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은 치열하게 예술인 키우고
- 시의 통큰 지원·시민 관심 있어야
- 삼박자 고루 갖춘 지역예술 가능
- 높은 기량의 예술단체 만들려면
- ‘현능’한 감독의 역할 가장 중요
- 공모제 아닌 초빙 형태도 대안
최근 부산시립예술단의 예술감독 선정과 객원 감독 선임 발표로 지역 예술문화계가 술렁였다. 발표된 10명의 예술감독 및 객원 지휘자·안무자 가운데 지역 예술인이 1명인 것을 두고 부산 예술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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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립예술단의 공연 모습. 정두환 제공 |
필자 또한 부산 예술인 중 한 사람이기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는가를 꼼꼼히 짚어보는 시간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사람들은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예술을 한다고 보면, 다양한 예술행위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각종 예술 행위를 더욱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시민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립예술단이 존재한다. 이 존재적 이유를 달성하기 위해 시를 비롯한 관계 기관은 여러 지원정책을 펼쳐야 한다.
더욱더 높은 기량으로 다양한 예술을 표현하는 단체를 만들기 위해 예술감독 자리는 너무도 중요하다. 실력 있는 감독을 모시는 데는 공모제보다 추천제가 더 적합하다고 부산문화회관 이용관 대표는 천명했다. 그렇다. 이 대목에 필자는 동의한다. 보다 뛰어난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감독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지역 예술계에서 그간 한계를 드러낸 공모제보다 뛰어난 수장 청빙 방식이 훨씬 낫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실력 있는 전문가위원회가 추천하고, ‘부산시’가 초빙하는 시스템으로 예술감독이 선임되었으면 한다. 시에서 모든 예산을 지원받는 기관이 온전한 독자성을 확보할 방법 중 하나는 최고 책임자인 시장의 초빙이다. 이때, 그 유명한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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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전경. |
이번 예술감독 선임 과정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부산의 예술행정이 많이 힘들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했다. 목적을 분명히 알면 그 답도 쉽게 나올 수 있다. 시립예술단이 더 적극적이고 수준 높은 예술행위를 하려면 예술단 구성원을 비롯한 예술인들과 지역 학계, 시민이 관심을 보여야 한다. 대학은 더욱 치열하게 예술인을 양성하고, 시는 예술 지원정책을 과감히 마련하고, 시민은 지역 예술에 더욱 애정을 가지고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삼박자가 함께 가야 한다.
“일 자체에 능숙한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주면 되고, 유능한 사람에게는 직위를 주면 되고, 현명한 사람은 초빙하여 모셔야 한다”는 정성헌 새마을운동중앙회장(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이야기가 다시금 새겨진다. 예술단을 이끄는 예술감독 자리는 ‘현능’한 사람을 초빙해야 하는 자리다. 현재 부산문화회관의 보수와 예우로 모실 수 있는 ‘현능한’ 예술감독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지역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 시스템은 다시금 면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지역의 인재가 제외됐다면, 지역 인재를 발견하고 발굴하도록 방식을 보완해야 한다.
지난주 송두율 교수는 모 일간지에 쓴 칼럼 ‘역사에 대한 불감증과 과민증’에서 영국의 역사학자 카의 “사회가 너무 병들었기에 역사도 병들었다”라는 지적을 인용했다. 필자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필자 또한 사회 구성원의 일원이기에 나 역시 병들었다는 자책감과 어떤 병이 나를 에워싸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회가 병들었기에 역사도 병들었다”는 명문을 이번 예술감독 선임에 적용해 볼 여지는 없을까? 지역 사회의 예술은 건강한가? 그 여부에 따라 앞으로 써나갈 지역 예술의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부산 예술인에는 필자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 예술가가 포함된다.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을 거친다. 관련 예술인을 비롯한 시 예술정책 담당자 등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시민이 더욱더 수준 높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시와 시립예술단은 노력해야 하며, 이를 시민이 향유자와 목격자의 관점에서 평가할 것이다.
음악평론가·문화유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