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의 예술상 첫 수상자 되며
- 화려한 길을 걷는가 했지만
- 세상엔 ‘춤 외’ 장벽이 많았다
- 그 무렵 시작된 저항과 도전은
- 기발하고 새롭고 에너지 넘치는
- 김윤규 춤의 자양분이 됐다
1995년 심상찮은 무용단이 창단됐다. 트러스트 무용단이다. 당시에는 특정 교수와 동문 중심 무용단이 많았는데, 이 단체는 부산대 부산여대 경성대 세종대 등 출신학교가 다른 춤꾼이 결합했다. 5명의 핵심 춤꾼 중 김윤규(49)가 있었다. 그는 2004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제정·시행한 ‘올해의 예술상’에서 무용분야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서울 활동 4년 만의 성과였다. 부산 촌놈의 등장치고는 요란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기뻤지만, 마음고생도 많았다. “첫 수상자가 ‘지방 출신 젊은 애’라는 사실이 충격이었던 것 같아요. 영광과 좌절이 교차했죠.”
처음부터 서울이라는 큰 무대를 좇은 것은 아니다.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전문사과정이 개설돼 상경했다. 부산에서 5년 정도 활동했지만 조언 구하기가 힘들었다. 새로운 배움이 절실했다. 이때 트러스트도 함께했다. 서울 정착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컸다.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부산에서 온 단체에 아무도 관심 없고, 객석 채우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죠. 더 열심히 땀을 흘렸습니다. 낯선 땅에서 그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구조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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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을 통해 예술과 사회구조에 끊임없이 도전한 춤꾼 김윤규. 전민철 기자 |
춤이 좋았고, 더 좋은 춤을 추고 싶은 꿈이 있어 반지하와 옥탑방을 전전해도 좋았다. 그러다 예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인식하게 됐다. 문화 예산 규모가 커지고 문화강국이 되어 가는데 활동 여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승자만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 인간의 존엄마저 잃어간다는 자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왜곡과 불균형에 맞서 저항의 몸짓을 펼치기 시작했다. 몸에 체화된 인식이 춤으로 드러난 것이다.
“2014년 아르코예술극장과 공동으로 ‘문밖에서’를 제작했습니다. 20년을 함께한 트러스트를 떠나 힘들 때였고, 그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웠어요.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던 만큼 가장 솔직하게 만든 작품이었죠.”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이 교차하는 ‘문의 안과 밖’을 소재로 삼았지만 물을 오브제로 사용한 까닭에 직접적이지 않아도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 격한 감정이 무대와 객석을 넘실댔다. 작품은 처절했고 관객은 힘들어했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무대에 올려보고 싶은 작품이다.
‘무대’라는 구조도 도전 대상이다. 거리춤을 느슨하게 구성하고 빈자리에 현장을 채워 넣어 춤꾼과 관객이 한데 어우러진다. 2012년 해운대에서 펼쳐진 ‘구르는 낙타’ 당시 술 취한 아저씨가 춤꾼과 어울리고, 쥐포장수 아저씨와 길 가던 연인도 춤판에 녹아들었다. 춤꾼들은 자연스럽게 이들과 어울렸다. “즉흥성도 훈련합니다. 현장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곧바로 이를 가공할 순발력도 필요하지요. 일상공간이 곧 예술공간이 되고, 그 순간의 에너지가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새로움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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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서울 청와대길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대행진’ 공연 모습. 김윤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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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그는 ‘반항아’였다. 거리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다 ‘쓸모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레슨비 4만 원을 주고 무용학원에 등록했다. 춤추면서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행복감을 느꼈다. 민족 미학자인 스승 채희완 교수와의 만남은 그의 춤이 도약하는 계기였다. 현대무용이 서사를 버리고 우연성과 몸만 강조하는 반면, 그의 춤은 가무악과 연기, 대사가 포함된 드라마에 가깝다. 전통 탈춤과 굿을 활용한 춤사위와 호흡, 접신한 듯한 신명 역시 독특하다.
최근에는 ‘보는 예술’을 넘어 모두가 함께 ‘하는 예술’에 관심이 많다. 2014년 창단한 ‘댄스씨어터 틱(Dance Theater Tic)’은 전문 춤꾼과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함께 작품을 만든다. 이들의 이야기가 곧 춤이 되고 작품이 된다. 지난해 ‘이방인들의 축제’에는 공존과 상생의 의미를 담았다.
“모든 예술은 몸에서 출발해 결국 몸으로 돌아와요. 그런 점에서 춤은 근원적입니다. 춤꾼이 몸으로 표현하면 관객도 몸으로 경험합니다. 현대사회에서 그런 관계 맺음은 드물지요. 춤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타자, 세계와 관계를 맺고 연대하는 활동이며, 나를 돌아보는 행위입니다.”
예술은 언제나 저항하고 그를 통해 새로움을 창조한다. 김윤규는 예술로, 또 행동으로 예술의 구조와 그 구조를 빚어낸 사회구조에 맞서 거침없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더 당당하고 자유로운 예술을 하기 위한 길이다. 푸른 청춘의 날, 춤을 좇아 떠났고, 낯선 땅에서 마침내 자신의 꿈을 꽃피워 낸 김윤규의 예술세계 역시 사람과 사회에 대한 그의 애정과 더불어 더욱더 깊고 풍성해지리라.
공연기획자·인제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