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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의 부산 춤 이야기 <14> 공연 팸플릿에 대한 단상

공연 전 펼친 작은 팸플릿, 관객-작품 사이 상상의 세계 열어줘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5-06 18:45:5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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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 홍보보다 파급효과 작아도
- 춤 이해 돕는 중요한 소통 창구
- 난해한 표현 되레 거부감 주기도
- 잠재적 관객의 흥미 유도가 핵심

공연에서 팸플릿은 너무나 익숙하다. 공연 제작자에게는 기록과 증빙자료이고 관객은 공연을 소개하는 안내서로 여긴다. 팸플릿(pamphlet)을 다루는 방식도 다양해서 내용을 꼼꼼히 읽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사람도 있지만, 친분 있는 출연자 얼굴을 확인하거나 건성으로 훑고 마는 경우도 있다. 공연이 끝난 뒤 버려진 팸플릿을 볼 때면 돈과 노력을 들여서 굳이 만들어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 예전에는 팸플릿이 중요한 홍보 수단이어서 단체와 개인에게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언제부터인지 공연을 알리는 팸플릿을 발송하지 않게 됐다. 요즘 공연 홍보는 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이용한다. 온라인 홍보는 여러 차례 전달과 노출을 해도 비용이 적게 들고, 확산이 빨라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다.

박은지 안무의 춤 ‘라보엠’. 이처럼 대사가 거의 없이 이미지 중심으로 펼치는 춤 공연에서 팸플릿은 나름의 중요한 구실을 한다. 사진가 박병민 제공
그렇다면 일회적인 데다 비용 부담이 있고 홍보 효과가 작은 팸플릿을 굳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필요는 있지만, 용도나 기능을 달리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무가가 작품을 내놓을 때 관객이 없어서 애써 만든 작품이 아예 평가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작품 제목과 내용을 글로 정리해 잠재적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려 한다. 제목은 작품을 보면서 연상하고 유추하고 상상할 실마리를 제공해서 관객에게 작품의 의미형성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안무 의도나 기획 의도 같은 설명은 작품 배경과 내용의 이해 폭을 넓힌다.

춤 공연을 관람하기 전 팸플릿을 꼼꼼히 읽는 것은 감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팸플릿이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춤 팸플릿을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작품 설명이 춤보다 어렵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이 경우 팸플릿을 살펴보면 사용한 단어가 추상적이거나 말 줄임표, 느낌표, 물음표 같은 기호 사용이 잦아서 내용이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안무자가 언어를 벗어난 춤을 다시 언어로 갈무리하려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관객은 이런 내용을 참고로 감상하려다가 오히려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팸플릿은 관객이 공연 직전에 만나는 중요한 소통 매체이기에 올바른 문장과 표현이 기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했고 나만의 글쓰기를 경험할 기회도 갖지 못했다. 주변에 일본어, 영어 번역투 문장이 넘쳐나도 그것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팸플릿의 문제를 안무자나 기획자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한 가지 해결방법은 전달할 내용을 정확한 문장으로 교정해 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팸플릿을 만드는 쪽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소통’이라는 기능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사전에 검증해야 한다는 말이다. 팸플릿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예술가와 관객에게 도움이 되고 방해도 될 수 있다.

팸플릿의 문장을 올바르게 구사해야 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작품 제목, 작품 내용 등을 설명하는 문장이 춤 감상의 실마리를 줄 수 있지만 작품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작품은 글이 포괄하지 못하는 틈으로 끊임없이 빠져나가고, 글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작품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만약 ‘제목+설명=작품’이라면 굳이 비언어적 표현인 춤으로 만들 필요가 없고, 관객의 자유로운 해석도 의미가 없어진다.
팸플릿의 기능은 작품을 하나의 해석과 설명으로 환원하지 못하게 하면서 잠재성을 더욱더 깊게 만드는 것이다. 관객이 팸플릿을 받아 든 순간은 작품의 무한한 해석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며, 창작자가 팸플릿 한 장을 내밀 때부터 창작의 배타적 빗장이 열린다. 창작자, 수용자 모두 공연 팸플릿이 무엇인지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춤은 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춤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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