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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동북아 바다…인문학으로 항해하다 <10> 박래품(舶來品), 새로운 세계의 맛

개화기 바닷길로 온 가배·양장·사이다 … 이름부터 민초 호기심 자극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3-14 19:08:07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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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조약으로 부산항 개항
- 원산·인천 등도 차례로 열려
- 서구열강과 근대적 교역 시작

- 유럽·일본 통해 들어온 신문물
- 클럽 ‘구락부’ 커피 ‘가배’ 등
- 외국어를 한자음으로 바꾸거나
- ‘양’ 붙여 ‘양복’‘양산’ 부르기도

- 영국서 ‘사과주’였던 ‘사이다’
- 日 건너가 레몬향 탄산수 탈바꿈
- 인천항 들어와 대히트 치는 등
- 신세계 접한 사람들 흥미 유발해

지금은 옛날보다 외국의 물품이 육지와 바다, 하늘을 통해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유입되지만, 바닷길로 해서 항구로 들어오는 항만물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작금을 막론하고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그 단면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데가 많다. 특히 언어 면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구한말을 시대 배경으로 한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이병헌과 김태리가 주연을 맡아 좋은 시청률을 보였는데, 작중의 고애신(김태리 분)이 이런 말을 한다.
   
장윤현 감독의 2012년 영화 ‘가비’ 한 장면. 이 영화에서는 구한말의 박래품인 커피가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실제로 조선 고종은 커피를 즐겼다.
“신문에서 작금을 낭만의 시대라고 하더이다. 그럴지도. 개화한 이들이 즐긴다는 가배, 불란서 양장, 각국의 박래품들. 나 역시 다르지 않소.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가배(珈排)’ ‘불란서(佛蘭西)’ ‘양장(洋裝)’ 등은 모두 개화기 신문물 이름이다. ‘박래품’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사전에는 있으나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어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말이다. 한자로는 ‘舶來品’이니 배로 들여온 물품이라는 뜻으로, 구한말 당시에는 서양에서 배에 실려 들어온 신식 물품을 그렇게 말했다. 영어로는 ‘import’가 되는데, 전치사 ‘in-; 안에, 안으로’과 명사 ‘port; 항구’가 조합(‘import’의 ‘m’은 전치사 ‘in’의 ‘n’이 동화작용으로 변한 것임)돼 만들어진 단어다. 그러니까 ‘항구 안으로 들이다’라는 뜻인데, 이것을 ‘舶來品’이라는 말로 만들어 번역했으니 재미있다.

   
일제강점기 때 사용한 벽시계. 부산근대역사관 소장.
그런데 이들 어휘에서는 세계무역 또는 식민지 개척의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유럽의 많은 나라는 자원이 부족해 자급자족에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다른 나라로부터 물자를 들여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상적인 수입이 안 되면 약탈이라도 해오지 않는 한 생활 유지가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이나 스페인, 프랑스 등의 해적선이 실재했던 것이 그 방증이다.

어떤가? ‘항구 안으로 무엇인가를 들이는 일(in+port)’이 곧 수입(import)인데, ‘중요한’이라는 의미의 ‘important’가 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재미있지 않은가. 이는 또 물자가 부족한 나라에서의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닷길보다 더 큰 길은 없다

물류 수단이 최첨단의 길을 걷는 현재도 바닷길을 통해 항구로 들어오는 물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전술한 대로이다. 따라서 항구에는 물건이 다양하고 많을 뿐 아니라 사람도 많이 모이게 된다. 항구 주변에는 도시가 형성되어 대도시로 성장해가고, 새로운 것도 등장해 가슴 설레게 하는 무엇인가를 낳아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가 부풀게 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운요호 사건으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면서 1876년 부산항이 개항했고, 1880년 5월 원산(元山)과 1883년 1월 인천(仁川)을 순차로 개항하면서 열강과 근대적 교역을 시작했다. 그러자 이들 항구도시에는 당연히 진귀하고 값비싼 물건, 즉 박래품이 흘러들어와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했다.

