐파쿠 등은 이날 이전에 구해놨던 네덜란드 인체 해부서 ‘타펠 아나토미아(Ontleedkundige Tafelen)’를 가져간다. 그런데 이 해부서에 실린 인체도와 실제 인체 모습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곧바로 이들은 이 해부서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겐파쿠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고, 함께 참관한 의사들의 네덜란드어 실력도 극히 초보 수준이었기에, 이 결심은 무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불가능에 가까운 이 일을 성공시켰고, 약 4년에 걸친 천신만고 노력 끝에 번역을 끝내고 ‘해체신서’라는 번역서를 출판했다. 특히 10여 명 동료 의학자와 함께 해부도와 단어 하나하나를 대조해가면서 완성한 이 책은 네덜란드어를 일본어로 대치하는 사전 편찬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외과 내과 한과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등 기초 의학 서적이 일본에 소개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해체신서’ 출간 뒤 서양 의학뿐 아니라 천문 지리 수학 병학 박물학 등 다양한 책이 일본어로 번역돼 서양의 새로운 지식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난학이 100년 가까이 일본 근대 의학뿐 아니라 과학과 예술, 나아가 교육, 사고방식, 관습 등 일본인과 일본 사회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며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난학 열풍에 불을 지핀 이 책을 동료들과 펴낸 뒤, 스기타 겐파쿠는 본격적으로 난학에 몰두했다. 의사 일을 하면서 난학을 가르치는 사숙인 난학주쿠를 열어 후계자를 양성했다. 난학주쿠는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난학주쿠 출신 젊은이들은 막부 말기와 메이지유신 시대에 걸쳐 일본을 변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겐파쿠는 말년에 ‘난학사시(蘭學事始)’라는 회고록을 펴냈는데, 난학을 개척한 인물이 직접 기록한 유일한 회고록이자 난학이 어떻게 시작돼 확산·발전돼 갔는지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해체신서’, 일본을 바꾸다

‘해체신서’가 일본 난학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서양 지식의 수용에서 의미가 큰 것은 네덜란드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최초 서적으로, 일본이 중국을 통한 서양 지식 전래에서 벗어나 서양인과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 점이다. 또 궁극적으로 일본인이 서구에 대해 개방적인 인식을 갖고, 근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이러한 인식은 중화질서라고 하는 당시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에서 벗어나는 원심력으로 작동했다. 다시 말해 탈아(脫亞·아시아를 벗어남)의 이론적 또는 사유적 바탕이 난학을 통해 확보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난학 이후 일본이 한역서학서 수용을 금지한 것은 물론 아니다. 19세기 중반을 전후해 상하이를 중심으로 개신교 선교사들과 청 관료 및 지식인이 발행한 많은 한역서학서와 잡지는 막부 말기에 일본에 전해져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또한 상하이와 나가사키를 잇는 교역시스템에 의해 가능했다. 이는 아편전쟁을 비롯한 당시 중국 상황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일본은 페리의 내항으로 개국한 뒤 중국을 통한 서학 수용을 줄이고, 또 수용의 채널을 다변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양학(洋學)의 토대를 갖추어갔다.

