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를 뒤집어 입었다 네가 너무 잘 알고 있다 느낀 새벽 말린 우산에서 가시가 돋았고 주머니가 부어올랐다 침묵을 눕혀 두고 꽁꽁 묶었다 골방에서는 매번 재가 피었다고 기억했지만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새들이 날고 있는 푸석한 자궁 배우지 못한 표정들을 깨우기 위해 밤새 비가 내렸다 신앙은 여전히 없었고 잔물은 팻말 쪽으로만 흘렀다 빛 따윈 흉터처럼 가늘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시(詩)는 병색이 완연했다 휘파람을 불던 새벽이었다 나는 송곳니를 물었고 목젖에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언어가 실어증에 걸렸다 퇴화하는 욕조에서 암각화가 출토되었다 아직 문을 열지 못했고 낱장 떨어지는 문양들이 머리를 물고 있었다
<시작노트>
네가 시가 되는 날을 꿈꾸었다. 그렇게 살아있기를, 살아남기를 바랐다. 아직 쪼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나만 남았다.
<약력>
2016년 ‘시와사상’ 신인상 당선, 부산작가회의 회원, ‘다시’ ‘지층과 단층’ 동인 활동.