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아카데미 시상식이 25일 오전 10시(한국시간)부터 생중계 된다.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의 작품상 후보에는 ▷블랙팬서 ▷보헤미안 랩소디 ▷그린북 ▷블랙클랜스맨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로마 ▷바이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작품 중 작품상을 수상하게 되는 작품은 올해 ‘오스카상’의 백미를 차지하는 셈이다.
이들 작품 중 단연 흥행성적만을 고려한다면 단연 ‘보헤미안 랩소디’의 수상이 유력하다. 하지만 인종차별에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를 받는 ‘그린북’이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못지 않다. 특히 서로 다른 존재의 사랑을 다룬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지난해 작품상의 주인공이었다는 점을 볼 때 ‘그린북’의 수상 가능성이 보다 높게 점쳐진다.
△다음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줄거리와 주관적이며 간략한 해석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영화는 먼저 어릴 적 누군가에 의해 성대를 훼손당해 말을 할 수 없는 청소부 ‘엘라이자’와 남미에서 신으로 떠받들어지다 미국으로 잡혀 온 ‘괴생명체’를 조명한다. 두 인물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실험실이라는 사회 안에서 소외돼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소외된 두 사람과는 달리, 이 사회 권력의 중심에 선 인물이 있다. 그는 보수적이며 권위적인 남성 ‘스트릭랜드’다.
그는 엘라이자와 달리 괴생명체를 ‘존재’가 아닌 ‘도구’로 대한다. 그에 반해 ‘청소부’ 엘라이자는 단 한마디 대화 없음에도 소통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그를 대면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됐던 두 존재는 이내 소통하기 시작한다. 엘라이자에게 이 낯선 존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신적 존재’가 된다.
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사랑의 대상은 언제나 관계 안에서 신적인 지위를 가진다. 무한하며, 경배의 대상이 돼 닿으려 해도 도무지 닿지 않는다.
그런 존재에게 특정한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그래서 일까, 이 글에서마저 ‘괴생명체’로 칭해지는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 극중에서 그는 단 한번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더욱이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에게는 애초부터 그의 이름이 필요치 않았다.
무한한 존재에게 별도의 이름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일신앙을 떠올리면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속의 신은 무엇으로 규정될 수도, 이름 지어질 수도 없다. 정의될 수 없을만큼 무한한 탓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이에 의해서 규정된 바만이 목격되고, 그만큼만 의미를 갖는다. 마치 그릇에 담긴 물처럼 말이다.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