서광덕 부경대 HK 연구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부산교통공사
우리은행

 많이 본 뉴스RSS

  1. 1시큰시큰 무릎 통증, 운동·줄기세포 치료로 초기에 잡으세요
  2. 2다저스 107년 최저 방어율 갈아치운 류현진
  3. 3월드컵 부진 비난 받은 김정민 “팬·동료 위로에 안정 찾았어요”
  4. 4기독교 애니메이션 영화 ‘천로역정’ 극장 개봉 호평
  5. 5“세계적 영향력 인정” BTS, 미국 라디오음악상
  6. 6관절·척추 전문서 전문센터형 지역 거점 종합병원 도약
  7. 7태광그룹 총수일가, 계열사에 김치·와인 강매
  8. 8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17> 안무가를 위한 옹호
  9. 9희수 넘어 귀향한 ‘동양의 모차르트’…피아니스트 한동일의 인생 연주
  10. 10‘농구 황제’ 꿈꾸던 우들랜드, 생애 첫 US오픈 제패
  1. 1여야 4당, 한국당 뺀 6월국회 소집요구…20일 개문발차
  2. 2윤석열 어록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냐”
  3. 3이해찬 "참을만큼 참았다"…'6월국회 소집' 결의
  4. 4막말 논란 한선교 사무총창직 사퇴… 욕설·‘걸레질 등 잇단 막말 탓인가
  5. 5한선교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직 사퇴
  6. 6새 검찰총장 윤석열 지명…고검장 건너뛴 ‘파격’
  7. 7막말 논란 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 사퇴
  8. 8부산 한국당 내년 총선 성적 ‘신주류 3인’ 협업에 달렸다
  9. 9청와대, 적폐 청산·검찰 개혁 가속 의지…검찰 인사태풍 예고
  10. 10소득주도성장위 “성과 내고 있다…정책기조 유지해야”
  1. 1태광그룹 총수일가, 계열사에 김치·와인 강매
  2. 2경남은행, 지역 자영업자에 광고·언론홍보 등 지원
  3. 3금융·증시 동향
  4. 4한은 기준금리 낮추기도 전에…은행권 예금이자 줄줄이 인하
  5. 5미중 마찰 장기화 땐 국적선사 실적악화 불가피
  6. 6주가지수- 2019년 6월 17일
  7. 7바다 위 ‘극지연구소’ 60여 종 첨단장비에 엄지척
  8. 8항운노조 비리고리 못 끊는 정부
  9. 9공항 앞 아시아 최고 항공산단…부산, 싱가포르를 배워라
  10. 10부산 카드 연체액 급증…1인당 290만 원 전국 최고
  1. 1이번주 전국 날씨 18~19일 비 소식, 주말도 흐려요
  2. 2로또 1등이었는데… 도둑으로 전락한 30대 경찰 붙잡혀
  3. 3홍콩 시위 이유 ‘홍콩 송환법’… 보류 결정, 시위대 요구 이어져
  4. 4윤석열 ‘검찰 내 최고자산가’… 재산 ‘검찰 평균 3배‘ 지적, 사실은
  5. 5文 대통령 차기 검찰총장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지명
  6. 6로또 1등 당첨자가 도둑으로 전락하기까지 ‘딱 8개월’
  7. 7검찰 초대형 인사태풍 예고…검사장 절반 이상 교체될 듯
  8. 8방탄소년단 팬미팅 암표판매상 적발…"플미충 아웃"
  9. 9검찰총장 직행 '파격' 윤석열…소신·정면돌파 스타일 '강골'
  10. 10박남춘 시장 개선 약속…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는 어떤 사건
  1. 1이강인 “전세진 엄원상 형 누나들에 소개해주고 파”
  2. 2류현진 중계… ‘시즌 10승’ 난항, 6회 2실점 무자책
  3. 3U-20 국가대표팀 환영회 최민수 모델 뺨치는 외모
  4. 4류현진은 7이닝 비자책 호투에도…실책·시프트 불운
  5. 5‘10승 도전’ 류현진 중계 어디서? MBC스포츠플러스-네이버 스포츠-인터넷 MLB 코리아-아프리카TV
  6. 6다저스 107년 최저 방어율(개막 후 14경기 선발 기록) 갈아치운 류현진
  7. 7U-20 월드컵 준우승 태극전사, 팬들 환호 속 귀국 "감사합니다!"
  8. 8U-20 월드컵 태극전사들의 유쾌한 환영식…'즉석 헹가래'
  9. 9월드컵 부진 비난 받은 김정민 “팬·동료 위로에 안정 찾았어요”
  10. 10이승엽기 리틀야구대회 22일 개막
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안무가를 위한 옹호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소프라노 서정아
국제시단 [전체보기]
제 몸을 태우는 그늘 /이기록
동네책방 통신 [전체보기]
공공도서관과 협업해 ‘풀뿌리 독서생태계’ 키운다
따끈한 문예지 ‘舊南(구남)’ 나오고, ‘인디무브’ 이사했어요
방송가 [전체보기]
새 삶을 얻은 반려견의 ‘견생 2막’
어른 싸움으로 번진 거제 학교폭력의 진실
부산 웹툰 작가들의 방구석 STORY [전체보기]
I Love 부산...마인드C
고진호
새 책 [전체보기]
급식 시간(서형오 지음) 外
부드러움과 해변의 신(여성민 지음) 外
신간 돋보기 [전체보기]
칼 융의 분석 심리학 개척 과정
상실감 치유하는 맛있는 소설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Coloring march-11 - 이향연 作
화기 - 김미희 作
어린이책동산 [전체보기]
세상은 온통 수상한 것 천지야 外
미디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 外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빈집 /이성호
휴전선 바람소리 - DMZ 을지전망대에서 /김덕남
이기섭 8단의 토요바둑이야기 [전체보기]
제22회 LG배 기왕전 결승 3번기 2국
제2회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전 본선 8강전
이원 기자의 Ent 프리즘 [전체보기]
재미·의미 둘 다 잡은 ‘봉테일’…20년 전부터 지겹도록 “컷! 한 번 더”
굿바이 어벤져스…11년 간 사랑받은 그들의 기록
조재휘의 시네필 [전체보기]
천국과 지옥
1977년과 2018년의 ‘서스페리아’
책 읽어주는 남자 [전체보기]
이민족 귀화 많았던 고려사에 난민문제 혜안 있다 /정광모
책 읽어주는 여자 [전체보기]
긴 겨울밤도 체호프의 유쾌한 단편이면 짧아져요 /강이라
현장 톡·톡 [전체보기]
조선 시대 기장 풍경 예찬 ‘차성가’…지역 예술인들 숨결로 되살려
영화 만난 국악 판타지 ‘꼭두’ 부산 온다
묘수풀이 - [전체보기]
묘수풀이 - 2019년 6월 18일
묘수풀이 - 2019년 6월 17일
이기섭 8단의 바둑칼럼 [전체보기]
2018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2차전
2018 부산·서울 프로기사 초청교류전 2차전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전체보기]
曆數在爾躬
律曆相治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시민초청강연
  • 번더플로우 조이 오브 댄싱
  • 낙동강수필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