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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때 유입된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아직 어민 생활 속에 일본어 투의 말이 다양하게 남아 있다. 사진은 기장멸치축제에서 어민들이 멸치를 터는 모습. 국제신문 DB |
- 수산·어촌생활 관련 표현
- 일제 강점기시절 대거 유입
- 그물 ‘나이롱’ 선장 ‘센초’
- 일본식 발음 그대로 따거나
- 오징어잡이 채낚기 ‘이뽄술이’
- 어로작업 중복되다 ‘다부리’
- 우리말과 섞여 변형되기도
- 심지어 인기있는 낚시프로
- 출연진들도 여과없이 사용
- 늦었지만 이제라도 고쳐 나가야
인간의 사고와 경험은 언어에 의존하며, 쓰는 언어가 다르면 생각이나 생활양식이 달라진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사피어와 워프인데, 그들은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유럽인에게는 시간이 ‘객관화’된 것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 1월, 8월, 여름, 가을이 분명하고, 시간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과거·현재·미래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호피(Hopi)족에게는 시간이 객관화되어 있지 않고 ‘관습적’인 것으로 생각되기에 그러한 시간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호피족의 언어에는 ‘시간’이라는 낱말 자체가 없고, 과거·현재·미래형 같은 시제도 없었다고 한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어촌이 많아 거기서 사용되는 말이 잘 발달했다. 그런데 그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어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 사실이다. 수산 관련 어휘나 어촌 생활 관련 표현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대거 유입돼 생활 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촌에서 쓰는 말 중 일본어 투가 다수 포함돼 있다는 말도 된다. 한일 두 나라가 바다를 보는 시각이 비슷하여 수용과 공유가 수월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국립국어원 민족생활어사업단에서 동해, 서해, 남해, 제주해의 어촌 생활어를 조사한 바 있는데, 이를 분석해보면 아직 어민의 생활 속에 일본어 투의 말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유형별 구분도 가능한데,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일본식 발음
그물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나이롱’은 ‘나일론(nylon)’, 그물을 당길 때 쓰는 돌림판 ‘노라’는 ‘롤러(roller)’의 일본식 영어 발음이다. 닻을 뜻하는 ‘앵커(anchor)’의 일본식 발음 ‘앙카’가 지역에 따라 ‘앙카’ ‘랑카’ ‘엥카’ 등으로 발음되고 있다. 지역별 언어 차이에서 온 언어 변종이라고 볼 수 있다. ‘갑판장(bosun 또는 boatswain)’을 ‘보슨’이나 ‘보싱’이라 하는데, 이 또한 일본식 발음이다. 그물이나 낚시 도구의 끝부분 금속을 ‘후꾸리’라 하는데, 이것도 일본식 ‘후쿠(Fukku)’에서 온 말이다.
배의 ‘선장’은 일본어로 ‘센초(船長)’인데, 이를 우리도 그대로 ‘센초’라 하거나, ‘기관장’의 일본어 ‘기깐초(機關長)’를 그대로 ‘기깐초’라 하기도 한다. 그물 아랫부분을 ‘히모’라 하는데, 이는 같은 의미의 일본어 ‘시모(下)’가 변형된 발음이다.
■다양한 변종
동해안의 오징어잡이 때 사용하는 말 중에 ‘채낚기’라는 게 있고, 이의 일본어는 ‘잇뽄즈리(一本釣り)’인데, 이것이 ‘이뽄술이’ ‘이폰수리’ 등으로 변형돼 발음되는 사례도 있다. 동해안에서 동틀 무렵을 ‘아시히찌’라고도 하는데, 새벽시장을 의미하는 일본어 ‘아사이치(朝市)’가 발음과 의미에서 변용된 것이라 판단된다.
어로 작업에서 ‘중복’이라는 의미로 쓰는 말에 ‘다부리’가 있는데, ‘중복되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다부루(ダブる)’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이 ‘다부루(ダブる)’는 일본어 조어법 ‘double+る’에 의한 것으로, ‘る’는 동사의 활용어미이다. 그리고 조기잡이 배에서 넓게 펼쳐 사용하는 그물 ‘삼마이’는 ‘3장’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삼마이(三枚)’에서 온 것으로 세 겹 또는 삼중의 그물을 가리킨다.
