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집안 살림 돕자고
- 남자형제 공부시키자고
- 어린 나이에 공장서 일한 딸들
- 작은누나의 한평생 희생에
- 대학 가고 교사가 된 홍 작가
- 그 시절 여성의 삶 생생히 전달
- 마음의 빚 잊지 않고자 소설 내
“니는 중학교 졸업하고 이 기차를 타라. 마산이든, 부산이든 알았제?” 홍정욱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누이’의 한 구절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부산의 공장에 취직했던 언니가 여동생까지 자신 같은 처지가 될까 봐 한 말이다. 그러나 동생도 중학교를 1년 다니고 공장에 취직했다. 이런 사연이 흔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들의 누이’는 그렇게 살았던 한 여성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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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금정구 서동의 골목길 앞에 선 홍정욱 작가. 작은 누나와 살았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
홍정욱 작가를 금정구 서동의 작은 찻집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도리어 작가에게 질문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가장 고생하며 일을 한 사람이 누굴까요?” 머뭇거리는 사이에 그는 다시 말했다.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들입니다. 의류공장, 신발공장, 가발공장…. 가난한 살림에 허덕이는 부모님 돕자고, 남자형제 공부시키자고 자신을 희생했던 딸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있어 집안이든 나라든 살림이 핀 거지요. 제게도 그런 누이가 있습니다. 제 작은누나를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습니다.”
■아프고 고마운 사람,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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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누이- 홍정욱·2018·이후 |
홍정욱 작가는 1966년 경남 함안 군북면 유전늪 옆 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 유전늪은 공장지대가 되어 버렸지만, 그에겐 고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름다운 기억이다. 부산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의 뿌리는 여전히 산과 강, 들판에 닿아 있다. 틈만 나면 아이들과 산과 강, 들길을 걸으면서 자연생태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전국의 강을 따라 걷는 일은 십 년 넘게 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 ‘꼭꼭 씹으면 뭐든지 달다’, 낙동강과 철새보호를 위해 활동한 부산 대명여고 박중록 교사 이야기를 담은 책 ‘물길과 하늘길에는 주인이 없다’, 소설 ‘우리들의 누이’를 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일하는 누나들은 홍정욱에게 늘 아프고 고마운 존재였다. “부산에 와서 제가 시골촌놈 중에서도 한참 촌놈이라는 걸 알았어요. 친구들에게 고향집 이야기를 하면 다들 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지요. 강의실에서 여대생들을 보면 누나들이 생각났고, 저들의 아버지는 뭐하는 사람이기에 저렇게 공부를 할 수 있나 부럽고 신기했어요.”
금정구 서동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작은누나와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살았던 동네이다. 동네 골목을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골목이 좁아 두 사람이 함께 걷기 힘들었어요. 부산으로 이사 온 타지 사람도 많았고, 아침이면 근처 회사로 출근하는 젊은 여성들이 골목길을 뛰어 내려가는 동네였어요. 어린 여공도 많았습니다.” 골목길을 걷다가 반지하방 광경이 펼쳐지는 창문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아련하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냈던 누나를 떠올리는 것이리라. “첫 발령을 받았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명동초등학교로 발령받았는데 학교 주소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부산시 동래구 명장동…’으로 시작하는데, 초등학교 시절에 부산에 있는 누나에게 편지를 쓸 때 겉봉투에 늘 그렇게 썼기 때문이었죠. 누나가 다니던 공장이 있던 지역에서 교사로 첫 근무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위해 공장으로 떠났던 누나 덕에 저는 대학에 갈 수 있었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누나에게 쓰는 반성문, 속죄의 글
작은누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홍정욱은 누나의 삶을 찬찬히 되짚었다. 누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이라도 꾸어보았을까. 누나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설 ‘우리들의 누이’를 썼다.
주인공 이구남은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나이와 이름을 속이고 부산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 공장 일은 힘들고, 엄마가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참고 견뎌야 했다. 공장에서 몇 년을 일한 뒤에 갈빗집으로 옮겨 일하면서 독학으로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일식집에서 자리도 잡았다. 결혼을 하면서 고단했던 삶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나 했는데, 남편이 중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홀로 남은 이구남은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우로 불어난 계곡 물에 휩쓸려 생을 마감한다.
소설은 한 세대 전 산업현장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현실을 전해주고, 슬픈 결말로 끝난다. 어떤 독자는 작가에게 “제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에요, 어머니의 삶을 이제야 알 것 같아요”라는 메일을 보냈다. “왜 주인공을 죽게 했냐”고 울먹이는 독자도 있었단다. ‘그 시절, 그들의 삶’이 생생하게 전달됐던 것이다.
홍정욱은 이 소설을 힘들게 썼다. “누나의 삶, 누나와 같은 삶을 살았던 분들…. 아프고 힘들어 못 쓰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써야 할 이야기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이 소설은 어린 나이에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그분들에게, 누나에게 쓰는 반성문, 속죄의 글입니다.”
소설에서 이구남의 어머니가 공장으로 취직하러 가는 어린 딸에게 당부하는 말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무신 일이 있어도 굶지 말아라. 아직 덜 큰 몸이다. 알아들었나?” “연탄가스 조심해라.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알아들었나?” 걱정과 안쓰러움이 담긴 당부의 말을 품고 딸들은 도시의 공장으로 왔다. 개인의 삶으로도, 국가적 차원으로도 우리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그 사실을 아프게 각인시키는 소설이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