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제작된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가 24일 낮 12시10분 EBS ‘일요시네마’를 통해 방영된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하지만 주인공은 60대를 넘긴 노인들이다.
일반적인 SF영화라면 활기 넘치는 청년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결과를 쟁취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런 영화들과는 다르다.
물론 여느 할리우드 영화처럼 ‘소련’을 문제 혹은 악으로 상정했다는 점만큼은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영화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히 훌륭하다. 이 영화는 2000년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하다. 누가 뭐래도 이 영화의 백미는 OST ‘Fly to the moon’이다.
△줄거리:
1958년, 미 공군 최고의 정예 조종사 팀인 데덜라스의 멤버인 프랭크 코빈(클린트 이스트우드 분), 호크 호킨스(토미 리 존스 분), 제리 오닐(도날드 서덜랜드 분), 탱크 설리반(제임스 가너 분)은 우주로 날아간 최초의 인류가 되기 위해 훈련에 열심이다. 그러나 새로 발족된 민간기구 NASA에게 우주탐험 프로젝트가 넘어가고 미국 최초로 우주선을 타는 영광은 침팬지에게 돌아간다. 그로부터 42년 뒤인 2000년. 지구궤도를 돌고 있던 구소련의 통신위성 아이콘의 유도체 시스템에 고장이 생긴다. 자칫 궤도를 이탈하기라도 하면 지구와의 충돌까지도 우려되는 위기 상황. 나사는 급히 팀을 구성하지만 50년 전에 만들어진 이 기계를 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콘에 장착된 유도체는 미국의 초기위성 스카이랩의 유도체와 동일한 것이었고, 이 스카이랩을 설계한 것이 바로 프랭크 코빈. NASA의 관리인 밥 거슨은 프랭크를 급히 찾아 아이콘 수리를 부탁한다. 그의 제안에 프랭크는 옛 공군 팀인 데덜라스의 동료들과 함께 가는 조건을 내건다. 프랭크가 아니면 이 오래된 기계는 고칠 수 없는 상황. 결국 40년 만에 어렵사리 노병들이 다시 뭉친다. 군에서 제대한 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던 이들 4명은 노령으로 인한 한계에 부딪히면서도 NASA의 젊은 우주 비행사들의 강도 높은 훈련을 극복해 낸다. 언론을 통해 데덜라스의 소식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신체검사 때 췌장암에 걸린 것으로 판명된 호크를 탑승명단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돼 버린다. 성공적으로 우주궤도에 진입, 위성 아이콘의 수리작업에 들어간 프랭크와 그 동료들. 그러나 아이콘의 내부를 관찰하던 프랭크는 그 안에 핵미사일 탄두 6개가 탑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해설:
‘스페이스 카우보이(Space Cowboys)’는 제목에서 보듯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다. 그런데 우주선에 몸을 싣는 주인공은 60대를 넘긴 노년의 인물들이다. 백전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았고 토미 리 존스, 도널드 서덜랜드, 제임스 가너가 함께 출연했다.
1958년 우주탐사를 준비했던 4명의 최정예 공군팀은 우주 프로젝트가 NASA로 옮겨가면서 임무가 사라진다. 프랭크 코빈(클린트 이스트우드 분), 호크 호킨스(토미 리 존스 분), 제리 오닐(도날드 서덜랜드 분), 탱크 설리반(제임스 가너 분)로 구성된 ‘데덜라스’팀은 그렇게 해체된다. 그리고 42년 뒤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구 소련의 위성통신이 고장을 일으켜서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발생하자 NASA는 이 시스템을 설계했던 프랭크에게 수리를 부탁한다. 옛 동료들과 함께 하는 조건을 내건 프랭크는 60대에 접어든 옛 동료들과 고강도 훈련에 돌입해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향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주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민간이 우주로 날아가는 설정은 영화 <아마겟돈>과 유사하다. <아마겟돈>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유정굴착공들과 함께 우주로 날아갔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공군 출신 정예 멤버들과 간다는 점이 다르다. 4명의 60대 우주인들은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맞아 축적된 지식과 경험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 영화에 흐르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Fly Me to the Moon’만큼 이 영화의 엔딩에 어울리는 노래는 없을 것이다. 2000년 베니스영화제 개막작.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30년 5월 3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떠돌이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벌채 노동자, 소방수 등 일용 노동직을 전전하며 피아노 연주가와 미군의 수영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50년대 유니버셜에서 제작된 일련의 B급 영화들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1959년 유니버셜을 벗어나 뉴욕에 가서 찍은 TV 시리즈 <로우하이드>(1959-1966)에서 상사 로우디 예이츠 역을 맡으며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1964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의 시작인 <황야의 무법자>에 ‘이름 없는 남자’로 출연하면서 1960년대 허무주의의 컬트 스타로 떠올랐다. 세르지오 레오네에 이어 돈 시겔과 만나 <더티 해리> 시리즈의 해리 칼라한 형사 역을 거치면서 자신의 스타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1971년에는 드디어 자신의 영화사 말파소를 설립하고 감독 데뷔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를 완성한다. 이후 만든 그의 초기 연출작들인 <평원의 무법자>(1973), <무법자 조시 웨일즈>(1976) 등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야말로 흔히 이야기하는 입지자전식의 고단한 연마과정을 거친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흥행감독으로 인정받은 그는 <더티 해리> 시리즈는 물론이고 코미디, 산악 모험극, 비행 활극, 군사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에 걸쳐 고른 연출력을 보여주더니 끝내 재즈 영화 <버드>(1988)를 통해 작가영화 혹은 예술영화의 영역에 도전한다. 그의 끝 모르는 영화적 열정은 결국 <용서받지 못한자>(1992)의 아카데미 수상으로 이어지고 <퍼펙트 월드>(1993)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를 통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진지한 영화작가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는 데 성공한다. 그의 후기 감독작들은 하나같이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휴머니즘에 기반하고 있으며, 프로듀서와 주연을 겸하는 완벽한 형태의 이스트우드식 작가영화를 지향하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노인이 좌절된 과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우주로 향한다는 내용의 독특한 SF 영화 <스페이스 카우보이>(2000)를 만들었으며, 숀 펜과 팀 로빈스와 케빈 베이컨 등의 연기파를 기용한 <미스틱 리버>(2003)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그의 녹슬지 않은 관록을 보여주었다. 2004년에는 <밀리언달러베이비>, 2006년에는 <아버지의 깃발>, 2008년에는 <체인질링> 등의 작품들이 관심을 받았다. 2011년
를 연출한 뒤 잠시 연출에서 물러나 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14년 <저지 보이스>, <아메리칸 스나이퍼>등을 선보였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인정받아 1994년에는 예술 문학 훈장을, 1997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2000년에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