■일제강점기가 남긴 언어의 잔해
선박에서 쓰는 어휘 중에는 엔진 관련 일본어 투 용어가 많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나라의 어업용 선박에는 일본 브랜드인 얀마(YANMAR)의 엔진을 많이 썼다. 그 영향으로 좋은 엔진을 말할 때면 ‘얀마 엔진’이라 하는 것이 상례가 됐다. ‘삼기통 엔진’의 일본어는 ‘산끼도 엔진(3氣筒エンジン)’인데, 여기서 ‘엔진’을 생략하고 ‘산끼도’라 하기도 한다. 소형 선박은 주로 ‘세로형 엔진’에 의해 동력을 얻는데, 그 엔진을 보통 ‘다테’라 한다. ‘세로’라는 의미를 지닌 일본어 ‘다테’를 그대로 쓴 것이다.
이처럼 우리 어촌에서 쓰는 말은 일본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불행했던 일제강점 36년이라는 긴 세월이 남긴 가슴 아픈 현실이다. 따라서 당시의 우리 어업 환경과 해역의 기층(基層)문화를 이해하려면 이 같은 언어의 오염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관심과 개선 노력 필요
해양생태 변화와 이촌향도(離村向都), 어촌 사회의 급격한 도시화 등에 따른 경제 형태의 변화는 어촌에서 쓰는 말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어촌의 문화를 담은 말은 이미 소멸됐거나 소멸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동시에 일본어 투의 말도 사라져 가고 있으니 이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언어생활의 선도적 위치에 있어야 할 언론매체조차 아직 일본어 투 말을 그대로 쓰는 사례가 있다. 하루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가 있다. 연예계를 대표하는 낚시꾼 이덕화와 이경규 등이 국내의 유명 출조지는 물론 해외로까지 그 범위를 넓혀 가까이는 일본의 쓰시마(對馬島)를 비롯하여 멀리는 뉴질랜드나 알래스카까지 달려가서 낚시 솜씨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방송에서 ‘도미(돔)’를 뜻하는 일본어 ‘타이’와 고무판을 뜻하는 영어 ‘러버(rubber)’의 합성어 ‘타이라바’와 같은 일본어 투의 말이 많이 등장한다(‘라바·ラバ’는 ‘러버’의 일본식 발음). 낚시와 어로도구, 어로행위, 어획물 명칭 등 일본어 영향을 받은 말을 특별한 생각 없이 쓰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의 구미를 당기게 하여 시청률을 높이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국어 순화라는 면에서 보면 고민해볼 문제인 것 같다.
■해역문화 이해의 계기로
어떻든 아름다운 우리말을 오염시킨 일본어 투 말을 우리의 생활에서 걷어내 순화시킴으로 지켜가는 것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건 국수주의적 옹고집으로 일관하는 것과는 다르다. 국어 순화라는 기치 아래 언어의 다양성을 제한하자는 것과도 다르다. 외래어라고 거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수용할 것은 수용함으로써 풍요로운 언어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자제와 절제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말한, 그러니까 어촌 같은 곳에서 쓰고 있는 어휘의 조사나 연구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고, 국민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일본어로 오염된 우리의 바닷가 말뿐 아니라 우리의 어촌생활 속에 녹아 있는 일본어 투 말들을 순화하여 국어의 우수성을 되살림으로써 국민소통의 원활과 해역 기층문화의 이해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순화해야 할 어촌 생활어
1 나이롱
nylon의 일본식 영어발음 → 그물
2 앙카
anchor의 일본식 영어발음 → 닻
3 후꾸리
fukku의 일본식 영어발음 → 그물 끝부분 금속
4 센초·기깐초
선장(船長)·기관장(機關長)의 일본식 발음 → 선장·기관장
5 이뽄술이
잇뽄즈리(一本釣り)의 변형 → 채낚기
6 아시히찌
새벽시장이라는 뜻의 아사이치(朝市)의 변형 → 동틀무렵
7 삼마이
3장이라는 뜻의 삼마이(三枚)의 변형 → 삼중그물
8 얀마
일본 브랜드 얀마 엔진에서 따옴 → 좋은 엔진
9 산끼도
삼기통 엔진이라는 뜻의 산끼도엔진(3氣筒エンジン)에서 따옴 → 삼기통 엔진
양민호 부경대 HK 연구교수
※공동기획:부경대 HK+ 사업단,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