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거리 항해하는 배들 정박해
- 옛부터 해양네트워크 거점 된 섬
- 진시황 책사 서복, 불로초 찾아
- 제주도·남해도 등 흔적 남기고
- 완도 근거지 삼은 신라 장보고
- 산둥반도-교토 해상무역 주도
- 오늘날 영해·배타적 경제수역 등
- 국가 관할해역 결정할 수 있어
- 일본·중국, 인공섬 건설 등 추진
- 우리도 ‘섬 늘리기’ 관심 필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했고 육로 이동이 쉽지 않았던 고대에는 가능한 경우 바다를 통해 이동이 이루어졌다. 먼 거리를 항해하는 배들은 이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해안이나 섬에 정박하여 쉬어 가고 태풍 같은 위험을 피하기도 하면서 여정을 완성했다. 섬은 바다에 놓인 징검다리 같은 소중한 존재였는데, 생각해보면 그 옛날 섬을 징검다리로 삼고 동북아 해역을 넘나들었던 사례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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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완도군의 청해진 유적지에서 바라본 바다. 섬과 해역을 새롭게 ‘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곽수경 제공 |
■섬은 바다의 징검다리
먼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진시황의 책사로 우리나라까지 불로초를 구하러 왔던 서복(徐福)을 만날 수 있는데, 그는 중국 진황도에서 출발해 타이완, 혹은 일본으로 갔다고도 하고, 우리나라에도 제주도를 비롯해 남해도, 거제도 등 여러 곳에 흔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서복은 백령도, 소청도, 대청도를 지나 마전도, 고사도, 득물도, 선유도를 거쳐 진도를 돌아 남해도 금산 바위에 암각화를 그려놓고 백도, 제주도에 이르렀다고 하며 제주도 정방폭포 바위에 ‘서복이 이곳을 지나간다(徐市過此)’라는 글귀를 새겨놓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서귀포라는 지명 자체가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과 정방폭포 옆에 서복전시관과 서복공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저장성(浙江省) 당서기 시절 이곳을 다녀간 뒤 국가주석 자리에 올랐고, 다른 중국 관료들 역시 대부분 승진했다는 사실을 활용해 서귀포시에서는 이곳을 다녀가면 승진하게 된다는 펼침막까지 내걸고 적극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밌다.
신라의 장보고는 완도(즉, 청해진)를 근거지로 해적을 소탕하고 신라와 당나라, 일본을 잇는 무역을 주도했다. 그는 완도, 흑산도, 적산포(산둥반도)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오가며 무역 활동을 했고 다시 완도, 하카타(규슈), 오사카, 교토를 오가며 대한해협과 세토내해를 헤치고 다녔다.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로 잘 알려진 일본의 구법승 엔닌 대사(圓仁大使)는 적산포에서 충청도 앞바다를 거쳐 전라남도의 고이도, 황모도, 안도를 지나 대마도, 규슈로 항해했다. 고려 시대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계절풍과 해류를 타고 중국 밍저우(明州·닝보의 옛 이름)에서 흑산도를 거쳐 서해안을 따라 고려에 왔고, 조선통신사는 부산에서 대마도, 이키섬을 거쳐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에 도달했다.
조선 후기 전라남도 우이도 출신 홍어 장수 문순득은 홍어를 사러 출항했다가 표류하게 되었는데, 흑산도 남쪽에서 표류해 3년간 일본 가고시마와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왔다. 당시 우이도에 유배와 있던 정약전이 문순득이 해외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듣고 ‘표해시말(漂海始末)’에 실었고 정약용 등도 여러 저술에 문순득의 경험담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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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지 척!’의 느낌을 살려서 찍은 독도 사진.
송기태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 제공 |
■한국은 과연 세계 4위 섬 보유국?
이처럼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인물이 무역, 외교, 종교 목적, 표류 등 다양한 이유로 동북아 해역을 넘나들며 항해했는데, 이때 섬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쉼터나 피난처가 되기도 했고 그런 가운데 다양한 해양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렇게 보면 동북아 해역의 해양네트워크와 그것이 보여준 역동성은 결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던 듯하다.
해양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오늘날 특히 바다를 품은 섬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국가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해(領海)는 기선을 기준으로 정하는데, 우리나라는 해안선이 완만한 동해안은 썰물 때 해안선을 기준으로 한 통상기선, 서해안과 남해안은 직선기선을 기준으로 12해리 내에서 영해의 폭을 설정하고 있다.
직선기선은 해안 굴곡이 심하거나 섬이 산재해 있을 경우 해안 끝이나 가장 바깥에 있는 섬을 연결한 선을 말한다. 따라서 섬은 영해 설정뿐만 아니라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 등 국가의 관할해역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오늘날 동아시아 해역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도서 분쟁도 바로 해역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다.
3000개가 넘는 섬을 가진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1만7000여 개, 필리핀 7000여 개, 일본 6000여 개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라고 종종 언급되지만, 이는 아무리 봐도 틀렸다. 아시아만 해도 중국이 6000개가 넘는 섬을 가지고 있다 하고, 전 세계적으로는 스웨덴이 22만여 개, 핀란드 약 19만 개라는 통계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섬을 주제로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우리나라 섬이 1만2000개라는 발표도 있었다고 한다.
이건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바다 위로 솟은 작은 땅덩어리라고 여겨지는 섬이 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 있는 섬도 있고, 강이나 호수에 있는 섬도 있다. 바다에 있는 섬 중에는 썰물 때든 밀물 때든 항상 물 위에 드러난 것도 있고 간조와 만조에 따라 드러났다가 잠겼다가 하는 것도 있고, 또 식생이 있는 섬과 없는 섬이 있으며 큰 섬도 있고 작은 섬도 있다.
도서(島嶼)라는 말만 하더라도 단순히 섬의 한자어 표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큰 섬과 작은 섬을 각각 의미하는 도와 서를 구분하고 있다. 말이 세분화되어 있다는 건 쓰임새가 세분화되어 있음을 뜻한다. 우리말에 섬이라는 말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섬을 멀리하고 홀시했던 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중국·일본이 치열한 이유
반면 일본은 섬나라라는 이유가 크겠지만, 일찍부터 섬의 가치를 깨닫고 적극적인 섬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육지 영토의 10배가 넘는 해양영토를 가졌다. 일본의 해양영토는 현재 세계 6위인데 세계 3위까지 끌어올리려 한단다. 그들이 도쿄에서 1700~1800㎞나 떨어진 태평양상의 암초 오키노도리시마와 미나미도리시마를 언젠가 섬으로 인정받고 독도와 센카쿠열도와 쿠릴열도의 섬을 차지하게 된다면, 헛된 꿈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대륙 국가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고 전형적인 대륙국가로 분류돼왔던 중국도 마침내 해양강국을 선언하고 나섰다. 국가해양국 산하 해도연구센터(海島硏究中心)에 해도개발처, 해도보호처를 두고 해도 개발과 보호 연구 등에 주력한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여러 나라와 치열한 도서 분쟁을 펼치고 있고, 특히 난사군도(南沙群島)에서는 인공섬을 건설해 필리핀에 국제적 제소까지 당했지만 국제중재재판소 판결마저 거부하고 갖은 방법으로 자국 섬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우리도 인공섬을 건설하고 암초도 섬이라고 우겨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법은 시대가 흐르면 바뀌기 마련이고 섬의 정의도 바뀌니 언젠가 유효하게 될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때로 우리나라에 섬은 독도만 있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독도 문제에만 발끈하지 말고 우리 섬과 바다, 동북아 해역에 관심을 가져 보자.
곽수경 부경대 HK 연구 교수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