그런데 그런 박래품들은 그에 붙여진 이름에조차 개항을 경험하며 새로운 세계를 맛보기 시작한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무엇인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은 실물을 보고 이름을 아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신문광고를 통해 알았고, 그렇게 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주로 시계, 양복, 구두, 양산이라든가 향수, 석유, 비누, 바늘 같은 것들이었다. 그 물품은 서구 열강에서 직접 들여온 것도 있었지만, 일본을 통해 간접으로 받아들인 것이 많았는데 그때 붙여진 이름들을 몇 가지로 나눠 패턴별로 살펴보면 이렇다.

▷외국어의 음을 한자음으로 ‘음역’=이 같은 음역어는 주로 국가나 도시 이름에 사용됐다. 프랑스를 ‘불란서(佛蘭西)’, 러시아를 ‘아라사(俄羅斯)’, 필리핀을 ‘비율빈(比律賓)’으로 표현했다. ‘커피’를 ‘가배’, 클럽을 ‘구락부(俱樂部)’로 표현한 것도 모두 음역 패턴에 해당한다.

▷‘양(洋)―’식으로 하는 패턴=서양에서 바다를 건너 들어왔거나 서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으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양장’ ‘양복’ ‘양옥’ ‘양산’ ‘양철’ ‘양동이’ ‘양초’ 등이 이에 속하는데, 모두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양(洋)―’에는 얕지만 새롭다고 하는 의미도 묻어 있었다.

▷외국어를 어원으로 하는 패턴=이 패턴의 이름에는 ‘미스터 션샤인’에서 본 바와 같이 구한말 언어의 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구한말이란 서양과 동양 문물이 공존한 시공(時空)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 패턴의 이름에서는 당시의 새로운 먹거리와 볼거리 등을 느낄 수 있다. 살펴보면 이렇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카스텔라, 메리야스>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한 여성들이 먹던 카스텔라는 스페인어로 성(城)을 뜻하는 카스틸료(catilllo)에서 유래하는데, 11세기 카스티랴(Catilla) 왕국의 포르투갈어 발음 카스텔라(Castela)가 ‘카스텔라’의 이름이 됐다. 그것이 16세기 초 포르투갈에서 일본으로 전해지고,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메리야스’는 스페인어 ‘메디아스(medias)’와 포르투갈어 ‘메이아스(meias)’가 와전된 것인데, 당시는 양말을 가리켰다. 그런데 양말이 신는 사람 발의 대소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든다는 데서 중국에서는 크건 작건 상관없다는 뜻으로 ‘막대소(莫大小)’라 했다. 그러한 특성 때문에 이 이름은 신축성 좋은 직물로 확대되어 불리게 되었고 오늘의 메리야스가 됐다.

<네덜란드의 칸델라(kandelaar)> 많은 박래품 중 괄목할 만한 것으로 칸델라(kandelaar)를 들어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되는데, 이는 본래 ‘호롱’을 뜻했으나 훗날 함석 같은 것으로 만든 호롱에 석유를 넣어 불을 켜서 들고 다니는 등의 이름으로 쓰이게 됐다. 1876년 일본에서 석유가 수입되면서 그것을 등유로 사용하고부터 선박이나 광산 등에도 쓰였는데, 그 역시 이름과 함께 네덜란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나라로 왔다.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사이다’> ‘사이다’는 영국에서 새콤한 사과주를 일컬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레몬향의 탄산수로 탈바꿈했다. 그것이 요코하마에서 인천항으로 들어왔고, 1905년 인천탄산수제조소가 세워져 대히트를 쳤다. 1960·70년대 한 코미디언이 불러 화제를 모은 노래의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 없으면 못 마십니다”라는 가사가 말해 주듯 사이다는 개항지 인천의 상징 같은 역할도 했다. 이들 말에는 바닷길을 통해 항구로 들어온 새로운 문물 ‘박래품’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항구는 예와 다름없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거대한 열린 공간이며 설렘의 장소이다. 이제 ‘박래품’이라는 말은 사어가 되어 쓰지 않게 되었지만, ‘박래품’ 그 자체는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져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설렘을 부르고 있다. 어떤가, 봄이 한창 꽃소식과 함께 다가오고 있는데, 항구도시 부산의 설렘에 몸과 마음을 맡겨 호기심을 충족해 봄이.

양민호 부경대 HK 연구 교수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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