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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55> 배길남 소설가의 소설집 ‘짬뽕 끓이다 갈분 넣으면 사천짜장’

‘문득’ 떠오른 모든 것, 거기엔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요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17 19:04:1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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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생 때 혼자서 신문 제작
- 학교이야기·소설 담아 20부 발행
- 글쓰기 인생 이어준 유쾌한 추억

- 역사·패러디 등 8편 담은 소설집
- 담백한 문체·정겨운 부산사투리
- 기성사회의 신랄한 비꼬기 담아

추억은 어떻게 소환될까. 어린 시절 친구들, 교실 풍경, 동네의 골목, 청춘을 바쳤던 사랑…. 한번 떠오르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영화가 상영되는 것처럼 어느 한 지점의 기억에서 필름이 계속 돌아가기 시작한다. 마치 삶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 추억의 시작은 ‘문득’이다. 배길남의 소설집 ‘짬뽕 끓이다 갈분 넣으면 사천짜장’을 읽다 보면, 문득 지난 추억이 떠오른다.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느닷없이 짜장면이 먹고 싶었고, 중국집 사장님들이 욕심낼 만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났다. 배길남 소설가를 남구 대연동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만났다.
   
소설가 배길남이 부산 남구 대연동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 혼자서 신문 만들던 학창시절

배길남은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대연동에서 자랐다. 그를 만난 역사관은 남구 흥곡로에 있다. 꽤 높은 곳에 있어 남구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줄곧 남구에서 살아온 그에겐 내려다보이는 시가지가 손바닥처럼 익숙하고 정겹다. “미세먼지 때문에 답답했는데 오늘은 그나마 조금 덜한 것 같아요. 저쪽으로 넘어가면 부산진구이고, 바로 저기가 유엔기념공원이고….” 배길남의 시선을 따라 그의 동네를 구경해본다. 도로마다 골목마다 그의 추억이 배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국민서관 세계명작동화 60권 전집을 사주셨어요. 남자아이답게 모험소설, 추리소설부터 골라 읽었어요. ‘15소년 표류기’ ‘로빈슨 크루소’ ‘셜록 홈즈’ 같은 소설이요. 그렇게 한 권씩 읽기 시작하다가 60권을 전부 읽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책을 읽은 것이 문학계 입문이었던 거죠. 국민서관이라는 출판사가 아직 건재할까요?” 60권 전집은 지금도 그의 방 책꽂이 가장 좋은 자리에 꽂혀 있다. 소설집 ‘짬뽕 끓이다…’의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사진은 배길남이 그 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다.

중·고교 시절 중 가장 유쾌한 추억은 글쓰기의 행진이었다. 그는 중2와 고2 때 혼자 신문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 자신의 연재소설 등으로 구성된 신문이었다. 혼자서 편집장, 기자, 작가 역할 다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중학교 때 만든 신문이 ‘과테신문’이다. 당시에 친구들과 “이라면 과테말라에서는 큰일난대이” “이건 과테말라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야” 이런 농담을 했고, 신문 제목도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신문 제작을 마치면 20부 정도 복사했다. 친구들은 신문 값을 내고 사서 함께 돌려보았고, 정기구독해주는 선생님도 몇 분 있었다. 20부 발행이었지만 배길남의 친구 모두가 그 신문을 읽었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 경성대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하고 학원강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아웃사이더로서 많은 경험을 했지요. 2010년 가을에, 동보서적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마음도 아프고, 동보서적에서 보낸 추억도 떠올라 가만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문 닫는 서점 이야기를 단편소설 ‘사라지는 것들’로 썼고, 201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소설집 ‘자살관리사’ ‘짬뽕 끓이다 갈분 넣으면 사천짜장’을 냈고, 산문집 ‘하하하 부산’이 곧 나올 예정이다. 부산작가상(2014), 부산민족예술인상(2012)을 받았다.

■ 여긴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짬뽕 끓이다 갈분 넣으면 사천짜장- 배길남·2018·알렙
소설집 ‘짬뽕 끓이다…’에는 표제작 ‘짬뽕 끓이다 갈분 넣으면 사천짜장’을 비롯해 8편의 작품을 실었다. 첫 소설집을 펴낸 이후 5년 동안 틈틈이 발표해 온 작품 중 고른 8편이다. 성장소설과 추리소설, 역사소설과 거기에 패러디소설까지 여러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어떤 분야든 이야기가 없는 세상은 없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디에서든 “여긴 또 이야기가 있을까” 호기심으로 무장한 배길남이 느껴진다. 담백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도 좋지만 익숙한 부산 사투리는 소설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오죽하면 그를 잘 아는 시인이 이 소설집을 읽다가 “배길남 씨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어요”라는 전화를 했을까.

‘짬뽕 끓이다…’ ‘너의 선택’ ‘정글북’ 등의 작품은 기성 사회 비꼬기, 혹은 비틀기를 보여준다. 추리소설 ‘사라진 원고’는 셜록 홈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배길남이 코난 도일에게 바치는 오마주 소설이다. 코난 도일이 본다면 배길남에게 “자네, 제법이군!” 할 것 같다.

주류 사회에 들어가고 싶은 건 누구나 가진 욕망이다.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튕겨 나오는 사람들의 불만도 이 사회에 함께 존재한다. 배길남 작가의 작품은 그 오묘한 복잡성을 다루고 있다. ‘짬뽕 끓이다…’는 요리의 순수함을 고집하던 면발맨이 화학조미료란 현실에 타협하고 좌절한 이후, 우연한 삶의 이치를 알아가는 과정을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목은 경쾌하고 발랄하지만 목적이나 방향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 대한 신랄한 비꼬기이기도 하다. 주인공의 독백에서 소설가 배길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진짜 소설가가 되고 싶다…. 아니지, 난 소설가야. 등단도 했잖아? 웃기고 있네. 등단만 하면 소설가냐? 진짜 소설가가 되어야지. 눈물이 핑 돈다. 등단해 봤자 산 너머 산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멀리 돌아갈 줄은 몰랐다.”

어쩌면 배길남은 지금 산 너머 산을 멀리 돌아 힘든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에서 “여긴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며 이야기를 모으고 있을 게 틀림없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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