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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세상…비상구는 쉽게 열리지 않는다

최시은 첫 소설집 ‘방마다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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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7편 수록… 표제작 두지 않아
- 섬세한 시선·탄탄한 문장 눈길

작가 최시은의 첫 소설집 제목은 ‘방마다 문이 열리고’(산지니)이다. 대개 단편소설 여러 편을 책 한 권으로 묶은 소설집에는 표제작이 있다. 수록한 단편소설 여러 편 가운데 한 편의 제목을 책 제목(표제작)으로 쓰는 방식이다.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에는 표제작이 따로 없다. 수록 작품은 ‘그곳’ ‘잔지바르의 아이들’ ‘누에’ ‘환불’ ‘3미 활낙지 3/500’ ‘요리’ ‘가까운 곳’ 7편이다. 작가가 표제작을 따로 두지 않고, ‘방마다 문이 열리고’를 소설집 제목으로 삼은 이유를 소설집의 두어 군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첫 소설집 ‘방마다 문이 열리고’를 펴낸 최시은 소설가. 산지니 제공
최 작가의 개성과 작품 세계가 꽤 진하게 드러난 수록작 ‘누에’의 끝 문장은 이렇다. “향기가 사라진 후 여자는 다시 오지 않았고 엄마는 땅속에 묻혔는데, 그렇다면 이것들은 아버지와 여자가 사라진 그 너머에서 온 것인가. 그녀는 향기가 사라진 그 너머로 조심조심 걸어간다. 그곳에도 산벚꽃이 피고 방마다 닫혔던 문들이 열린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는 이렇게 썼다. “그럼에도 나는 도서관 열람실을 자주 찾았다. 숨어 있기 좋은 방처럼 열람실 서가는 아늑했다. 어쩌면 숨기 위해 그곳을 자주 찾았는지도 모른다.”

   
‘방마다 문이 열리고’라는 제목은 소설가 최시은의 작품 세계에서 밀폐돼 있되, 문은 있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방’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듯하다. 동시에 소설가로서 첫 소설집을 내면서 비로소 ‘방문’을 열고 나온 그의 마음과 처지를 상징한다.

최시은 소설가는 1970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바다와 산이 자연스레 성장 배경’인 고향에서 살다 초등 6학년 때 부산 영도 산동네로 옮겨와 줄곧 부산에 살았다. 2010년 진주신문 가을문예로 등단했다. ‘방마다 문이 열리고’는 문학을 매우 진지하게 대하며, 섬세하고 탄탄하게 문장을 다듬는 소설가가 부산 소설단에 또 한 명 나왔음을 알린다. 단편소설은 등장인물이 세상의 진실과 삶의 진실 사이를 치열하게 또는 절박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결국엔 세상의 진실과 삶의 진실이 가진 단면을 명징하게 그려내는 데 좋은 장르라 할 수 있다.

수록 작품에서 세상은 가끔, 문득 행복으로 향할 듯한 문이나 지금의 절박한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줄 비상구를 보여주지만, 끝내 쉽게 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중삼중으로 짐을 등장인물의 어깨에 얹는 모순된 상황으로 향할 때가 많다.

‘잔지바르의 아이들’은 그런 점을 거의 ‘끔찍한’ 수준으로 밀어붙인다. 주인공은 생계를 이어야 했기에 두 번째 남편을 맞이한 여성이다. 사회에서 무능한 존재인, 나이 어린 새 남편은 주인공의 어린 딸을 성폭행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런데 주인공은 법정에서 이 끔찍한 남자의 형량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춰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가장 큰 이유는 생계에 대한 걱정이다. 부분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에서 독자는 분노와 무력감으로 어안이 벙벙해진다.

등단작인 ‘그곳’은 늙고 병든 부모를 부양하며 살아야 하는 가난한 중년 여성의 곤경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환불’과 ‘3미 활낙지 3/500’ 등에서 최 작가는 튼튼한 취재로 삶의 현장을 활력 있고 세심하게 그려내는 힘을 보여주면서 모순된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을 유지해 관심을 끈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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