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노비보다 천대받아
- 평등사회 꿈꿔 형평운동 전개

- 한국사회 전근대성·인권 문제
- 작가가 쓰라린 감동으로 제시
- 방대한 자료 등장 역사여행 겸해

‘쓰라리다’라는 낱말은 상처가 쓰리고 아프다, 마음이 몹시 괴롭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그렇다면 김용심 작가의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는 ‘쓰라리게 감동적인 책’이라고 해야 할까? ‘쓰라리게 인상 깊은 책’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을까? 이 책을 두고 ‘쓰라리게’라는 말은 어쨌든 피해갈 수 없었다. 감동이 있고 인상 깊은데 동시에 쓰라리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이 책이 알려주는 우니라나 백정의 역사와 삶과 처지가 참으로 아프고 어이없다는 점이다.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에는 그런 쓰라린 사례가 많이 나온다. 조선 시대 중기 이후에 들어서면 백정은 노비보다 더 천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조선 후기로 가면 아예 ‘인간계, 차별과 멸시의 끝판왕’ 수준으로 떨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백정에 관해, 그들의 존재가 뜻하는 바에 관해 너무 몰랐다는 점을 일깨운다 점이다.

국가무형문화재 69호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셋째 마당인 ‘백정마당’에 등장하는 백정(왼쪽 사진)과 경남 진주시 칠암동에 있는 진주형평운동 기념탑. 국제신문 DB

저자 김용심은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한국구비문학대계’ 등 주요 자료와 옛 문집, ‘형평운동’에 관한 연구 성과, 설화, 정동주 작가의 소설 ‘백정’부터 박경리의 ‘토지’에 이르는 문학 작품, 논문 등 관련 자료를 집요하게 탐색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역사에 관심이 많아 역사 관련 책을 꽤 읽었다는 독자도 반길 사례가 많이 나온다.

특히 인상 깊고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형평운동에 관한 단원이었다. 1923년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꿈을 안고 백정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형평사이며 이들의 운동을 형평운동이라 하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경남 진주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형평운동에 대한 반대와 탄압도 극렬했다. 1925년 경북 예천에서 일어난 형평사 지부 공격 사건과 진주에서 들끓었던 형평운동 반대 등이다.

그러나 형평운동은 전진했고 ‘백정의 아버지 박성춘’ ‘백정의 새아버지 강상호’ 등 한국사의 진정한 영웅들이 나온다. 형평운동이나 박성춘 강상호 등 영웅이 이 책을 통해 처음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백정의 사회사에 관해 고려·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관성 있게 서술하는 흐름 위에서 이들의 존재를 부각하니 의미가 더욱 선명하다.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이 한창일 때 학생운동을 하는 대학생들 술자리에서 이런 풍경이 자주 펼쳐졌다. 운동권 학생들은 낮에는 화염병을 던지며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민중이 해방되는 세상”을 외쳤다. 밤에 뒤풀이 술자리가 펼쳐지면 버릇처럼 “우리 집안은 뼈대 있는 양반 집안으로 …”라고 가문 자랑을 했다.

낮에 그가 해방시키겠다고 공언했던 민중을 미친 듯한 수준으로 착취한 존재가 바로 그가 밤에 자랑한 양반들이었다. 백정 문제, 양반-상놈 문제, 신분 문제가 나오면 한국 사회의 정신적 분열상과 전근대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으며 백정이라는 존재를 경유해서 진정한 평등과 근대성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겠다. 보편적 인권, 개인의 존엄, 노동의 신성함 등의 가치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